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칭展
2015 / 11 / 04
8개의 방, 미술관에서 열린 ‘집들이’
리칭展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 (http://www.arariomuseum.org/main.php)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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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칭 개인전 〈8개의 방〉 중 ‘스터디 룸’ 설치 전경 2015
만일 미술관에서 집들이가 열린다면?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에서 중국 작가 리칭(Li Qing)이 집들이 시간을 가졌다. 바로 ‘뮤지엄 인 뮤지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된 작업 <8개의 방>을 공개한 자리다. 아라리오뮤지엄 2층의 작은 입구 앞에서 작가가 집들이에 초대된 관람객들을 맞이했다. 문을 통과하자 복도를 따라 응접실 서재 작업실 침실 다이닝룸 가라오케 욕실 화장실 등 8개의 작은 방들이 이어진다. 원래 3개의 방으로 구성된 미술관 2층의 기존 공간을 8개의 방으로 나눠 재구성한 것이다. 특히 작가는 좁고 천장이 낮게 설계된 미술관 건물, 즉 기존 공간사옥(등록문화재 제586호)의 특징과 건축미학을 고려하여 모든 방을 가능한 최소 규모로 구성했다. 비좁은 공간을 따라가는 내내, 마치 작가의 공개되지 않은 일상의 순간들을 몰래 들여다보는 것 같은 호기심이 생긴다.
<8개의 방>은 각기 실제 용도에 따라 가구와 집기로 채워져 있어서 아티스트의 일상적인 삶을 상상하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회화, 사진을 비롯한 여러 오브제 등 리칭의 개념적 작업들이 각 방을 채우고 있다. 한국 미술잡지에 실린 광고나 작품 이미지를 차용해서 제작한 작가의 회화 작업, 혹은 미술관의 작품 액자 유리에 비친 작가 자신을 촬영한 사진 연작 등이다. 이처럼 8개의 작은 방은 일상과 예술이 혼합된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즉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 묘하게 위치하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인 일상을 살면서도 늘 예술에 대한 고민과 질문들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삶의 단면을 ‘방’과 ‘공간’이라는 테마로 풀어냈다고 볼 수 있다. 익숙하고도 낯선 공간의 분위기를 한층 북돋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창문이다. 총 8개의 방 중에서 4개의 방에는 실제 창문이 설치됐고, 나머지 방은 작가가 만든 가상의 창문들로 꾸며졌다. 이 가상의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은 다양한 미디어에서 선별한 이미지들을 작가가 그려 낸 것. 미디어를 통해 재현된 풍경과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인지되는 주변의 모습들이 뒤섞여 있다.
이번 작업은 아라리오뮤지엄의 설립자 김창일 회장이 상하이에서 리칭의 개인전을 보고 직접 제안해 이뤄졌다. “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의 공간에 맞는 전시를 보여 주고 싶었다”는 김 회장은 “작품뿐만 아니라 그가 만든 공간을 통해 리칭의 독창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특별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방은 가능한 끝까지 유지하고 싶은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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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오픈 당일 진행된 전시 투어 행사에서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있는 작가 리칭
최근 중국에서는 회화 중심의 기성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다양한 매체의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1980년대 생 작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 한 명인 리칭은 1981년 저장성에서 출생했다. 장저예술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한 후, 2000년대 중반 <Finding Differences> 시리즈와 <Images of Mutual Undoing and Unity> 시리즈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회화를 기반으로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시도하는 작가는 관람자와 회화 사이의 상호작용, 중국 동시대 사회의 일상과 집단적 행위에 대한 시각적 경험 등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전통적인 아카데미 방식을 따르는 동시에 이를 재해석한, ‘지적인 회화’라고 불리는 자신만의 방식을 완성했다. 2006년부터 중국 미국 스페인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서울시립미술관(2009), 상파울루현대미술관(2011), 롱뮤지엄웨스트번드(2014)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초대됐다. 상하이비엔날레(2012), 베니스비엔날레(2013) 등에 참여했으며 현재 상하이와 항주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