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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화가3인의랑데부

2019/08/11

스페이스K에서 열린 <British Painting 2019>전은 3명의 영국 출신 회화작가 에린 롤러, 린지 불, 벤 제이미의 작품 총 13점을 소개한다. 이들은 각각 물질성과 신체성, 현대인의 내면 심리, 일상의 비일상성에 집중하며 ‘그리기’의 방법론을 실험한다. 추상과 구상을 가로지르며 회화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이들의 작품은 동시대 영국미술의 일면을 반영한다.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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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린롤러<CoyoteinPink>캔버스에유채90×70cm2019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 영상 그래픽은 물론 인공지능까지 시각예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그럼에도 전통 장르인 회화는 현대미술에서 여전히 강력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과천 스페이스K에서 열린 <British Painting 2019>(7. 15~8. 23)전은 3명의 영국작가를 소개하며 동시대 회화의 다양성과 힘을 다시 확인한다.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에린 롤러(Erin Lawlor), 린지 불(Lindsey Bull), 벤 제이미(Ben Jamie)가 그 주인공. 모두 국내에서는 처음 전시하는 작가들이다. 
1969년생 에린 롤러는 파리 소르본대학을 졸업하고 2012년까지 프랑스에 거주하다가 지금은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다. 넓고 큰 붓을 사용해 물감을 즉흥적으로 쓸어내리면서 추상과 구상의 이분화를 벗어나 회화의 물질성 자체에 집중한다. 캔버스를 바닥에 눕힌 다음 힘차게 붓질하고, 이전 물감이 마르기 전 다시 여러 차례 붓질을 쌓는 방식으로 완성한 작품에는 작가가 신체를 움직인 흔적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번전시에는 2018~19년 제작한 회화 총 4점을 공개했다. 꾸물꾸물 먹구름이 잔뜩 낀 듯한 <Fox>(2018)와 작품제목 그대로 코요테가 날렵하게 이리저리 뛰어 다닌 것 같은 <Coyote in Pink>(2019). 이외에도 <The Bathers>(2018)와 <Silver Screen-Female Jungle>(2019)은 구체적이고 분명한 타이틀을 갖지만, 작가는 이것을 관객에게 주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으로만 상정하며 고정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않는다. 한편 그는 최근에 단색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밝힌다. “나는 행위를 반복하면서 신체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한국의 단색화와도 연결된다. 또한 선과 선을 중첩하여 형상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전통 서예에도 호기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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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지<Missing>캔버스에유채87×70cm2019

영국의 대표 공업 도시 맨체스터에서 1979년 출생한 린지 불은 첼시예술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들의 모습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감정을 포착한다. 전시에는 총 5점의 회화를 출품했다. <Dancers>(2018)는 쇼가 펼쳐지는 스테이지 아래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휴식하는 무용수들을, <Fire>(2019)는 하얗고 커다란 드레스를 입은 사람의 뒷모습을 그렸다. 붉게 물든 풀숲이 불안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그림의 상황을 추측하게 한다. 미니드레스를 입고 하이힐 신은 여성의 하반신만 자른 <Legs>(2019)는 불안정한 구도, 거친 붓질, 푸르뎅뎅한 색채로 우울한 감정을 증폭하며, 일렬로 줄을 선 7명의 여성이 등장하는 <Missing>(2019)은 정성껏 꾸민 겉모습과 다르게 이들의 어두운 낯빛을 대조한다. 또한 왕관을 쓰고 푸른색 망토를 두른 여성이 주인공인 <Blue Moon>(2018)은 파랗게 질린 목각 인형 같은 얼굴이 섬뜩한 느낌을 풍긴다. 작가는 무대 위 배우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과 감정을 발견한다. “거리가 곧 무대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모두 가면을 쓴 배우처럼 보일 때가 있다. 맨체스터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있는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표정에 묻어나는 피로감과 공허함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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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Stricken>캔버스에유채,수성페인트,왁스,목탄167×213cm2019

벤 제이미는 1978년생으로 스위스 발레주립예술대학에서 유학하고 2016년 영국 존무어회화상(John Moores Painting Prize)을 수상했다. 방치된 폐기물과 불법 투기물에 영감을 받아 다양한 색과 선이 구불구불하게 뒤엉킨 회화를 제작해 왔다. 작업실을 오가며 마주친 사물과 사건, 그에 얽힌 경험을 A4용지 사이즈의 수채 드로잉으로 저장하고 이를 다시 해체 왜곡하면서 캔버스에 옮기는 제작과정은 ‘일상의 비일상성’을 추구한다. 먼저 캔버스에 목탄으로 다이아몬드 모양의 격자를 그어 규칙을 세우는가 싶다가도, 그 위를 비정형의 점 선 면, 불규칙한 배열의 오일 페인트 왁스로 덮으면서 위계를 해체한다. 전시에는 총 4점의 신작 페인팅을 선보였다. 모두 추상적인 형태를 지녔지만 보는 사람의 관점과 해석에 따라 무한한 이미지로 변신한다. 그중 <Stricken>(2019)은 왼쪽 상단의 동그란 형상을 눈으로, 중앙 아래의 넓적하게 그려진 검은색 선을 입으로 보면 어렴풋하게 사람의 얼굴이 떠올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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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tishPainting2019>전전시전경2019스페이스K

한편 전시와 연계하여 마련한 체험 프로그램 ‘위 페인트(WePaint)’는 관객이 직접 조그만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 다음 이를 소장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미술을 난해하게만 생각하는 대중이 좀 더 쉽고 재밌는 방식으로 회화에 다가올 수 있도록 돕는다.
스페이스K는 2012년 런던의 젊은작가 8명이 참여한 <Creative London>전을 시작으로, <London Now>(2017) <The Day in the Evening>(2018) 등 일련의 전시를 통해 영국 출신 작가를 꾸준히 소개해 왔다. 스페이스K 이장욱 큐레이터는 “런던은 크지 않은 도시임에도 수많은 아트 스쿨이 있다. 로열아카데미 골드스미스 런던예술대학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유학생으로 가득하다. 그만큼 젊은 분위기와 감각을 자랑하는 영국미술을 한국에 알리고 현지의 생동감을 전달하고 싶었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를 물색하기 위해 직접 스튜디오를 방문해 작품 실물을 확인하고 매년 10월 초 열리는 프리즈아트페어도 빼먹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8년간 발로 뛰며 리서치하고 현지 작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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