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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정상에서

2020/04/23

<뉴노멀>전은 사회의 보수적 통념에서 벗어난 퀴어적 관계를 살피며 ‘새로운 정상성’을 제시한다. / 김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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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전이우성섹션전경2020오래된집

우리는 종종 ‘이방인’이 된다. 이방인의 감각은 단지 국적의 불일치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발사 목적에 따라 인공위성 궤도를 설정하듯, 사회는 통용할 기준을 정해두고 구성원이 그것을 향해 움직이도록 선을 긋는다. 우리가 선에서  짝 벗어나기만하면, 우리의 행동은 낯설게 인식되며 다수에게 소외되고 배제된 . 비정상인으로 낙인찍히거나 다시금 적절한 트랙에 복귀하도록 궤도 수정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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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정섹션전경

정상이라는 기준은 대체로 도덕적 가치와 결부된다. 도덕은 사회의 관습적 기준이기에 결국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사회마다 달라지며 한 집단 안에서도 모호하다. ‘뉴노멀(New Normal)’은 이러한 정상성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뉴노멀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이전과는 다른 특성이 세계 경제의 주요 흐름이 되면서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은 경제 현상을 의미했다. 이제 이 신조어는 과거를 반성하고 새로운 표준을 모색하는 행위를 포괄한다. 전시 <뉴노멀>(2. 28~3. 27 오래된집, 이규식 기획)은 동명의 미국 드라마 제목을 차용해 이방인의 감각을 더듬는다. 기존의 질서로 편입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탈락하는 현실 가운데 특히 ‘퀴어적 관계 맺기’를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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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듀섹션전경

성북동의 오래된집에 들어서면 왼쪽 벽면을 따라 걸린 황예지의 <Dead-slow>가 관객을 맞이한다. 긴 천을 뒤집어쓴 인물, 조각을 들고 있는 두 손, 목 언저리를 흐르는 액세서리를 촬영한 흑백 사진이다. 작가의 내밀한 기억에서 출발한 사진은 퀴어의 안정과 불안이라는 감각을 암시한다. 사진 사이로 흐르는 김해원의 사운드는 억압된 관계의 감정을 배가한다. 전시장 안쪽으로는 이우성의 자줏빛 캔버스가 삼삼오오 모여 걸렸다. 다양한 한 쌍의 모습이 담긴 작은 화폭에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다. 허니듀는 목사의 아들이자 퀴어로 살아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영상과 설치로 전개한다. 성경의 아브라함과 이삭에 빗대어 아버지와의 경험을 서술한 인쇄물, 투박한 손이 누군가의 발을 조심스레 씻기는 영상, 창문 너머 지붕에 매달린 십자가 붙은 신발이 각각 ‘생부’, ‘퀴어 커뮤니티의 아버지뻘 연인’, ‘하나님’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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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지섹션전경

가정용 싱크대와 홈 스테레오 스피커, TV로 구성된 구은정의 <Straight Position>은 전시장 안쪽 복도 끝에서 집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흘러나오는 영상은 힐링을 유도하는 요가 유튜브 방송을 닮았는데, 수련할 자세를 알리는 건조한 목소리는 강도 높은 자세를 유도한다.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지만 영상의 인물은 덤덤히 모든 동작을 이어나간다. 어쩌면 폭력일 규범을 계속 강요하는 사회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폭력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감각을 시연한다. 온 힘을 다해 살아남으려는 몸짓은 이우성의 작업으로 다시 이어진다. 화면에는 ‘연보라’, ‘빛’, 2017년 퀴어퍼레이드 슬로건 ‘우리 삶에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가 적혀 있다. 표준에 속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버텨냈던 관계의 미래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밝은 자주색으로 그려낸 현재는 그들을 차분히 감싸 안는다. 전시는 네 작가의 기억, 경험, 태도, 삶 등으로 오랜 시간 소외된 목소리를 기록하고 그 지평을 넓힌다. 동시에 안전, 편의, 효율을 이유로 소수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현실을 상기하며 새로운 정상성을 제시한다. 이때 정상성은 기존의 규범에 편승하거나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또 다른 규정이 되기보다, 모두가 동등한 보호를 받는 단단한 체계로 기능하고자 한다. 전시는 지난하고 외로운 삶을 살아낸 모두를 위로하고 각자 다른 이방인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사회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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