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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展

2018/10/07

번역된 기억들
이경희展 9. 1~21 인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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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기억>혼합재료59×59cm2018

1993년 나는 남편과 함께 이탈리아로 유학을 하러 갔다. 경희대학교 미술교육학과 서양화 전공을 졸업한 후였다. 그곳에서 남편은 조각을, 나는 무대장식을 공부했지만, 개인사정으로 학업을 끝마치지 못하고 귀국했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지내다, 결국 학업에 관한 아쉬움을 못 이겨 다시 이탈리아로 돌아갔고, 카라라아카데미아의 서양화과에 진학했다.
나는 2000년 무렵부터 꽃을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다. 집의 정원에서 키운 아름다운 꽃들은 나와 남편의 힘든 유학 생활을 달래주었고, 내게 많은 기쁨과 추억을 주었기 때문이다. 재료는 항상 사용하던 유화 물감이었다. 큰 캠퍼스에 장미꽃의 거대한 뒷모습을 비롯해 정말 많은 종류의 꽃을 그렸다. 하지만 왠지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에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2013년 겨울, 재료와 기법에 변화를 주었다. 실크지와 천에 물들여지는 수채화 기법에 매료되어, 조그만 나무판에 실크 배접지를 붙여 수채화 물감으로 꽃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2009년쯤 서울에서 어머니께 아버지의 유품인 모시 저고리와 삼베를 받아 이탈리아로 가져온 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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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된 기억> 혼합재료 70×134cm 2016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시 저고리에 그림을 그려 나와 아버지의 소중한 기억을 영원히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매화꽃이 연상된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쓰이지 않은 그 저고리에 매화꽃을 그렸다. 저고리의 침체된 분위기에 화려함과 생명력 그리고 나의 ‘번역된 기억’을 불어넣고 싶었다. 매화꽃을 한송이 한송이 완성할 때마다 내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신비한 체험과 재미, 설레임을 느꼈다.
나는 모시저고리 그림을 완성한 후, 바로 장롱 속 깊이 넣어둔 긴 모시를 꺼냈다. 모시를 정사각형으로 무작정 자르고 실크실로 가장자리를 마무리하거나 천의 부분을 스티치했고, 그 위에 지금까지 추억으로만 남겨둔 나의 기억과 이야기를 꽃의 모습으로 그려 표현해나갔다.
모시와 삼베에 그린 꽃들은 나의 삶에서 간직하고 싶은 하나의 번역된 기억인 셈이다. 이 기억은 천을 물들이고 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번역된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인사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이어, 내년에는 제2의 고향인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 전시회를 기약하고 있다. 나의 즐거운 그림, 나의 번역된 기억은 계속되길 희망하며….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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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기억>혼합재료59×59cm2017

이경희 / 1967년 목포 출생. 경희대, 카라라아카데미아 서양화과 졸업.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의 산타고스티노(2017), 팔라초파시니(2012) 등에서 열린 그룹전 참여. 인사갤러리에서 개인전 <번역된 기억> 개최. 이탈리아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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