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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꿈,나의사랑

2020/05/10

지난 17년간 건국대 이사장을 맡아 교육행정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김경희가 본업인 화가로 되돌아왔다. 그가 20년 만에 국내 개인전(5. 21~6. 5 금산갤러리)을 개최한다. ‘My Dream, My Love’라는 주제를 내걸고 유화, 수채화 40여 점을 선보인다.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재현과 알레고리를 아우르는 판타지의 세계를 소개한다. / 선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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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추억>캔버스에유채97×130.3cm2018

화가 김경희가 20년 만에 국내 개인전을 연다. 그는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는 등 본업이 화가이면서도 오랫동안 개인전 활동을 중단했다.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 17년 동안 교육행정가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건국대 이사장을 맡아 이 대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건국대병원 신축, 스타시티와 국내 최초의 도심 실버타운 ‘더 클래식500’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건국대 일대의 문화 지형까지 바꿔놓았다. 또한 2004년 현대미술학과를 신설한 것도 김경희 이사장의 업적이다.
이번 개인전에는 ‘나의 꿈, 나의 사랑’이라는 주제로 유화, 수채화 40여 점을 소개한다. 똑같은 주제로 2018년 중국 난징(南京)대학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개최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작품 키워드는 꿈과 사랑. 그는 말한다. “역사가 과거의 거울이라면 꿈은 미래의 거울이다. 꿈은 미래이고 발전이며 희망이다. 기성세대들도 젊었을 때 꿈을 안고 있었듯이, 젊은 세대들에게 꿈을 안겨줘야 한다. 사랑은 인류 문명의 존재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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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날>캔버스에유채112×145.5cm2018

이번 개인전 주제에 잘 어울리는 작품은 유화 대작이다. 〈축제의 날〉, 〈마음의 노래〉, 〈니스의 기억〉 같은 작품은 하나의 화면에 정물과 풍경, 인물이 혼재하는 작품이다. 바다나 마을 풍경이 눈에 잡히는가 하면, 테이블 위에 거대한 꽃다발과 술잔 같은 만찬의 흔적이 남아 있고, 또 시선을 옮기면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나 여인의 누드가 살포시 등장한다. 전통적인 원근법은 아예 무너졌고, 사물의 크기는 일반적인 상식을 깬다. 안의 풍경과 밖의 풍경이 서로 뒤섞여 있다. 그리하여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마치 진공 상태에서처럼 저마다 자유롭게 부유한다. 다른 시간대의 도상을 하나의 그림에 혼재시키는, 이른바 ‘이시동도(異時同圖)’ 수법을 구사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뛰어넘어 작가의 의지대로 화면을 재구성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심리적 풍경’이다. 마음의 풍경, 심상(心象) 풍경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재현과 알레고리를 모두 아우르는 판타지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림은 환희이고 꿈이고 사랑이고 희망이다. 나는 인간 본성이 ‘따스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세상의 절망과 분노, 슬픔 같은 어두운 면을 희망과 사랑, 꿈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그래도 이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은 마음….” 삶을 긍정하는 메시지. 김경희는 이 메시지를 자신의
예술 지표로 삼고 있다. 그것은 앙리 마티스의 예술관과도 통한다. 이 거장은 말했다. “나는 사람들의 지친 몸을 치유해 주는 정신안정제와 같은, 편안한 안락의자와 같은 예술을 꿈꾼다.” 20세기 초두의 전위부대였던 야수파의 리더 마티스가 이상으로 삼았던 미술은 역설적으로 인간 영혼의 카타르시스였다. 또 한편으로 김경희가 내세우는 꿈과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마르크 샤갈과도 가족 유사성을 지닌다. 샤갈은 작품 영감의 원천으로 시종 사랑을 구가했던 화가였다. 샤갈은 사랑이야말로 삶의 모든 고통이나 번민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임을 작품으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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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노래>캔버스에유채130.3×162cm2018

김경희의 유화는 크게 두 가지 부류의 색채를 구사하고 있다. 하나는 청록의 차가운 색이고, 또 하나는 적황의 따뜻한 색이다. 이 차가운 색과 따뜻한 색의 절묘한 조화는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압축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심리적 색인 푸른색은 과거나 미래, 꿈이나 희망, 혹은 그리움이나 고독, 아니면 피할 수 없이 들이닥치는 아픔과 상처의 기억을 내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땅의 색, 현실의 색인 붉은색은 ‘그래도 살 만한’ 지금 여기의 삶, 그 행복에의 희원(希願)을 붙잡고 있다. 작품은 작가 자신이 꿈꾸는 ‘작은 낙원(Arcadia)’이리라. 
화가 김경희는 일찍이 수채화가로 이름을 날렸다. 2011년부터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84년에 창립한 이 회의 멤버 면면이 아주 화려하다. 배동신 임직순 최덕휴 최경한 박기태 이두식(이상 작고), 김태 심죽자 전상수 김령 장순업 지석철 등 한국 수채화의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작년까지 국내외에서 42회의 정기회원전을 열었다. 김경희의 수채화는 생동감 넘치는 색채와 필치가 특징이다. 투명 수채화의 특성상 짧은 시간에 제작해야 하기에, 화가의 숨 가쁜 호흡이 온전히 실려 있다. 항구 풍경에는 공기의 변화와 살아있는 사물의 움직임 같은 현장의 분위기가 오롯이 살아 있다. 꽃 그림에는 미세하게 떨리는 생명의 한 순간을 잡아낸 화가의 격정이 꿈틀거린다.
“작품은 반성의 거울인 동시에 미래의 설계도인 셈이다.” “그림은 내 인생의 시련기를 이겨나갈 수 있는 버팀목이다.” 원래 건축학을 전공한 그는 일찍이 그림으로 전향했다. 건국대 설립자인 유창석 박사의 맏며느리가 되어 두 딸을 키우면서도 그림을 지속했다. 결혼 생활 8년 만에 남편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에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본격적인 미술공부에 매진했다. 그가 교육행정가에서 본업인 화가로 되돌아왔다. 꿈과 행복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를 굳건히 간직하고…. 김경희의 작품 세계가 원숙한 생애 후반기를 맞아 더 깊고 더 넓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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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 한양대 건축학과 졸업, 오티스 파스슨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엘에이 서양화과 수료. 중국 난징대학미술관(2018) 등에서 개인전 개최. 강원환경설미술 초대작가전(2014~15), AKA SPACE 개관기념전(2008) 등의 단체전 참여. 건국대 이사장(2001~17) 역임. 현재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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