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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맵’,콜라주로다시그리다

2020/02/09

오늘날 중국 현대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 천위쥔. 그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한국 첫 개인전 <우리, 저마다의 이야기>(1. 9~2. 22)를 열었다. 회화, 드로잉, 콜라주, 설치, 조각 등 장르를 넘나들며 만든 대표작과 신작 30여 점을 선보였다. 촘촘히 엮인 그의 콜라주는 내밀한 가족 서사부터 급속도로 변화하는 중국 사회, 아시아 담론까지 종횡한다. / 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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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작<WeddingBanquetNo.4>(2018)앞에천위쥔

붉고 하얀 페인트가 생크림 케이크처럼 뭉개진 형태의 화면. 하지만 구석구석 눈을 돌려 작가가 쌓아 올린 붓질을 추적하면 낯익은 사물을 연상해볼 수 있다. 큰 냄비에 담긴 국물 요리와 빈 홍합 껍데기, 살점이 말끔히 발린 갈비뼈, 한 대접 높이 쌓인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 파티의 흥을 돋우는 포도주와 즐비한 와인잔까지. 무엇 하나 정리되지 않은 무질서한 광경이지만 혼란보다는 기분 좋은 소란이 그림에 요란하다. 명절 특유의 정신없고 왁자지껄한 즐거움. 중국 작가 천위쥔이 새해를 맞아 푸짐한 만찬 <Wedding Banquet No.4>(2018)를 차리고 관객을 초대했다.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최한 국내 첫 개인전 <우리, 저마다의 이야기>의 출품작이다. 전시는 가장 사적인 개인의 경험 ‘저마다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이들이 모여 공동체 ‘우리’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회화, 콜라주, 조각, 설치 등으로 풀어냈다. “명절이 되면 고향집에 일가친지 30명이 모여 다 함께 식사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사회를 이루고, 그러한 사회가 공동체 의식과 문화를 형성해가는 현상에 주목했다. 개인, 사회, 문화는 결국 지극히 사사로운 공간인 집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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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SceneContinuedNo.171005>종이에혼합재료75×55cm2017

1976년 중국 푸젠성에서 태어난 천위쥔은 고향의 사회 경제적 역사를 되돌아보며 전통적인 가족생활의 변화를 다양한 매체로 표현해왔다. 중국 남동부 해안에 있는 푸젠성은 타이완 해협을 마주 보며 항구를 중심으로 외국 문화와 교류가 잦은 지역이었다. 또한 작가는 돈을 벌기 위해 자녀를 부모에게 맡기고 시골 마을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보며 중국 사회의 현실을 자각하고, ‘근대화’, ‘개인과 공동체’, ‘이사와 이주’를 작업의 핵심 개념으로 삼았다. 이와 함께 19세기 조상 일부가 동남아시아로 이동하면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친척으로 구성된 대가족은 아시아에 대한 고민을 심화하는 배경이 됐다. 수많은 국가를 손쉽게 ‘아시아’로 분류하고 심지어 아시아를 중국과 동일시하기도 하지만, 그에게 친척들이 거주하는 나라는 어느 서구권 국가만큼이나 생소하다는 입장이다. 아시아 지역들이 얼마나 다르고, 서로 잘 알지 못하고, 각각의 잠재력이 있는지 작업으로 풀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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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chSingleNo.5fjliqii>수제종이,토너,마커66×115cm2007

<Asia Map> 시리즈에는 이러한 고민이 생생히 담겨 있다. ‘아시아 지도’라는 제작 의도를 제목에 명시했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지도 이미지를 뒤집고 “국가의 경계가 아니라 공동체적 의식”으로 구축된 아시아 정체성을 표현한 작업이다. 대륙도 바다도 없이 파스텔색 패턴으로만 이루어진 지도 <Asia Map-Illusion No.1>(2019)은 각자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면서도 위계 없이 서로를 교차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공동체를 은유한다. 반면 <Asia Map No.180301>(2018)에는 좀 더 혼잡한 배경과 구체적인 형상이 등장한다. 그림 상단에서 섬광처럼 뻗어 나오는 파란색 줄기와 곳곳의 하얀 새들이 종교적 메시지를 함축하는 듯한 이 작품은 신문, 사진, 종이를 거칠게 오려 붙인 제작 방식이 돋보인다. 콜라주는 작가가 꾸준히 활용해온 표현 기법이자 다문화라는 키워드를 뒷받침하는 수단이다. 고유한 맥락을 지닌 각기 다른 오브제를 수집해 하나의 장면을 구성하는 콜라주는 작가에게 일종의 공동체를 상징한다.
콜라주 작업은 평면을 넘어 입체로도 확장된다. 지하 전시장에 설치된 <Asia Map No.190611>(2019)은 그가 상하이에서 살았던 집의 문을 캔버스로 재활용했다. 높이 약 2m의 문짝과 문틀은 그대로 살려두고, 문 안쪽 공간에 종이 콜라주를 가득 채워 넣었다. 상아색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나무문과 자줏빛 식물, 종달새, 검은 고양이가 노니는 정원 풍경은 작가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며 “상상의 공간과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이다. 지난 몇 년간 그는 ‘집’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에서 건축물 드로잉을 꾸준히 발표했다. 특히 2017년 상하이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에는 작은 오두막을 형상화한 설치작품 <Wooden House No.160318>(2016)을 공개했다. 사람 1~2명이 들어갈 크기의 구조물 외벽에는 대규모 흑백 회화작품이 걸렸는데, 한 그루의 나무를 공유하는 원숭이, 나무늘보, 고양이를 그린 그림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Wooden House> 시리즈는 단색 건축물 스케치 <Wooden House No.150725>(2015), 검은 잉크 세필로 숲속을 묘사한 <Wooden House No.18190619>(2018~19), 골판지 콜라주 <Wooden House No.18190911>(2018~19)을 출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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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MapIllusionNo.1>비단과종이에아크릴릭244×122cm2019

천위쥔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는 ‘개인-사회-문화의 정체성’은 가로 5.5m의 대작 콜라주 <Space of 11 Square Meter>(2018~19)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갈기갈기 찢겨나간 신문지, 골판지 파편, 수제 종이 등을 중첩하고 먹과 아크릴 물감으로 화면을 복잡하게 메운 작업에는 작가가 체험한 이주의 서사가 녹아 있다. “고향을 떠난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다닌다. 물리적 환경의 변화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며, 나아가 민족 또는 국가 간 갈등을 어떻게 초래하는지 암시하고 싶었다.” 각종 재료가 뒤섞여 어지러운 화면에는 노란 밧줄 모양의 굵은 선이 W자로 길게 가로지르는데, 개인이나 집단이 오랜 세월 이동해간 궤적처럼 읽힌다.
신문지를 이용한 드로잉 시리즈 <Ritual>(2007~19)도 함께 선보였다. 콜라주 작업에서는 해체된 신문지가 물성만 살짝 비치는 데 반해, <Ritual>에서는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드러난다. “매일 발생하는 사건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려는 의도”를 담아 신문지 한 면 중앙에 창문처럼 네모난 구멍을 만들고, 그 위에 일상을 떠올리며 그린 드로잉을 덧붙였다. 중국어로 발행된 신문의 내용을 대다수 한국 관객이 독해하기는 어렵지만, 작가가 배치한 드로잉과 관계를 유추하며 의미를 짐작해볼 수 있다. “신문 기사에 명시된 사실 자체보다 내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요소들을 찾아 드로잉과 매치했다. 어떤 사회 현상이든 우리는 모든 전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힘들다. 동일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험을 이야기로 전달하려 했고, 그것이 바로 나의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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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위쥔개인전<우리,저마다의이야기>전전경2019아라리오갤러리

천위쥔(CHEN Yujun) / 1976년 푸젠성 출생. 중국미술대학 예술학부 졸업. 아라리오갤러리(2020), 베이징 탕컨템퍼러리아트(2019), 타이베이 아시아아트센터(2018), 상하이 9m2뮤지엄(2015) 등에서 개인전 개최. 션전조각비엔날레(2014), 베이징민생미술관(2015), 롱미술관(2014), 베이징 울렌스현대미술관(2013) 등의 단체전 참여. 2021년 롱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개최 예정. 현재 상하이에 거주하며 작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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