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cm: 우리들의 초상展
2016 / 02 / 01
뒷모습, 또 다른 ‘나’의 얼굴
3×4cm: 우리들의 초상展 2015. 11. 27~12. 10 서교예술실험센터 (http://cafe.naver.com/seoulartspace/)외 1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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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사진관’에서 촬영한 뒷모습 증명사진
지난 11월, 서교동에 있는 서교예술실험센터 정문 앞에 한 평 크기의 부스가 설치됐다. 거대한 카메라 모양으로 장식된 부스의 이름은 ‘엉뚱한 사진관’. 누구든 무료로 증명사진을 찍어 주지만 앞모습뿐 아니라 뒷모습까지 촬영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작가 문해주 서유진 손민지 한누리가 결성한 그룹인 ‘관계;대명사’가 기획한 이 프로젝트는 첫 직장을 구하는 청년부터 재취업에 도전하는 중장년층 등 구직을 희망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찍는다. 프로젝트는 “증명사진과 함께 이력서에 기재되는 학력과 어학 성적, 경력, 자격증 등이 과연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했다. 특정한 얼굴이 없는 뒷모습에 주목하여 보다 평등한 상태에서 개인의 다양한 이야기를 포용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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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명사진을 찍은 참여자는 사진을 직접 오려서 ‘엉뚱한 이력서’를 작성할 수 있다.
11월 16일부터 20일까지 엉뚱한 사진관에서 260명의 뒷모습을 찍고, 이후 〈3x4cm: 우리들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서교예술실험센터(2015. 11. 27~12. 10)와 올림푸스타워 갤러리펜(1. 8~23)에서 두 차례 전시를 열었다. 엉뚱한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으로 제작한 설치 작품과 4명의 작가가 각자 ‘뒷모습’을 주제로 작업한 작품 20여 점을 선보였다. 먼저, 문해주는 중장년층의 ‘열정’을 뒷모습 사진과 그들의 오래된 소지품을 통해 소개한다. 사진과 함께 전시된 손때 묻은 일기장, 한자사전 등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 온 그들의 삶을 증명해 준다. 서유진은 연주회, 연극 등 조명이 설치된 무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섭외하고 그들이 공연하는 뒷모습과 실제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각각 한 장씩 찍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하는 사진에만 조명을 비춤으로써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현실적인 모습이 빛을 받는 장면을 연출했다. 손민지는 새터민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면서 신변 보호 등을 이유로 그들의 뒷모습만 촬영해야 했던 경험을 되살렸다. 새터민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익명으로 쓴 정착 수기가 그들의 뒷모습, 즉 솔직한 모습을 드러낸다고 생각해 그 기록을 전시장 한 벽면 가득 빼곡하게 붙였다. 한누리는 프로젝트를 실행하기에 앞서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인터뷰 했다. 취업이라는 결과만 중시하는 편견에 맞서 나름의 방식대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찍어 사진, 퍼즐 등으로 표현했다. 한편, 관계;대명사와 무아건축이 공동 작업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엉뚱한 사진관에서 찍은 증명사진 100개에 각각 소형 조명을 설치한 작품이다. 조명은 증명사진으로 인화된 뒷모습을 집중적으로 비추는데, 이는 그동안 우리가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던 뒷모습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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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cm: 우리들의 초상〉 전시 전경 2016 올림푸스타워 갤러리펜
문해주는 이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형식 안에서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설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를 소개했다. 서교예술실험센터 근처에 살고 있는 80대 할머니가 엉뚱한 사진관 프로젝트를 발견하고 영정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 것이다. 작가들은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면서 각자 본인의 할머니라고 느낄 만큼 정을 나눴다. 이처럼 관계;대명사는 그룹명처럼 사람과의 관계를 연결하는 ‘대명사’가 되어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기획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