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Look] 정지현
밤중의 도시 탐험, 개발의 재구성
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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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nstruction Site 10〉 피그먼트 프린트 140×180cm 2015
부서진 건물, 그 폐허 속에 남겨진 빨간 페인트 자국이 선명하다. 정지현은 철거 직전의 건물 속으로 들어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낸다. 작가는 그 곳에서 살았거나 앞으로 살게 될 사람들은 결코 볼 수 없는 공간을 잠시 점유하고, 빨간색 페인트로 표식을 남긴다. 철거가 진행되면서 건물의 외벽이 헐리면 이 ‘빨간 방’이 외부로 드러난다. 〈Demolition Site〉 연작의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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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lition Site 04 Outside〉 피그먼트 프린트 120×160cm 2013
정지현은 어릴 때부터 잠실의 아파트에서 거주하면서 재건축 진행 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도심 재개발의 관찰자가 됐다. 2005년경부터 오래된 아파트 사진을 꾸준히 찍어 오며 10년 넘게 재개발 이슈에 천착하고 있다. 그는 〈Construction Site〉 연작에서 판교 신도시, 인천 청라지구, 서울 중랑구의 신내택지개발지구 등 대단지 아파트 건설 현장을 ‘탐험’하며 촬영했다.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 안쪽의 차가운 콘크리트가 노출된 모습을 자연광을 이용해서 따뜻한 색감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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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ruction Site Dreg 03〉 피그먼트 프린트 90×75cm 2012
〈Construction Site Dreg〉 연작에서는 차가운 철근 조각, 시멘트가 묻어 독특한 형태로 굳어 버린 포대 등을 클로즈업한다. 작가는 여기서 재개발과 관련된 사물의 기능적 질서를 전복하고, 자신의 정서적인 경험을 표현하며 초기작에서 보여 준 관찰자적 시점을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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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ruction Site Dreg 21〉 피그먼트 프린트 90×75cm 2012
나아가 〈Demolition Site〉 연작부터는 자신이 침입한 건물의 방마다 빨간색 페인트를 칠하며 주체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그는 〈Red Room〉에서 이러한 ‘빨간 방’으로 가득 찬 화면을 가로 6.7m, 세로 18m의 초대형 사이즈로 출력해 캐나다 사진 페스티벌 현장의 오래된 건물 외벽에 설치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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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truction Site Dreg 01〉 피그먼트 프린트 90×75cm 2012
또한 최근 강남 개포주공2단지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 속으로 들어가 신작 〈Reconstruction Site〉 연작을 완성했다. 작가는 재건축 과정을 “개인이 집단화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는데, 이러한 시각이 신작에서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Demolition Site〉에서 폐허 속 파편이었던 ‘빨간 방’은 외벽을 허물고 난 건물 위에서 하나의 긴 수평선을 이룬다. 같은 층에 있는 각 세대의 집안을 모두 빨간 페인트로 칠한 것. 철거가 진행되면서 수평선은 허물어지고, 다만 몇 개의 점으로 남게 된다. 그 뒤편으로 주상복합단지 타워팰리스에서 각 세대가 켜 놓은 노란 불빛이 모여서 수직의 점선을 그리며 묘한 대비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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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lition Site 01 Inside〉 피그먼트 프린트 120×160cm 2013
재개발의 ‘막전막후’가 모두 담긴 이 작업은 재건축이 만들어 낸 ‘개인의 집단화’ 현상에 대한 작가의 목소리를 은유적으로 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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