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말하는 작가 ⑦ 구본창 * 이강혁
2018 / 10 / 25
Art는 10월호 특집에서 작가의 시점으로 한국미술계의 지평을 넓혀 온 주요 작가의 삶과 작품세계를 다시 조명했다. 이름하여, <작가는 작가의 작가>. 작가는 전시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한 작가의 조형 방법과 예술정신은 다른 작가의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작가는 작가이기 전에 또 다른 관객이자 그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동지가 아닌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고자 ‘작가 매칭’이라는 방법론을 끌어들였다. 총 11명의 작가들이 직접 보내 온 원고를 공개한다.
구본창 * 이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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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경에 촬영한 구본창의 초상사진_<시작을 돌아보다>(9. 6~10. 16 갤러리분도)전 출품작. 구본창은 기록사진이 주를 이루던 1980년대 한국 현대사진계에 등장해, 새로운 예술사진을 개척했다.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그 ‘시작’을 돌아보는 자리다. 초기 작품만으로 구성한 첫 전시이기도 하다.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독일 함부르크로 유학을 떠나 사진과 디자인을 공부했다. 전시에는 고교 시절의 습작, 유럽의 이국적 풍경사진, 88서울올림픽 이후 급변한 서울의 모습을 흑백 스냅사진으로 포착한 연작 <긴 오후의 미행> 등 1970~1990년대 대표작을 가려 모았다.
신세계를 탐험하는 ‘젊은’ 시선
작년 9월, 어느 사진 관련 행사에 구본창 작가와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인스타그램 세대(1990년대생) 사진가들도 참여한 행사였는데, 각자의 작업들을 프로젝터로 커다란 화면에 보여주며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구본창은 (내 기억이 맞다면) 처음으로 공개한다며, 1980년대 서울을 담은 컬러사진을 아무런 말 없이 담담하게 보여 줬다. 스크린에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급변하는 빛바랜 서울의 사소한 일상이 고요하게 펼쳐졌다.
그로부터 1년, 대구 분도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이 개최되고 있다. 기억 속에 잔상으로 남아 있던 이미지의 오리지널 프린트를 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문득, 그가 전시를 준비하며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했다. 어쩌면 작년의 행사가 작은 계기였을지도. 한참 어린 후배들을 보며 당신의 젊음,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사진가’라는 타이틀이 낯선 개발도상국에 착륙한 막막한 청년의 무모한 시선들이 떠오르지 않았을까 싶은, <시작을 돌아보며>. 갤러리 1층에는 구본창 작가가 독일 유학시절 촬영한 1970~80년대 초의 유럽과 여러 문서-시각 자료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2층은 귀국 후 맞닥뜨린 1980년대 중후반의 서울이 컬러와 흑백으로 교차했고, 정서적 변화 혹은 혼란을 이미지로 구성한 영상작업 <1분간의 독백>(1987)이 작은 방에서 상영되었다. 이와 함께 그의 페인팅도 볼 수 있었다. 유학시절 촬영한 흑백사진들은 학생다운 태도와 열정 그리고 천재적 재능이 빛을 내는 ‘클래식’이었다. 단단한 철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묵직한 수동 필름 카메라를 들고 신세계를 탐험하는 동양인의 시선에는 두려움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세계’에 대한 호기로운 욕망이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그것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작품들을 보는 내내 사진이 매우 찍고 싶었다. 전시를 다 보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마치 카메라를 처음 든 사람처럼 주변 풍경들을 찍어 보기도 했다.
흉내 낼 수 없는 ‘작가’ 고유의 현대적 시선이 담긴 1980년대 중후반의 서울 사진은 당시의 정치/경제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이미지들이었다. 엘리트 지식인의 위치에서 가난을 파는 것도, 군사독재에 맹렬히 맞서는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낯선 시선이 한국 사진사에서 구본창이라는 이름을 중요하게 만든 게 아닐까. 그는 오직 ‘사진’에만 전념하며 1990년대를 향해서 갔고 올림픽과 함께, 혹은 별개로 현대적 시선을 일으킨 주역이 되었다. 사진가의 또 다른 역할에 대한 고뇌과 혼란의 흔적들이 급변하는 서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초기 스냅사진 연작들에는 제목이 없다. 이후 대학에서 강의하며 수많은 실험을 통해 업을 쌓았고, 어느덧 거장이 되어 나와 같은 작가(라고 불리는 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전시는 회고전이 아니라 시작을 돌아보는 전시다. 그는 아직 해야 할 일과 연구가 많이 남았을 것이고, 다가오는 2020년대를 그리며 그가 종결지은 어떤 시점에 태어난 세대들과 함께 (SNS와 디지털이미지가 일으킨 현상 너머의) 사진-이미지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가로 적지 않은 활동을 하며 시간을 앞서 보고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에 늘 시달린다. 사진은 바로 ‘지금-여기’를 담는 도구인데도 말이다. 이런 역설은 때론 꿈으로 이어져 현실에서 꿈을 발견하길 바라게 되기도 한다. 허무맹랑한 이런 바람과 시도의 근거는 과거에 있다. 사진을 통해 바라보는 과거는 단순히 지나버린 시간, 더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불과할까? 작가들은 과거에서 오래된 미래를 보기도 한다.
돌아보면 모든 게 낯선 세계에서 느껴지는 징후들은 시간이라는 차원을 초월한다. 이것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게 사진가의 (또 다른) 역할임을 청년 구본창, 아니 여전히 동시대 작가인 구본창은 전시를 통해 말하고 있었다.
이강혁 / 1981년생. 2010년대 초반부터 인디음악과 미술, 디자인, 퀴어 등과 관련된 서브컬처 씬을 따라 활동 중이다. 포토그래퍼 그룹 AMQ(이윤호, 이차령)의 멤버이며, 《GQ》 《i-D》 《뒤로》 등의 매체를 통해 사진을 발표한다.
* 아래는 이강혁이 촬영한 <시작을 돌아보다>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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