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실천>: 젊은 비평, 새로움을 모색하다
2017 / 03 / 07
젊은 비평, 새로움을 모색하다
비평실천展 2. 1~7 산수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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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실천> 전시 전경_산수문화 전시공간에는 제작된 책을 볼 수 있는 의자, 테이블, 조명과 관람객이 직접 복사할 수 있도록 대여한 복사기가 설치되어있다.
동시대 ‘미술비평’ 자체를 주제로 한 전시가 열렸다. 바로 산수문화에서 열린 <비평실천>전(산수문화 2. 1~7). 신림동 전시장에는 작품 대신 젊은 필자들의 평론에 대한 다양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드러낸 글을 엮은 책 40권이 전시됐다. 관객은 책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지만 전시장 바깥으로 들고 나갈 수는 없다. 다만 복사기가 비치돼있어 원하는 부분을 손수 복사해갈 수 있다. 이 책에는 최근 젊은 필자로 주목받고 있는 권시우 김정현 안진국 이기원 홍태림이 글을 썼다. 여기에 기성 평론가 곽영빈 방혜진 임근준 정현이 글을 보탰다. 젊은 필자 5인은 동료 필자, 선배 평론가, 번역가, 문화평론가 등을 초청해 각자가 생각하는 비평의 역할과 가능성을 논하는 토크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했다. 그런데 담론의 자리에서 특히 젊은 필자가 주인공이 된 까닭은 뭘까? 가장 직접적 이유는 바로 이번 전시의 기획자가 젊은 세대기 때문. 프로젝트팀 MMM으로도 활동하는 신진기획자 이양헌은 동세대의 시선에서 바라본 오늘의 비평에 대한 질문들을 풀어놓고자 한 듯하다. 특히 기성과 다른 대안적 시선이 궁금했을 것이다. 사실 나 역시도 ‘새로운 비평하기’에 대한 갈증이 가득하던 차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으로 현장을 찾았다. 연계 토크가 진행된 2월 4일에는 학생은 물론 작가 평론가 기자 전시공간 운영자 등 40명이 넘는 관객이 몰렸다. 소규모 신생공간에서 신진기획자가 개최한 ‘그림 한 점 없는 전시’로서 상당한 숫자다.
김정현은 <덧붙여진 삶>이란 제목으로 윤원화 이빛나와의 대담을 진행했다. 그는 필자 5인이 함께한 사전 라운드테이블(1. 4)을 언급하며 “(또래) 필자들이 거의 처음으로 ‘비평’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공유한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자리를 가득 메운 20~30대 젊은 청중도 비슷한 기대로 이곳을 찾은게 아닐까. 그는 신진평론가로서 청탁에 따라 리뷰할 전시를 정하는 방식, 작가-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등 주류매체나 기관이 통상 요구하는 비평가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이어갔다. 그는 전시된 책에 쓴 글에서도 “비평가는 독자와 관계 맺지 못하고 일방적 글쓰기에 머물며 스스로를 소외시켜온 게 아닌가. 그것이 제도의 탓이라면 하나씩 되짚어가며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 또한 비평의 과제다”라며 제도 개선에 대한 관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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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실천> 전시 리플렛
권시우는 <텍스트 작도하기: n개의 키워드들>에서 또 다른 젊은 필자 김뺘뺘(유지원)와 함께 서로의 글에서 키워드를 추출해 질의를 이어가는 일종의 ‘쌍방 크리틱’을 진행했다. 일반 학술행사에서 볼 법한 다소 평이한 형태. 권시우는 “내 글에 대한 피드백으로 리트윗 외에는 명시적 반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의 글에 등장하는 ‘유닛’ ‘열화’ ‘불능감’ 등의 용어에 대해 “내 세계관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단어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해 사용하는 것은 광범위한 소통이 어렵다는 맹점도 있다. 이를테면 데리다가 ‘차이(difference)’로부터 ‘차연(differance)’이란 조어를 탄생시켰듯, 훨씬 더 장기적 비전을 두고 용어별 개념을 체계화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자리는 공개적 피드백을 통해 젊은 필자 스스로의 비평언어를 정교하게 벼리는 기회가 됐다. 온라인에서 주로 유통되던 글을 오프라인에서도 적극적으로 논의하면서 가시성을 높이고, 나아가 메타-논의까지 도모하려는 전략적 액션이 된 것도 물론이다.
이밖에도 전시된 책 속에서 비평을 둘러싼 다양한 사안을 향한 젊은 필자들의 문제제기가 이뤄졌다. 이기원은 “렌즈를 통한 광학 기술이 배제된 사진들은 기존의 사진이론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라는 미학적 질문을 던졌다. 홍태림은 공장미술제, <아트스타코리아> 출연자 불공정계약, 미술작품 검열사태, 표절논란, 위작논란 등 2014년 이후 미술계 ‘사건일지’를 들며 “암운의 내외를 기록하고 비판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책에 실린 ‘선배 세대’라 할 수 있는 기성 평론가들의 글에도 각기 다른 색깔로 비평에 대한 고민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책은 전시 종료 후 전량 파기조치됐다. 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가운데 기획자는 “텍스트만으로 된 비평은 이제 동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라는 다소 급진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였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제 “비평은 픽션이 가미된 새로운 텍스트로,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의 응전으로, 그리고 비평을 매개하는 큐레이션”이란 새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느냐고. / 채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