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Look] 김하영
‘인간 이후’의 캐릭터, 위험한 내러티브
김하영
첨단 기술 사회 속에서 눈코 뜰 새 없을 만큼 숨 가빠진 일상이 어느덧 우리 곁에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달리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고유의 개별성과 인간성까지도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하영 작가가 그리는 2D 캐릭터들은 이러한 발전의 파도에 휩쓸려 무기력해지다시피한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 얼핏 익숙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을 떠올리게 하는 귀여운 그림체다. 그런데 얼굴, 몸 등이 분절된 상태다. 눈은 대체로 텅 비어 있으며, 서로 또 다른 신체 기관과 복잡하게 얽혀 있기도 하다. 이들은 어딘가에서 도망치고 있거나 뭔가를 끊임없이 먹고 있다.
작가는 이 “수동적인 먹보’들은 (포스트)모던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말한다. 영국에서 작업하고 활동하는 작가는 오랜만에 한국에 귀국했을 때 거리에서 성형외과 광고 사진 속 ‘비포&애프터’ 얼굴을 보고 기이함을 느꼈다고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얼굴을 성형하고, 장기를 이식하는 등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바꾸는 인간은 벌써 ‘인간 이후’의 어떤 생명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검정색 굵은 윤곽선 안에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컬러풀한 면 처리는 발랄한 인상을 주지만, 그 속의 어두운 내러티브는 “유머가 숨길 수 있는 공격성과 위험성의 구조”를 차용하여 의도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매체를 두 개로 나눈다. 폴리에스테르 천에 그리는 작은 그림과 여러 장의 아세테이트 필름 위에 그리는 큰 그림이다. 작은 그림은 개별 캐릭터들의 초상화이며, 큰 그림은 이 캐릭터들이 모여서 만들어 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가 캔버스 대신 폴리에스테르와 아세테이트를 택한 것은 개념적 접근이기도 하다.
폴리에스테르 천에 그리는 행위는 캔버스에 겹겹이 쌓여 있는 미술사의 오랜 서사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의지의 발현이다. 아세테이트 필름의 경우 주로 여러 장 겹쳐서 그리는데, 이 경우 겹쳐 놓은 상황에 따라 각 장의 그림 투명도가 달라지며 2차원 상에서 가시적인 깊이를 표현한다. 또한 아세테이트 필름 위에 그릴 때는 매트한 뒷면에 스케치에서부터 채색까지 모두 완성한 다음 뒤집어서 전시한다. 완성된 상태에서 스케치 자국이 노출되는 것은 작가의 “사물의 외부에서 내부를 들여다 보려는” 의도를 드러 낸다.
광택 나는 투명한 화면 아래로 반전된 그림이 선명하게 나타나지만 정작 표면의 붓질 등의 텍스처를 느낄 수 없는 상황은 우리가 한시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화면 속 환경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