[New Look] 김상진
감각과 인식의 사이
김상진
인류의 역사는 세상만사에 질문을 제기하며 일구어져 왔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 왔다. 특히 언어, 질서, 체계 등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틀’이 그러하다. 그중 가장 부수기 어려운 틀이 바로 ‘인식’이다. 인간은 다양한 감각을 통해 주변 세계를 받아들이고, 뇌는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이렇게 전달된 정보가 무엇인지 분별해 내는데, 이 과정이 ‘인식’이다.
작가 김상진은 이 인식 과정 자체를 조목조목 뜯어 가며 실험한다. “확고하게 정해진 듯한 자아와 대상의 존재간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인식 관계라는 것은 정해진 질서를 확인하는 당연한 과정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의심의 고리들을 연결하는 작업은 그 질서의 근간을 흔들어 나가는 일이다.”
전 세계 40개 언어에서 우리말 ‘멍멍’에 해당하는 개 짖는 소리의 의성어 48개를 모아 동시에 재생한 <Dog Sounds>(2010)는 그 원형보다는 오히려 소음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각 언어별 개 짖는 소리는 그 기의에 맞는 최적의 기표로 구성됐다지만 그 최적의 합은 그야말로 ‘개소리’가 되고, 언어 체계 전체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
작가는 이처럼 청각, 후각 등 인식 과정의 첫 단추인 감각적 요소를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관객이 직접 그 당위성의 오류를 체험케 한다. 인간의 후각을 토대로 개발된 공기청정기가 담배 연기는 물론 꽃향기까지 정화시키는 <Air Purifier>(2011)는 그 왕성한 기능성에 실소를 머금게 한다.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감각의 대상 그 자체, ‘원본’을 의심한다. “인간의 인지 체계가 필요로 하는 인지 가능 범위의 신호들만이 추출된 채, 원본은 점점 더 그 유용성(아우라)을 잃어 가고 추출된 신호와 기호들은 필요 범위 안에서 재조합, 조립된다.” 옷을 입혀 앉혀 놓은 마네킹의 얼굴에 시시각각 변하는 작가 자신의 얼굴 영상을 투사하는 <The Street Where I’m Living>(2010), 스스로 목탁을 치도록 제작된 기계장치가 교묘하게 치는 척만 하고 녹음된 목탁 소리를 재생하는 <Meditation>(2013) 등은 관객이 가짜를 진짜라고 믿을 만한 최소한의 조건만 조성해 그 고상한 원본의 가치를 유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잉크젯 프린터로 물 위에 인쇄를 하는 <In Visibility_The History of Entropy>(2013)는 고대 상형문자부터 현대 디지털 언어, 사진, 회화 작품 등 인류의 인식 과정의 산물을 수면 위에 ‘기록’하지만 이내 검은 잉크가 물속에 융해돼 ‘소멸’되고 만다. 우리의 인식 체계 속 세상만물이 물속 잉크의 종잡을 수 없는 춤사위처럼 흔들리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