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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말하는작가이건용*나점수

2018/10/24

Art는 10월호 특집에서 작가의 시점으로 한국미술계의 지평을 넓혀 온 주요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름하여, <작가는 작가의 작가>. 작가는 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한 작가의 조형 방법과 예술정신은 다른 작가의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또 다른 관객이자 그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동지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작가 매칭’이라는 방법론을 끌어들였다. 총 11명의 작가들이 직접 보내 온 원고를 공개한다.

이건용 * 나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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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용신작드로잉시리즈설치전경2018_<미언대의(微言大意)>(9.12~10.14더페이지갤러리)전출품작.이건용(1942년생)과나점수의작품이지닌공통점과차이점을조망하는2인전<미언대의>가열렸다.작가의섬세한언어와행위가돋보이는퍼포먼스조각회화설치작품80여점을선보인다.한국의1세대전위예술가이건용은‘ST’‘AG’그룹의주요작가로활동하며캔버스에갇히지않는과감한실험을전개했다.그는지난50년동안몸과시간과공간의관계,행위를통한신체한계의확장이라는주제를깊게파고들었다.최근페이스베이징,호주시드니4A아시아현대미술센터등에서전시를개최하며국제무대를종횡무진중이다.

불인(不人)한 물리적 신체와 무심

어떤 사태가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붉은 사각의 흙덩이를 이루고 있는 숨김없는 물질의 속살은 마치 내 몸의 한 부분을 움푹 파내어 옮겨 놓은 것 같았고 그것은 충격이었다.
누구의 작품인지도 관심에서 사라질 정도로 기억에 각인되어 지워지지 않았던 충격의 상태를 경험케 한 이가 이건용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리고 시간을 가로질러 그와 함께 2인전을 하게 되어 짧은 글을 쓴다. 물론 나의 글과 서술적 상태가 실체적 이건용을 말할 수 없음은 자명하기에 나는 충격과 사태로 다가왔던 그의 작품에 대한 기억과 경험의 단상을 글로 쓰려 한다.
시간은 언제나 현재로 우리를 귀환시킨다. 그리고 현재를 지각하는 총체적 직관은 실존이라는 사태 앞으로 우리를 던져 놓는다. 이건용의 작품이 던지는 충격이 이와 같았다. 인간이라는 몸의 가치체계가 아닌 물리적 구조로서 신체를 동원해 무(無)목적적 지향으로 현상을 흔적으로 남기고 다시 그것을 해체하는 그의 행위들 그리고 사소한 것을 통해 가치의 무게에 눌려 있는 관념의 시선을 현재로 옮기고 실존적 자각을 불러내는 지점. 이것이 이건용의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이건용의 <신체항(項)>은 부분을 지칭하지만 그것이 분리된 부분을 말할 리는 없다. 부분으로서 신체성을 동원할 때는 결핍과 부조리(不條理)가 동반되어야 하고, 부조리와 결핍의 속성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우연’ ‘무(無)’ ‘알 수 없음’에 대한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동의가 있을 때 무목적으로 소멸될 흔적의 실마리가 현재적 사태를 불러내어 부조리한 관념적 대상을 해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펼쳐 놓은 현상 앞에서 관념적 지각의 대상은 찾을 수가 없었으며 목적성 없는 반복의 속도와 무심한 물리적 신체의 행위를 전략적으로 배치해 현재를 주목하게 하려는 그의 개념적 위치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현재의 상태를 지각하고 인식하며 실재를 경험하게 하는 통로였으며 흔적으로 부재의 실존적 경험을 유도하는 장소였다.
나는 이런 그의 정신이 지향하고 육체가 이끄는 과정을 ‘불인(不人)한 물질적 신체’라는 말로 표현하려한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말처럼 크고 큰 것을 움직이는 것은 사사로울 수 없으며 사사로운 정리(情理)로 현상의 이법(理法)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건용의 <신체항(項)>의 지향(指向)에 동원된 신체가 이와 같은 ‘불인한 물질적 신체’인 것이다. 그는 반복된 선 긋기를 조직하기 위해 ‘불인한 물질적 신체’로 자신의 몸의 위치를 전환해 제약된 구조를 통해 흔적 너머의 모습을 현실로 불러내는 행위를 실행한다. 어떤 예측은 있을 수 있지만 통제는 없다. 그리고 지시대상을 파악하기 위해 신체의 범위에 기대어 인식이 지배하거나 기대하는 관념적 공간을 벗어나 버린다. 그리고 그 행위의 시작과 끝에서 대상으로부터 지각이 불투명해진 상태로 관객이 놓이게 되고 현재와 현실, 실제와 실재가 공존하는 어떤 충격의 잔상과 흔적이 남게 된다.
‘불인(不仁)한 물질’로서 그의 신체는 캔버스라는 평면 위에 주저앉아 ‘달팽이 걸음’을 하고서 흔적을 흔적으로 해체해 무심한 선을 남기고 캔버스의 끝에 도달한다. 20m의 캔버스는 현재이며 현실이었고 비현실의 공간이면서 실존이었다. 그런 행위의 끝에 남겨진 것은 신체항을 위한 ‘불인한 물질’로서 신체가 아닌 일흔여섯 회의 봄과 가을의 풍경을 생경하게 바라봤을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예술가의 시선은 무심하듯이 나타났다 사라지는데, 나는 이건용의 정신에서 어떤 무심(無心)을 보았다.

나점수 / 1969년생. 중앙대 예술대학 조소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나무, 흙, 지푸라기 등의 자연 재료나 합성수지, 영상, 모터와 같은 기계 장치를 활용한 추상조각을 제작해 왔다. 작품의 거친 표면과 수직적 형상은 생명의 근원이 내포한 긴장감을 시적으로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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