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몸, 미시의 파노라마
몸과 골격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지속해 온 작가 이형구. 그의 개인전 <Penetrale>(10. 16~11. 30)이 P21에서 열렸다. 국내에서는 2015년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개인전을 맞아 신작 <X>와 <Psyche Up Panorama> 2점을 공개했다. 작품은 두개골을 이루는 뼈들을 파편화시켜 추상성을 강화하고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신체를 일종의 ‘소우주’로 바라본다.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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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형구
우리는 숨을 쉬고, 팔 다리를 움직이며 살아간다.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로,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 증상이나 관절 혹은 근육통이 도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생체 현상이 자연스럽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지내기 마련이다. 그만큼 인체는 그 근간을 이루는 골격과 근육, 수많은 기관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제 스스로 생명력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몸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작가 이형구는 신체에 관심을 두고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조각의 조형 언어를 통해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 왔다.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대표 작가로 나서기도 했던 그가 개인전 <Penetrale>을 열고 신작 2점을 공개했다. 국내에서는 4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내부’ ‘깊숙한 곳’이라는 의미와 ‘신주를 모신 곳’ ‘비밀’ 등 파생된 뜻을 지닌 라틴어 낱말이다. 이처럼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 몸속 깊숙한 곳, 정확히는 두개골의 형태와 구조를 가깝게 들여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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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모델링 컴파운드, 의료용 석고붕대,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9 _작품제목 ‘X’는 X Y Z축으로 구성된 작품의 기본적 형식, 이후 변화해 나갈, 아직은 만들어지지 않은 미지의 작품을 은유한다.
이형구의 활동 초기부터 지속해 왔던 연작 <The Objectuals>(1999~)는 눈 코 입 손 등 신체의 일부를 확대 축소하는 볼록 렌즈나 오목 렌즈를 활용해 과장 왜곡한다. 이는 미국 유학 시절 작가가 서구인들에 비해 어딘가 작고 연약한 자신의 신체 조건을 비교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연작의 시초가 되었던 <A Device that Makes My Hand Bigger> (1999)는, 뉴욕에서 지내던 어느 날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내 손이 현지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비교해 너무 작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작품은 작가가 직접 제작한 투명한 관 모양의 오브제에 직접 팔을 넣어 이를 왜곡해 보여 준다. 이후 사람이 직접 자신의 머리에 착용할 수 있는 작품 속 오브제들은 투명한 유리로 된 우주 비행용 헬멧, 신체 교정을 위한 의료 장비나 보호 장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당 연작이 신체 외형에 대한 콤플렉스와 욕망을 시각화했다면, 이후 작가는 그 내부를 탐색하기 시작한다. 특히, 골격과 관절 구조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심화해 이는 애니메이션 속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와 결합시킨 연작 <Animatus>(2005~)를 탄생시켰다. 애니메이션의 밝고 활기찬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는 모습의 캐릭터들은 현실 세계로 튀어나와 살갗과 근육이 모두 제거된 채, 골격만 뎅그러니 남아 있다. 작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신체를 구체화하기 위한 해부학적 지식을 본격적으로 익히고, 상상력을 동원해 세부적인 관절 구조를 창조해낸다. 작가의 유사 ‘근골격계 외과 전문의’와 같은 태도는 말 뒷다리 관절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시각화한 기계적 장치를 입고 퍼포먼스를 수행, 이를 영상으로 남기는 <MEASURE> 연작으로 파생되기도 했다.
한편 그는 작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가졌던 2인전 <2018 타이틀 매치: 이형구 vs. 오민>에서 인체 관절의 형상과 구조를 10배 정도 확대한 대형 조각 설치 작품 <Kiamkysek>(2018)을 선보였다. “이 제목을 그대로 읽으면 ‘키암코이섹’이라고 발음된다. 이는 내가 졸업한 예일대학교가 출판한 한영사전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와 괴상하게 생긴 돌’이라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 기암괴석의 표기를 그대로 따온 단어다. 자연과 인체가 꽤나 닮아 있다는, 뼈를 관찰하며 들었던 생각을 구체화해 보고자 했다.” 실제로 작가가 만든 거대한 스케일의 사람 뼈 조각들은 일견 자연의 풍화 작용에 의해 희한한 모양새로 변해 온 바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등산을 즐기는 작가는 등반용 로프와 클립 등을 전시장에 설치하기도 했다. 이번 개인전 <Penetrale>에서 선보인 두 점의 신작 <X>(2019)와 <Psyche Up Panorama>(2019)는 위 작품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뼈의 안쪽과 단면까지 들여다보기 위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파편화시켜 펼쳐 놓았다. 또한 신체의 구조와 순환을 마치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축소해 놓은 ‘소우주’로 바라보는 동양 의학의 개념을 살짝 덧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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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up Panorama> 모델링 컴파운드, 의료용 석고붕대,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9
<X>는 가느다란 알루미늄 파이프가 가로지르며 만들어 내는 3차원의 그리드 속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거칠게 쪼개진 인간 두개골의 뼈 조각 형상의 조각들을 구축해 놓았다. 이들 사이로 다양한 색의 크고 작은 구 형태의 오브제, 형광색 투명 아크릴 타일, 구부러진 철사, 다양한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 등 기호가 자리 잡고 있다. “부서진 뼈 조각 외에 오브제들은 두개골을 둘러싼 다양한 감각기관 피부 혈관 혈류를 나타내면서, 산맥 골짜기 능선 계곡을 동시에 떠올리게끔 한다. 작품 곳곳에 실제 지형도에서 쓰이는 다양한 기호들을 아주 작게 숨겨 놓기도 했다.” 다른 출품작 <Psyche Up Panorama>은 조각과 오브제들을 전시장 벽에 넓게 퍼트려 설치했다. 마치 우주 대폭발의 순간을 포착한 장면처럼 보이면서도, 인공 암벽 등반 시설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Psyche Up’은 어려운 루트를 오르기 위한 정신적 수행을 뜻하는 등반 용어다. 전작과 비교해 보다 추상적인 형태의 조각 설치라는 새로운 루트를 발견하고, 이를 연구하고 있다.” 이번 신작에서 추상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 중 하나는 조각에 쓰인 주재료 ‘빠삐에 마쉐(Papier-mâché)’. 이는 종이를 잘게 찢어 만든 종이 반죽으로, 작가는 여기에 석고를 첨가해 견고함을 더했다. 특유의 포슬포슬한 겉면 질감과 곳곳에 덧댄 의료용 거즈의 흔적들을 통해 재료 자체의 물성을 부각시킨다.
작가는 내년 6월 두산갤러리 뉴욕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2009년 열렸던 전시 <D AiR>에 참여했던 그의 작품세계가 그 사이 11년 동안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찬찬히 보여 줄 예정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번 개인전 또한 다음 작업을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다. “<Psyche Up>이 설치된 공간 가장 안쪽 방에는 형광색 안료를 일부 섞은 단독 오브제가 놓였다. 이는 다음 작업이 어디로 넘어가려고 하는지 힌트를 넌지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드 안에서 서 있던 것이 공간으로 펼쳐지고 가장 안쪽 후미진 곳에서 다음 스테이지를 위해 뼈를 깎아 가며 무언가 준비하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고자 했다. 최근 새롭게 시도했던 재료와 즉흥성이 보다 부각된 작업 방식이 조금씩 체화되면서 스스로 더 큰 재미를 찾고 있다.” 지난 20년간 작업의 중심을 이뤄 왔던 신체와 그 구조를 바라보는 시선이 앞으로 탄생할 작품에서 어떻게 변주되어 갈지 기대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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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up Panorama>(부분) 2019_이형구 / 1969년 출생. 홍익대학교 조소과 및 예일대학교 미술대학원 조소과 졸업. 뉴욕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에서 수학. 모스크바 폴리테크닉 박물관(2015), 갤러리 스케이프(2014), 두산갤러리(2010),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2007) 등에서 개인전 개최. 조안 미첼 재단(2002)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