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고 그리다展
2016 / 12 / 07
미술계 ‘은사’를 기억하다
하동철 추모전, 헌정 - 기리고 그리다展 11. 11~27 학고재갤러리(http://www.hakgojae.com/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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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철 <빛02-03> 캔버스에 아크릴 120×240cm 2002
학고재갤러리에서 미술계 ‘스승’의 가르침에 보답하는 전시가 열렸다. 올해로 10주기를 맞은 작가 하동철(1942~2006)의 추모전 <헌정-기리고 그리다>가 그것이다. 생전에 작가이자 서울대 교수로 활약했던 하동철 아래에서 19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시대를 관통하며 그를 사사한 제자들이 앞장서 전시를 꾸렸다. 윤동천 서울대 교수를 주축으로 최성원 서울여대 교수, 박광열 작가, 김태진 국민대 교수, 신수진 서울대 강사가 공동 기획했다. 이들을 포함한 참여작가 수가 총 57명에 이른다.
하동철은 ‘빛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빛을 우주 질서를 상징하는 불변의 요소이자 생명의 근원이라고 보고, 25년 넘게 빛을 주제로 작업을 펼쳤다. 그의 제자이자 이번 전시에 서문을 쓴 평론가 강태성은 하동철이 “어둠 속에 나타나는 빛을 그렸다. 노을의 색면을 화면에서 한정 없이 자유로운 빛으로 등장시키며, 그 위에 실을 튕겨 물감이 터지듯 형성하는 선들을 가로와 세로로 일정하게 엮은 추상화를 보여주었다”고 분석한다. 또한 하동철이 “판화가로서도 다양한 판화를 제작했다”며 특히 “탁본에 관심을 가져 한국의 전통적인 조형을 발전시켰다”고 덧붙였다. 실제 하동철은 회화뿐 아니라 드로잉, 판화,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펼쳤다. 미국 템플대학교 타일러스쿨오브아트 대학원에서 판화과 박사를 졸업한 그는 특히 판화 작품을 많이 선보였다. 귀국 후 성신여자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 국내 첫 판화과와 판화전공을 개설하는데 앞장섰을 정도로 판화의 정착과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힘썼다. 1985년부터는 국립현대미술관에 판화교실을 만들어 2000년대 초반까지 수업했다.
이번 전시는 하동철의 1주기, 5주기 기념전에 이은 10주기 추모 전시다. 작가를 기억하기 위한 지속적 노력에 눈길이 간다. 전시장에는 하동철의 가르침을 받은 중견작가 57명이 옛 스승을 기리고자 그들의 작품을 1점씩 출품했다. 이들이 출품한 소품 위주의 평면 작품과 함께 하동철의 대형 회화 <빛 02-03>(2002)이 함께 전시됐다. 작품은 빛줄기가 위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짧은 선을 수평과 수직으로 반복해서 펼쳐 놓는다. 교차하는 어지러운 직선들의 예각이나 둔각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기하학적이며 예리한 선들이 교차한다. 또한, 스승의 대형작품과 제자들의 다양한 소품이 마주하고 있는 장면은 흡사 작품을 통한 이들의 조우인 것 같은 형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전시 제목처럼 하동철을 ‘기리고 그리는’ 작가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이번 전시에 작품을 출품한 윤동천과 김형관, 임자혁은 하동철의 뒤를 이어 서울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문을 쓴 강태성은 한국 미술이론학회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비평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전업작가로 두각을 나타내는 제자도 다수다. 공성훈은 2013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배준성은 2000년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한국 현대미술의 한 흐름을 일군 하동철을 기억하고자 하는 전시의 취지에 공감하여 공간을 내주었다며 “한국 현대미술에서 단색화에만 관심이 쏠려있는 가운데,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화백들의 활동과 업적은 우리가 잊지 말고 지켜야 할 훌륭한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이 전시를 통해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작고 작가를 재조명해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꾀할 뿐 아니라, 현대미술사를 함께 구성해나간 후배작가들을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 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