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말하는 작가 ④ 이응노 * 차승언
2018 / 10 / 22
Art는 10월호 특집에서 작가의 시점으로 한국미술계의 지평을 넓혀 온 주요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름하여, <작가는 작가의 작가>. 작가는 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한 작가의 조형 방법과 예술정신은 다른 작가의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또 다른 관객이자 그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동지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작가 매칭’이라는 방법론을 끌어들였다. 총 11명의 작가들이 직접 보내 온 원고를 공개한다.
이응노 * 차승언

이응노 <마르코 폴로> 종이에 수묵채색 40×24.5cm 1980_<이응노, 낯선 귀향>(7. 13~9. 30 이응노미술관)전 출품작. 고암 이응노(1904~1989) 도불 60주년을 맞아 열린 기획전. 2017년 파리에서 이응노 회고전을 기획했던 세르누쉬미술관 학예연구사 마엘 벨렉(Mael Bellec)을 초청해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이응노의 예술세계를 재해석했다. 세르누쉬미술관과 퐁피두센터의 소장품을 대여해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 없던 작품 29점을 특별 공개했다. 전통 문인화, 서예, 니홍가, 앵포르멜 추상미술을 가로지르는 이응노의 독특한 행보를 재조명한다. 영감, 이응노와 서양미술, 이응노와 동양미술, 공인 예술가 對 정치적 반체제 인사, 고국에서의 이방인 등 총 5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옮겨 붙는 불처럼
전시를 관람할 때는 휠체어가 필요하다. 버스, 지하철을 타고 오래 서 있을 때 매스껍고 식은땀을 흘리곤 하는데, 서서 작품을 오래 봐야 할 때도 몸에 비슷한 신호가 온다. 서 있는 것조차 힘든데 작품을 보면 머릿속 뇌까지 활동하고 있기에 전시를 볼 때는 늘 체력 소모가 많다. 이응노미술관의 <이응노, 낯선 귀향>전을 보면서는 커피, 아이스크림, 1일 견과 한 봉지, 물, 경옥고, 오렌지 주스, 또 커피를 마셨다.
프랑스 세르누쉬미술관의 학예연구사 마엘 벨렉이 이응노미술관의 의뢰를 받아 기획한 전시이고, 작품 소장처인 퐁피두미술관과 세르누쉬미술관을 떠난 적 없었던 29점의 그림이 전시되었으니 프랑스가 해석한 이응노를 한국에서 보게 되겠구나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공예의 맥락에서 훈련받고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작품 한 점 한 점의 완결성이나 완성도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기술의 숙련도와 밀도는 공예작품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고, 그런 눈으로 처음 이응노의 작품을 보았을 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응노는 회화, 조각, 장식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했고, 회화 안에서도 시기별로 민속화 문인화 일본화 추상화로 나뉘는데 그 복합적인 작업이 어느 하나 완성된 스타일이나 완결미를 갖춘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20세기를 온몸으로 뚫고 나간 한 사람으로 이응노를 이해하면서 그의 작업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20세기 흐름에서 대나무를 계속 잘 그려도 좋았겠지만, 대나무만 너무 잘 그릴 수 없었던 사람이 이응노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일본으로도 가고, 유럽으로도 갔다. 한국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잘 붙드는 동시에 스스로에 매몰되지 않은 사람이고, 자신과 시대에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작업한 사람이다. 강한 바람이 불 때 산불이 옮겨붙듯이 이응노의 작품은 방법도, 재료도, 삶의 터전도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를 강렬하게 훑고 지나가는 불같다. 그런 20세기에 그는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끌고 가서 지키고 싶었고, 새로운 것을 알고 싶었고, 초극하고 싶었던 의지를 놓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특히 이응노 전시를 볼 때는 그 작업의 흐름을 타면서 전시장을 몇 번 돌고 난 다음에 세부적인 것을 보게 된다. 이번 전시에도 그렇듯이 전시장에 걸린 작품 하나 건너 한 작품이 방법과 재료가 다른데, 맥락 없이 한 작품씩 감상하다 보면 미궁에 빠진다. 프랑스에서 작업한 1960년대 회화와 콜라주 사이에 배치된 1971년작 <구성>은 천에 목화솜으로 콜라주한 문자추상 작품이다. 이 작품을 보면 이응노가 동백림사건으로 1967~1969년 옥고를 치르고 석방된 이후 수덕여관에 그린 암각화가 늘 함께 떠오른다. 옥고 뒤에 바위에 음각으로 새긴 문자추상과, 2년 뒤 부드러운 목화솜을 재료로 양각으로 만든 문자추상의 대비는 그의 작업의 스펙트럼과 삶의 굴곡을 상징하는 것 같다. 천과 솜을 오리기도 하고 뜯기도 하며 둔탁하게 돋아 문자추상을 만들어 낸 것도 기술적 차원에서 보면 거대한 성탄 카드 같지만 말이다.
간송미술관에 가면 숨도 안 쉬고 그렸을 것 같은 멋진 대나무 그림이 많은데, 그와 비교했을 때 이응노의 거친 대나무와 그 이후의 실험들은 지금도 종종 내 직조 작업이 태피스트리 대가인 송번수, 차순실 작가의 작품 사이에 놓일 때를 생각하며 완결성에 대한 압박감을 느낄 때 ‘괜찮다’고 말해 준다. ‘묶이지 말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이응노의 작품을 보는 시간은 묶여 있던 시각을 다시 훈련하는 시간이고, 자기를 갱신하며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시간이다. 전시를 본 후, 원숭이가 그려진 노란색 이응노 볼펜을 사서 돌아왔다. 그런데 이응노는 왜 원숭이를 종종 그렸을까?…
차승언 / 1974년생. 홍익대 섬유미술과 및 동대학원 산업공예 졸업, 시카고 예술대학 회화과 석사 졸업. 색실을 이용해 무늬를 만들면서 캔버스를 짜고 그 위에 페인팅을 덧칠하는 작업을 전개하며 동시대에 유의미한 추상회화란 무엇인지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