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다라'로 가는 길
2019 / 08 / 20
화가 권훈칠 15주기 추모전 <만다라로 오기까지>(8. 30~9. 8 갤러리도올, 한벽원갤러리)가 열린다. / 선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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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색만다라> 카드보드에 아크릴릭 85×170cm 2002
권훈칠 추모전에는 초기의 추상작품에서부터 <민화> 시리즈, 말년의 <만다라> 시리즈, 그리고 수채화 파스텔 드로잉 등 70여 점의 대표작이 전시된다. 권훈칠은 청년시절 국전 국무총리상과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화가였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세상살이와 거리들 두고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보내다,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본격적인 개인전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 아쉬움이 사후의 유작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6년 선화랑에서 첫 유작전이 열려 권훈칠 예술을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마당이 마련되었다. 2008년 고향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유작전 <탈접점의 미학>이, 2009년에는 갤러리도올에서 작고 5주기 추모 출판기념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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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心紋)> 카드보드에 아크릴릭 40×40cm 2000
권훈칠의 작품은 크게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1970~90년대의 추상작품이다. 1970년대에는 긴장감 도는 삼각형의 견고한 구축적 형태와 다양한 균열의 이미지가 한 화면에 공존하는 작품을 발표했다.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 회화적인 것과 선적(linear)인 것, 인위와 우연이 공존하는 화면이다. 이러한 대립적 조형 요소의 병치는 말년에까지 그의 작품을 관통하고 있다. 1980년대에는 테레핀 오일을 묽게 탄 물감을 캔버스에 흘리는 기법으로 전환했다. 화면 가득 물감을 흘려 몽환적인 앵플라맹스의 풍경을 연출한다. 1990년대에는 물감을 흘린 후 그 위에 다시 채색을 가미하거나 마스킹테이프를 이용해 부분적으로 번짐 효과를 달리하는 등 화면 안에 다양한 뉘앙스로 서로 다른 구성의 층위를 만들어 나갔다. 둘째, <민화> 시리즈다. 1980년대부터 불로초 고사리 연꽃 등을 소재로 한 구상작품을 병행했다. 그는 고가구나 보자기 등에 담긴 우리 전통의 미감에 눈길을 돌렸다. <민화> 시리즈를 통해 정신세계로서의 빛과 색채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다. 셋째, <만다라> 연작이다. 권훈칠의 <만다라>는 전통 형식을 여지없이 깨고 크고 작은 기하적 형태로 단순화한 것이다. 한지를 붙이고 채색을 입힌 후 한지의 결 흔적을 얹힌 카드보드를 삼각형 모양으로 자른 후 다시 조합하여 화면을 조성한다. ‘그리는’ 작업이라기보다 화면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만드는’ 창작 행위이다. 넷째, 빼어난 묘사력이 돋보이는 구상작품이다. 유채 수채 파스텔 등으로 풍경 정물 인물을 남겼다. 풍경화는 햇빛을 듬뿍 머금은 듯 화사한 색채와 군더더기 없는 시원한 구도가 매력이다.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연속적인 색채를 하나하나 ‘채집’하는 꼼꼼한 세필 묘사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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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카드보드에 아크릴릭 72×50cm 1993
권훈칠은 구상과 추상, 형상과 비형상을 가리지 않고 그때그때 자유로운 창작을 이어갔다. 그는 말한다. “내가 그리는 그 무엇이란 태어나면서부터 배우고 알기 시작한 세상 또는 자연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되는 여러 가지 경험을 나타낸 것이다.” “그린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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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훈칠 / 1948년 경남 울주 태생. 미술특기생으로 경남고에 입학. 서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 졸업. 대학미전 문교부장관상, 국전 국무총리상, 문교부장관상 수상, 국전 추천작가 역임.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국회사무처 등에 작품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