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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자연,현실의해방구

2020/09/06

에이스트릭트(a’strict)는 디지털 디자인 컴퍼니 디스트릭트(d’strict)의 미디어아티스트 유닛이다. <a’strict>(8. 13~9. 27 국제갤러리 K3)는 순수미술을 향한 디스트릭트의 도약을 공표하는 전시. 시뮬레이터, 비주얼 이펙트로 구현된 <Starry Beach>는 전시장에 생생한 밤바다를 펼쳐놨다.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에 몰아치는 파도는 가상의 풍경이자 영원한 자연이다. / 김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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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ryBeach>멀티채널프로젝터,사운드가변크기3분2020

철썩하고 부딪치는 감파란 물결에 하얀 포말이 잘게 부서지는 바다. 크고 작은 파도가 서로를 덮치며 해조음을 쏟아내고, 칠흑 밤바다를 비추는 별빛이 알알이 박혀 있다. 거센 파도는 중력을 거슬러 힘차게 솟아오르다 잠잠히 사그라들기를 반복한다. 파란 바닷물이 철럭거리는 밤의 해변이 국제갤러리 K3에 펼쳐졌다. 3분간 6m 높이의 전시장을 휘감는 파도는 에이스트릭트의 대형 멀티미디어 설치작업 <Starry Beach>. <a’strict>는 에이스트릭트의 첫 개인전이자 그 결성을 알리는 자리다. 
에이스트릭트는 아트테크 팩토리(Arttech Factory) 디스트릭트의 미디어아티스트 유닛. 그 모태인 디스트릭트는 지난 5월 삼성동 코엑스 아티움의 대형 LED 스크린에 띄운 <Wave>로 국내외의 큰 화제를 모은 디자인 회사다. 디스트릭트는 상업 영역에서 쌓아온 다양한 디지털 기술의 이해를 바탕으로 미디어아트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에이스트릭트를 결성했다. 에이스트릭트는 “스스로 갈고 닦아 엄격한 디자인을 제시하되(design+strictly),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de+strict), 디자인과 기술을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디스트릭트의 철학에 기반해, 특히 예술 분야에 집중한다(art+strictly)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프로젝트마다 각기 다른 전문 크리에이터가 합류했다 해산하는 오픈형 체제가 에이스트릭트의 특징. 디스트릭트 소속의 시각, 영상, 공간, 운영 디자이너 등으로 구성되지만 그 인원은 유동적이다. “에이스트릭트의 인원 세팅엔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해당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메인 크리에이터를 먼저 정하고 콘셉트에 맞춰 필요한 인원을 일시적으로 투입한다. 큰 작품은 6~10명, 작은 작품은 2~3명 정도. 고정 인원은 아예 없다.” 이번 작품 제작에는 약 7명의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했다. 
에이스트릭트의 <Starry Beach>는 디스트릭트의 첫 비상업 실험작 <Wave>와 ‘물’이라는 소재를 공유한다. 물은 바다, 폭포, 분수 등 그 성질을 변주해 선보일 만한 재료이기 때문. 두 작품에도 상이한 기술이 적용돼 전혀 다른 효과를 자아낸다. <Wave>에는 LED 스크린을 뻥 뚫린 입체 공간처럼 구축하는 3D 기술 ‘아나몰픽 일루전(anamorphic illusion)’이 활용된 반면, <Starry Beach>는 시뮬레이션과 비주얼 이펙트(vfx)로 생성한 파도를 프로젝터 6대로 투사한 것이다. <Wave>는 굽이치는 파도를 가상의 큐브 안에 조성했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전시장에 거센 물결을 흘려보내고 관객을 그 안에 가뒀다. “LED는 고해상도인 대신 가까이서 마주하면 눈에 자극적이다. 오히려 프로젝터가 안정적인 색감으로 벽에 딱 달라붙는다. 13m 폭의 블랙박스 같은 전시장은 의도에 따라 조정하기 수월하다. 세 면의 벽에 거울을 붙이는 트릭으로 바다를 무한히 확장했다. 전시장에 들어가는 순간 바다 한가운데 온전히 존재하는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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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ve>2020서울코엑스아티움

압도적으로 몰아치는 <Starry Beach>는 여러 개의 파도 시뮬레이션 패턴을 합성한 가상 자연이다. 염분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바닷물의 형태와 세기를 시뮬레이터로 구현했고 2개의 강한 물결에 잔파도를 섞었다. 리얼리티를 위해 파도 거품의 밀도와 색감까지 디테일하게 신경썼다. 영상과 싱크를 꼭 맞춘 실감나는 사운드는 현장감, 공간감을 극대화한다. 이는 사운드 엔지니어로서 그래미상을 수상한 황병준의 손길. 시공간을 초월해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파도의 스펙터클은 영상과 음향 기술력의 응집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 축적된 첨단 기술과 다방면의 전문 인력이 에이스트릭트의 강점. 화려한 테크놀로지를 손에 쥔 에이스트릭트는 도시와 전시장을 ‘가상 자연’으로 재탄생시킨다. 코로나 시대로 접어든 지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가상의 자연은 그 어느 때보다 해방구로서의 효용성을 갖추고 있다.
한편, <Starry Beach>의 감상은 전통적인 관조에서 벗어나 작품으로의 ‘몰입’을 요구한다. 시각, 청각, 촉각의 요소로 예술작품과 물리적으로 밀착한 ‘몰입’의 미적 경험은 관객의 능동적 참여와 폭넓은 해석을 이끌어낸다. 누구나 쉽고 편하게 느끼지만, 서로 다르게 인지하는 공감각적 체험. 이는 자연스레 예술의 대중화를 수반한다. “에이스트릭트의 작품은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공간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강남 한복판에 <Wave>를 설치한 건 눈이 시려울 정도로 산만한 옥외 광고물에 문제의식을 느껴서다. 눈을 편안하게 하는 자연을 공공에 선사하고 싶었다. <Starry Beach>는 다양한 감각을 깨우는 미디어아트다. 변화무쌍한 파도에서 예술적 영감과 상상을 얻길 바란다.” 북적이는 서울 도심을 시원한 파도로 환기하고, 전시장을 찬연한 밤바다로 탈바꿈해 색다른 사유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에이스트릭트의 작업은 현대미술이 추구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향후 기존의 상업 프로젝트에선 디스트릭트로, 비즈니스적 제약에 얽매이지 않은 창작 활동은 에이스트릭트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예정. 디스트릭트는 다가오는 9월 제주 애월에 ‘이터널 네이처(Eternal Nature)’를 테마로 한 미디어아트 체험관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 개관을 앞두고 있다. 반면 에이스트릭트는 아담한 규모의 미디어아트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탄탄한 기술력으로 중무장한 에이스트릭트가 아트 신에서 보여줄 유의미한 시도를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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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스트릭트 / 디스트릭트의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디스트릭트는 2004년 설립된 디지털 디자인 회사다. 2012년 디지털 테마파크 ‘Live Park’ 론칭 및 평창올림픽, 롯데월드, 코엑스, 포르쉐 등과 협업. 2020년 5월 처음으로 비상업 퍼블릭 미디어아트 <Wave>를 선보였다. 사진은 <Starry Beach> 제작자 일부. 왼쪽부터 이상진, 한상훈, 염민정, 임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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