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택展
2016 / 05 / 04
‘연금술’로 피어나는 색면회화
장승택展 4. 5~5. 4 갤러리데이트(http://gallery-d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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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택 <색채들>전 전시 전경 2016 갤러리데이트_작가는 반투명의 폴리에스테르 필름 또는 시트를 포갠 플렉시글라스 위에 물감을 덧바른다. 여러 장의 플랙시글라스가 쌓이면서 회화의 단층이 생겨난다.
부산 갤러리데이트에서 단색화 2세대 대표작가 장승택의 개인전 <색채들>(4. 5~5. 4)이 열렸다.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장승택은 점 선 면 색 등 그림의 요소를 하나씩 분리하고 그중 한 요소를 내세우는 방식으로 작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플렉시글라스 박스 위에 아크릴과 특수 혼합 안료를 섞은 물감을 에어브러시로 뿌려 제작한 회화 신작을 선보인다. 작가는 합성수지가 원료인 플렉시글라스를 자주 사용하는데, 네 개의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어 하나의 오브제처럼 비치도록 했다. 박스 위로 물감을 수십 번에 걸쳐 살포하면서 서로 다른 색들이 여러 겹 쌓이는 형태로 제작한다. 그 결과 정면에서 볼 때는 일반적인 단색화처럼 보이지만, 옆면에서 봤을 때는 투명한 ‘색채들’이 흘러내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고안한 이와 같은 작업 방식은 세 차례의 제작 과정을 거친다. 첫째, 점액질의 물감을 희석하는 ‘액화과정’. 둘째, 그 액체의 ‘기화과정’. 셋째, 플렉시글라스에 뿌려진 입자들이 가라앉으면서 굳어지는 ‘고체화과정’이다. 동일한 재료가 액체 기체 고체의 형태를 넘나들며 작품으로 완성돼 가는 과정은 연금술에 비유되기도 한다. 작가는 “빛과 색채는 회화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지만, 나의 작업에 있어서 그것들은 반투명한 매체와 함께 절대적인 요소가 된다. 증식하는 투명한 색채와 빛의 순환으로 구체화된 물성을 통해 정신이 드러난다. 그것이 내 작업에서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장승택은 서울에서 연 개인전을 계기로 1990년부터 1993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특정 재료의 물질성을 실험하기 시작했다. ‘중성적인 공간’과 ‘의식의 투명성’을 주제로 작업을 선보였는데 전자는 회화의 재현성을 거부하고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을, 후자는 무의식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한 회화작업이다. 이후 1994~95년 동안 레진의 특성인 투명성을 강화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1998년 이후부터는 박스 형태의 작업을 선보였다. 25년 이상 전업화가로 활동해 온 작가는 단색화 2세대 중에서도 붓을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작업 방식으로 미술평단의 이목을 끌었다. 작업 초기부터 일관되게 수지 플라스틱 유리 등 비전통적인 매체를 회화작업에 적극 사용, 새로운 개념의 추상회화를 실험하면서 자연주의적인 경향의 1세대 회화와는 또 다른 지평에 서있다고 평가받는다. 평론가 에릭 수체어(Eric Suchère)는 “장승택은 결코 작품과 현실을 분리하지 않는다. 차분한 외형을 하고 있음에도 그의 작품이 결코 평온하지 않은 이유는, 작품이 현대적 의미에서 ‘판도라의 상자’로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또 평론가 윤진섭은 장승택을 “주의를 기울여야 할 중요한 단색화 2세대 작가 중 한 명”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전시와 비슷한 시기에 대구 갤러리분도에서도 개인전 <色들>(4. 4~30)이 열려 많은 관객에게 장승택의 회화를 동시에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장승택은 1959년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홍익대 서양화과 및 파리 국립장식미술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파리1대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89년 프랑스 알베르샤노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갤러리분도(2016), P&C갤러리(2013), 갤러리스케이프(2012) 등에서 개인전을 20여 회 개최했다. <텅빈 충만: 한국 현대미술의 물성과 정신성>(갤러리세줄 2014), <색전>(일우스페이스 2013), <한국의 단색화>(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2) 등 다수의 단체전 참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 등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작가는 현재 경기도 포천과 베를린을 오가며 활발히 작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