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리 워드展
2018 / 10 / 09
신체와 제도, 이중의 은유
<Nari Ward: CORRECTIONAL>展 8. 28~10. 20 리만머핀서울
예약제로만 운영하던 리만머핀 서울사무소가 대중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문을 활짝 열었다. 공식 개관전으로 선보인 전시는 미국의 설치 및 조각가 나리 워드의 한국 첫 개인전. 그는 일상 속 사물을 재료로 인종과 빈곤, 소비사회 등 사회 정치적인 이슈를 작품에 은유적으로 풀어낸다. 개인전을 중심으로 작업 전반에 드러나는 작가의 철학과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 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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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ional Circle 1280> 나무, 구리, 못, 녹청 121.9×121.9cm 2018
Art 한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다. 전시의 주제와 제목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 부탁한다.
NW 전시 제목 ‘Correctional’은 이 단어가 ‘고치다, 바로잡다’ 등 다층적 의미를 내포한다는 데서 출발했다. 특히 형벌을 통해 죄수를 교화, 사회화함을 뜻하기도 해 단어에 깊은 층위가 발생한다. 같은 단어라도 사물을 대상으로 할 때는 ‘고치다’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는 ‘사회에 포섭시킨다’는 의미가 더 강해진다. 이처럼 비슷하지만 긍정적, 부정적으로 상이하게 해석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이 단어 자체가 이중성을 보유하고 있듯이 하나의 사물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품의 소재, 제목, 모티브 등에서 ‘교정’이라는 행위와 관련해 이중성을 띠는 작품 9점을 전시로 꾸렸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새로운 맥락에 구현해, 관객이 이 사물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제안하고 유도하는 작품을 만들어 왔다. 이런 점에서 내 작품을 접하는 것도 일종의 ‘교화적’인 경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Art ‘이중성’이 출품작을 관통하는 키워드라 했다. 개별 작품에서 이러한 이중성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 부탁한다.
NW <Correctional Circle>과 <Knot Ending>은 이번 전시의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Knot Ending은 매듭이라는 뜻인데, Knot을 음차하면 not ending, 즉 ‘끝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작품 제목에서부터 이중성이 드러난다. <Correctional Circle>은 <Breathing Panel> 연작 중 하나로, 연작의 중심 모티브인 중앙의 다이아몬드형 패턴은 콩고의 우주론을 묘사한 도형이다. 탄생과 죽음 그리고 재탄생으로 이어지는 무한의 고리를 상징한다. 두 작품 모두 ‘시간’을 중요한 개념으로 삼고 있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복원과 치유가 일어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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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rectional Circle 1280> 나무, 구리, 못, 녹청 121.9×121.9cm(부분) 2018
Art 작품의 제목에서부터 이중성이 드러나니, 과연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만 하다. 그러나 나머지 작품들은 조금 더 깊은 층위에서 이중성을 다루는 듯하다.
NW 빈 계산대를 중심 소재로 사용한 <Till> 연작은 마크 로스코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이다. 그는 어떤 고귀한 영적 가치를 추구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형식'에 천착했다. 나는 형식적 측면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통해 사회 정치적 함의를 전달하고 싶었다. 로스코의 작업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의 모티브가 작품에 두드러지는데, 사실 이는 1달러 지폐 테두리를 레이저 커팅해서 붙인 것이다. 화폐가치를 해치치 않는 선에서 잘랐기 때문에 모두 시중에 통용되고 있다. 또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뉴욕의 비영리단체인 Housing Works에 기부했다.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사물을 활용하는 작가로서 나는 내 작품이 단순히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나 공익에 기여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게 여겨졌다.
<Swing Low>는 청동으로 장식한 고무타이어를 매달은 작품인데, 각 소재의 상징성에서 이중성이 두드러진다. 타이어로 만든 ‘그네’라는 점에서 즐겁고 유희적이지만 바퀴의 ‘매듭’에 주목하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이는 교수대 매듭과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폭력과 비극의 이미지를 쉽게 연상시키게 된다. 한편 ‘타이어’에 주목하면 움직임, 역동성이 느껴지기도 하며, 무엇보다 이 원 형상에서 시간의 흐름, 순환이라는 함의를 찾을 수도 있다. 유희와 폭력, 끝과 순환과 같이 다양한 이미지가 상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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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t Endings> 운동화 끈 320×198.1cm 2010
Art 전반적인 작업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초기 작업은 3차원성이 두드러지다가 <Breathing Panel> 연작(2015)을 시작하며 평면적인 조각으로, 나아가 <Till> 연작(2017)처럼 회화에 가까운 형태로 변했다.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NW 우선은 작품을 구현하는 방식을 다양하게 탐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공간과 차원을 고려해, 내가 작업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야 작가로서 자신감이 생긴다. 대학원에서 드로잉을 전공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나는 전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90년대 주변에서 발견한 사물이 나의 상상력을 자극해 이를 이용해 조각, 설치미술의 세계에 입문했다. 이제는 3차원의 세계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됐기 때문에 다시 드로잉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형식이 어떻게 바뀌든 나는 작업을 통해 인간의 신체를 탐구하고 사회적 제도에 대해 발언하는 태도를 유지할 것이다.
Art 지금까지 여러 작업에서 특정 관심사를 지속적으로 다뤄왔음에도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해 항상 작품에 대한 해석의 여지를 폭넓게 열어두었다.
NW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은 정답을 제시하는 작품이 아니라 질문을 이끌어내는 작품이다. 더 많은 질문을 이끌어낼 수록 더 훌륭하고, 신비하고, 힘이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 내 의도를 관객에게 알려주기 보다는 그들이 스스로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두고 싶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내 작품의 시작점이며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거두어내지 않는가, 또 얼마나 많은 사실들을 드러내지 않고 신비 속에 감춰두느냐를 내 작품의 성공의 잣대로 삼고 있다. 상반된 가치가 상충하는 작품 속에서 관객이 스스로의 자리를 찾고 시각을 만들어가도록 돕는 것이 내 작품이 지향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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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ing Low> 청동, 로프 71.1×68.6×33cm 2015
Art 스스로를 사회운동가로 정의하지는 않지만, 작품을 통해 사회와 정치적인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도 사실이다.
NW 작가를 크게 두 그룹으로 분류하자면, 먼저 형식이나 소재를 우선시하는 부류가 있고 사회 정치적인 메세지 전달을 우선시하는 부류가 있다. 나는 상대적으로 두가지의 균형을 맞춰나가려고 노력한다. 또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문화적인 경험이나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사람들은 보통 예술세계가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소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여러 반경에서 활동을 하기 보다는 하나의 예술 세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나는 이 둘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메세지가 지나치게 강하게 전달되는 것은 사실 원치 않는다. 그래서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를 보완하고 상충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나는 이 두 측면을 모두 중요시하며 어느 것 하나가 다른 것을 압도하는 상황은 원치 않는다.
Art 내년 2월 뉴뮤지엄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앞두고 있다. 전시에 대해 미리 귀띔해줄 수 있나.
NW 근작보다 90년대 작품을 주로 전시할 예정이다. 작가로서 걸어온 여정을 한눈에 바라보는 자리이니, 스스로 재충전을 할 수 있는 기회이자 앞으로 나아갈 길을 고심해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Ground(In Progress)>(2015)처럼 바닥을 활용하는 구조물을 발전 시켜보고 싶다. 뉴뮤지엄 전시를 위해서도 계단참이나 바닥에 들어갈만한 새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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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and Seo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