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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의초상들

2020/06/10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전은 한국 대중문화를 차용한 작업들을 가볍게 되짚는다. / 권 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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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박지은,이윤성,권오성작가출품작

‘문화’는 어디서 생겨날까. 다수의 사람에게 일정한 콘텐츠가 전해지고, 서로 간의 감상을 주고받을 때 문화는 형성된다. 이 문화가 발생하는 장소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매체’와 ‘감상을 공유하는 장’이다. 대중문화는 대량 생산된 상품과 이미지가 매스미디어의 유통 구조를 통해 대중에게 전파되며 이루어진다. 또 ‘예술’을 둘러싼 환경과 개인을 여러 언어로 다루는 일종의 발화이다. 대중문화를 다루는 예술, 팝아트는 현대사회에 부유하는 시각 이미지를 도시 형성의 기호로 받아들이고 이를 취사, 선택, 차용하여 담론의 장에서 재발화한다. 
한국에도 소위 K-pop이라 정체화된 대중문화가 있다. 이는 전후 수입된 팝문화 콘텐츠가 방송과 인쇄물, 상품으로 제공되다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과정을 거쳐 원본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졌다. 그 일부를 작업의 레퍼런스 삼아 한국의 팝아트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꾸준히 생산되어왔지만 생각만큼 논의되거나 정리되지 않았다. 이에 의문을 품은 기획자 정현은 프로젝트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5. 2~6. 2 아트딜라이트)을 구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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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선필작가섹션

전시는 기울어진 육면체의 하얀 공간에서 권오상, 그라플렉스, 김동희, 돈선필, 박지은, 신신, 옥승철, 이동기, 이윤성의 작업을 알레고리로 느슨한 감상의 내러티브를 제공한다. 전시 서문에 부친 기획자의 친절한 설명에 따르면 망가, 스트리트 문화, 신화와 동서양 고전 미술사 클리셰, 성서의 에피소드, 피규어 문화를 다시 한국 미술의 맥락으로 끌어들인 작품이 배치됐다. 벽면에 하나씩 둘러 걸린 5개의 초상 회화와 오브제들은 서로를 마주보지만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박지은의 조형물은 그 모두를 시야에서 가리거나 반사한다. 그리고 육면체 전시 공간 밖 따로 떨어진 작은 곳에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을 빌어 시간과 여정에 대한, 그리고 카고 컬트적 자조와 농담이 담긴 돈선필의 영상과 조각이 누군가의 방처럼 꾸며져 있다. 각각의 작품이 놓인 좌대이자 지지체는 모두 김동희의 <SrfPt, ExtrudeSrf>인데, 이때 3D 모델링 프로그램 라이노(Rhino)에서 이미 전시가 한 번 완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완전무결한 3D 모델링 프로그램의 전시장 펑면도에 면과 부피를 부여해 설계된 전시는, 다시 물리적 공간에 렌더링되어 김동희의 작업을 매개로 전시라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신신은 전시장에 으레 놓여 있는 플로어 플랜, 전시 타이틀, 기획자의 글을 다시 종이로 프린트하고 잘라 붙여 전시 전체를 조망하는 <Cham Cham Cham YNLDLHRS>를 만든다. 
‘매체’로서 전시는 예술작품이 공개되는 장소다. 기획자 정현은 팝아트로 분류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업을 모아, 3D 모델링 프로그램에 배치, 설계해 알레고리적 내러티브를 부여해두고, 김동희와 신신의 작업으로 기능적 공간으로서의 전시장이 작동하도록 형식적 매무새를 완성했다. 기획자는 서문에서 대중문화를 차용한 작업물의 화집 출판을 위한 사전 이벤트로 ‘전시’를 채택했음을 밝혔다. 작품들 사이 유난히 텅 비어 보이는 공간을 떠도는 감각은 아마도 나머지 한국 작가들의 작업물이 부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시의 빈 부분은 또 다른 매체이자 장소로 제시될 단행본 『네/아니오/좋아요/싫어요/사랑/혐오/댓글/공유: 2000-2020년 한국 대중문화의 초상』에서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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