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Look] 정문경
물질의 ‘아니마’
정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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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kcim-part1> 혼합재료 480×430×360cm 2012
애니메이션(Animation)의 어원이 ‘생명의 숨결’을 뜻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이듯,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단순히 2차원의 그림을 넘어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존재해 왔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더욱 그렇다. 애니메이션에서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는 ‘순수’나 ‘동심’ 같은 성격과 결부되어 아이들의 친구 역할을 맡곤 했다. 정문경의 인형 작업이 친숙하고 귀여운 첫인상을 남기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초대형 인형 조각을 요모조모 들여다보면, 다정한 친구보다는 공포영화 속 ‘처키’에 더 가까운 괴기한 생김새를 발견할 수 있다. 똘망똘망한 눈 대신 스프링 튜브가 튀어나온 미키마우스(<Yekcim>)와 실밥과 박음질이 그대로 노출된 곰돌이 푸(<Hoop>), 캐릭터의 고유한 색이 제거된 허여멀건한 구피(<Yfoog>)까지. 더불어 인형의 압도적인 사이즈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한층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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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foog>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6
작가는 “대중적인 캐릭터 인형을 뒤집어 예쁜 겉모습에 숨겨진 내면의 상처와 폭력성을 밖으로 드러내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적 집단에 소속감이 커질수록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이 종종 ‘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잘 다듬어진 외면 안에 본심을 감추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작가는 이러한 이중성을 걷어 내고 진실한 본연의 모습과 마주하기를 바란다. 각 캐릭터의 이름을 거꾸로 뒤집은 작품명 또한 위트 있으면서도 작업 의도를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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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헌 옷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5
한편, 작가는 옷을 소재로 한 작업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지인들로부터 헌 옷을 수집하고 낯선 형태로 재조합하는 것. 각각의 옷은 그 옷을 입었던 개인을 의미하고, 뒤엉킨 옷 더미(<무제>)는 개인이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 맺으며 집단을 형성한 상태를 상징한다. <식은땀>은 대여섯 벌의 옷이 꽈배기처럼 뭉쳐 있어 서로가 구분되지 않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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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땀> 혼합재료 사운드 가변크기 2015
“획일화된 집단에서 진실한 내면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듬어진 외면과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감, 외로움, 심리적 괴리를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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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생>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6
정문경의 작업은 사회적 집단과 그것을 구성하는 개인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집단의 안정을 위해 소홀하게 여겼던 개개인의 정체성에 주목하고, 인형이나 옷 따위의 부드러운 소재를 사용하면서 치유하듯이 작업한다. 얽힌 옷 더미에서 다시 한 벌씩 꺼내 반듯하게 다림질하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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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두리>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5
작가는 진정한 내면의 근원이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 작업으로는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사물을 통해,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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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경 / 1981년 서울 출생. 서울시립대 환경조각과 졸업 및 캘리포니아인스티튜트오브디아츠 대학원 졸업. 송은아트큐브(2016), 노암갤러리(2013), 아트스페이스에이치(2012), 인사미술공간(2011) 등에서 개인전 개최. <동심의 색깔>(메이크샵아트스페이스 2016), <효·어·예>(전북도립미술관 2016), <구사구용>(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2015), <하정웅청년작가 초대전: 빛2015>(광주시립미술관 2015) 등의 단체전 참여.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2015) 입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