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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말하는작가이용덕*최하늘

2018/11/04

Art는 10월호 특집에서 작가의 시점으로 한국미술계의 지평을 넓혀 온 주요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름하여, <작가는 작가의 작가>. 작가는 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한 작가의 조형 방법과 예술정신은 다른 작가의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또 다른 관객이자 그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동지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작가 매칭’이라는 방법론을 끌어들였다. 총 11명의 작가들이 직접 보내 온 원고를 공개한다.

이용덕 * 최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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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덕<WindyHills040985>혼합재료150×115×30cm2018_<불가분>(8.23~2019.1.6아라리오갤러리천안)전출품작.이용덕(1956년생)은음각으로새긴조각이지만양감이느껴지는독특한부조인‘역상조각’의창시자다.음과양,안과밖의경계에대한인식을재고하고,둘이공존하는모순적상황을작품으로형상화한다.이번전시는국내에거의공개되지않은역상조각19점과모터,전자석을이용해새롭게제작한대형조각7점을공개했다.‘역상조각가’로고정된정체성을탈피하고 설치,영상,움직이는조각으로작품세계를확장하는작가의여정을확인할있다.

역상조각, ‘불가분’의 개념을 품다

안과 밖이 반전된 역상조각은 그 신비함으로 인해 많은 필자들의 재료가 되어 다양한 글을 양산해 냈다. 그리고 이 특이한 조각을 만든 사람이 하필 동양인이었기에 ‘음과 양’이라는 해석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여태껏 작가 자신도 이 이분법적 해석에 별다른 반감이 없었지만, 그는 이번 전시를 통해 기존의 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과거 작가는 역상조각을 통해 이항대립적인 요소의 공존을 꿈꿨다면, 이번 전시는 한발 더 나아가 이 세계를 나누어 이해할 수 없다는 ‘불가분’의 개념을 가져 온다. 이는 역상조각에서의 도주, 도약, 탈피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 노력에 부응하듯 전시장에는 기존의 역상조각과 함께 새로운 조각이 놓여 있다. 역상조각을 제외한 나머지 조각은 전부 2018년에 제작된 신작으로, 모터와 전자석을 이용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로우테크 키네틱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와 더불어 간간이 선보였던 설치와 영상작업 또한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시장에서 감각의 소실점은 역상조각에 위치하고 있다. 소음을 동반하며 돌고 있는 LED 작업이나, 투박한 두상이 서로 마주보며 고개를 젓는 키네틱 작업은 별다른 특별함을 찾기 어렵다.
사실 그의 매체는 특별할 게 없다. 물론 그의 조각은 실물과 사진의 낙차가 심하기에, 그의 조각을 처음 대면한 사람은 신기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다만 그의 작업을 처음 본 사람이 아닌 이상, 그 일루전의 장막을 걷어 내면 생각보다 투박한 마감과 함께 바람직한 상태로 보기 어려운 채색이 눈에 들어온다. 다만 그럼에도 그의 조각은 여전히 관객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리고 그 움직임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마감과 채색을 이해한다면, 그가 베테랑 조각가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러한 추론 이후 한 가지의 의문점이 남는다. 그의 조각이 관객을 움직이게 만드는 전개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역상조각은 온통 벽에 걸려 있다. 그 말은 즉 이 조각에는 정면이 상정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정면성을 두드러지게 강조하면서도 측면의 존재를 부각한다. 시선을 조각의 얼굴에 두고, 마치 나를 따라오는 듯한 그의 시선을 느끼며 걷다 보면, 어느새 나는 이 조각의 측면 바로 앞에 서 있게 된다. 이후 아무것도 없이 플랫한 표면을 인지하는 순간 이것이 일루전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시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또한 이 관대한 조각은 어린아이의 시점과, 어른의 시점, CCTV의 시점을 모두 순응하다. 어디서 어떤 자세로 보든지 간에 이 조각은 정면에서 관객의 시선을 흡수한다.
보는 이를 따라오는 이 묘한 효과는 렌더링 된 애니메이션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조각은 잔잔한 호수의 표면에 가로로 조각의 중심축을 두고 그를 이리저리 굴리는 것 같은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다. 즉 3D 프로그램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조작하는 것 같은 효과를 준다는 말인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마우스 커서를 움직이는 주체가 가만히 앉아 조작하는 것이 아니라 조작자가 직접 시점과 방향을 조정해 스스로 움직인다는 점이다. 즉, 내가 조작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는 말이다. 물론 작가는 이와 같은 역상조각의 몹쓸 효과를 대단히 잘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조각을 직접적으로 비추고 있지 않은 조명이 그에 대한 증거가 될 텐데, 그는 빛이 만들어 내는 음영을 최소화함으로써 조각의 입체감을 은폐하고, 이에 따라 그가 의도하는 시각적 일루전은 더욱 강력해진다. 
물론 역상조각에 대한 그의 천착은 양식의 문제와 결부될 때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조각의 영역은 고정된 지지체를 허락하지 않기에 젊은 조각가는 늘 확고한 시그니처를 찾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지상과제라고 여긴다. 본인의 뚜렷한 개성을 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생각보다 빨리 주어졌을 때, 해당 조각가는 자신의 양식을 재반복하는 구간을 거치기 마련이다. 작가 역시 그러한 시기를 보내지 않았을까.
이와 같은 추론은 그의 30년 조각사에서 큰 축을 차지하는 역상조각이 눈에 띄는 변화를 겪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확고해진다. 물론 역상조각 내부에서의 치열한 조형적 실험은 느껴지지 않지만 역상조각은 여전히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업 <Windy Hills>(2018)는 전과 다르게 역상조각을 몰드처럼 얇고 가볍게 제작하고, 그 뒤에 입방체로 보이는 철판 레이어를 추가하는 변화를 보인다. 두 개의 레이어를 두고 새롭게 발생하는 일루전은 기존의 양상과 조금 다르게 전개된다. 두 레이어 사이의 물리적 빈 공간에는 역상조각의 실제 그림자가 맺히는데 그로 인해 발생하는 거리감은 기존의 일루전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이와 마찬가지로 <Black Corridor>(2018)에서는 비어 있는 여성의 실루엣에 플래시를 터트리는 방식을 통해, 작가 본인이 거부한 빛을 적극적으로 끌어와 역상조각의 다음 단계를 예고한다. 
과거 ‘음과 양’이라는 이분법적 해석을 거두고, 이제 모든 것은 나눌 수 없다는 불가분을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한 작가. 이제 그는 역상조각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다음 단계의 연구를 시작한다. 새로운 양식이라는 찬란한 어구 뒤에서 단단하게 굳어버린 지난 시간과의 작별 그 자체만으로 이번 전시는 작가 자신에게 나름 의의가 있지 않을까.

최하늘 / 1991년생. 서울대 조소과 졸업. ‘조각(하기)’의 다양한 방법론을 실험하는 조각작품을 통해 오늘날 조각과 조각가의 정체를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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