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Look] 김상진

2015 / 11 / 01

감각과 인식의 사이
김상진

〈In Visibility_The History of Entropy〉 혼합재료 166×50×80cm 2013

인류의 역사는 세상만사에 질문을 제기하며 일구어져 왔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 왔다. 특히 언어, 질서, 체계 등 우리의 삶에 근본적인 ‘틀’이 그러하다. 그중 가장 부수기 어려운 틀이 바로 ‘인식’이다. 인간은 다양한 감각을 통해 주변 세계를 받아들이고, 뇌는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을 바탕으로 이렇게 전달된 정보가 무엇인지 분별해 내는데, 이 과정이 ‘인식’이다.

〈In Visibility Cell〉 목재, 물탱크, 프린터 가변크기 2012

작가 김상진은 이 인식 과정 자체를 조목조목 뜯어 가며 실험한다. “확고하게 정해진 듯한 자아와 대상의 존재간의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인식 관계라는 것은 정해진 질서를 확인하는 당연한 과정처럼 느껴지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의심의 고리들을 연결하는 작업은 그 질서의 근간을 흔들어 나가는 일이다.”

〈In Visibility Cell〉 목재, 물탱크, 프린터 가변크기 2012

전 세계 40개 언어에서 우리말 ‘멍멍’에 해당하는 개 짖는 소리의 의성어 48개를 모아 동시에 재생한 <Dog Sounds>(2010)는 그 원형보다는 오히려 소음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각 언어별 개 짖는 소리는 그 기의에 맞는 최적의 기표로 구성됐다지만 그 최적의 합은 그야말로 ‘개소리’가 되고, 언어 체계 전체에 대한 의구심을 품게 한다.

〈Air Purifier〉 생화, 공기청정기, 유리,물 160×100×80cm 2011

작가는 이처럼 청각, 후각 등 인식 과정의 첫 단추인 감각적 요소를 작업에 도입함으로써 관객이 직접 그 당위성의 오류를 체험케 한다. 인간의 후각을 토대로 개발된 공기청정기가 담배 연기는 물론 꽃향기까지 정화시키는 <Air Purifier>(2011)는 그 왕성한 기능성에 실소를 머금게 한다.

〈Thinking Panels〉 검정색 판넬에 하얀 60×40×3cm 2010~11

작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감각의 대상 그 자체, ‘원본’을 의심한다. “인간의 인지 체계가 필요로 하는 인지 가능 범위의 신호들만이 추출된 채, 원본은 점점 더 그 유용성(아우라)을 잃어 가고 추출된 신호와 기호들은 필요 범위 안에서 재조합, 조립된다.” 옷을 입혀 앉혀 놓은 마네킹의 얼굴에 시시각각 변하는 작가 자신의 얼굴 영상을 투사하는 <The Street Where I’m Living>(2010), 스스로 목탁을 치도록 제작된 기계장치가 교묘하게 치는 척만 하고 녹음된 목탁 소리를 재생하는 <Meditation>(2013) 등은 관객이 가짜를 진짜라고 믿을 만한 최소한의 조건만 조성해 그 고상한 원본의 가치를 유린한다.

〈Dog Sounds〉 석유 드럼통, 스피커 70×50×50cm 2010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잉크젯 프린터로 물 위에 인쇄를 하는 <In Visibility_The History of Entropy>(2013)는 고대 상형문자부터 현대 디지털 언어, 사진, 회화 작품 등 인류의 인식 과정의 산물을 수면 위에 ‘기록’하지만 이내 검은 잉크가 물속에 융해돼 ‘소멸’되고 만다. 우리의 인식 체계 속 세상만물이 물속 잉크의 종잡을 수 없는 춤사위처럼 흔들리는 순간이다.

김상진 / 1979년 서울 출생. 서울대 조소과 영국 골드스미스 순수미술 석사 졸업. 갤러리민(2011), 금호미술관(2013), 대안공간루프(2014)에서 개인전 개최. 〈Dreaming Machines, 4th Moscow International Biennale for Young Art〉(2014, 모스크바 NCCA), 〈Robot Essay〉(2015,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다수의 기획전 참여. 서울 아라리오뮤지엄 스페이스(10. 3~25)와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탑동바이크샵(10. 10~2016. 1. 3)에서 개최될 〈헬로!아티스트: 창조하는 그리고 공감하는 자〉전에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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