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기법, 전복의 시선
2020 / 10 / 11
고상우는 치밀하게 연출한 네거티브 ‘반전’ 사진으로 사회 문제를 개념적으로 ‘전복’한다. / 김예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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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olution 진화> 하네뮬레 종이에 엡손 HDR 잉크젯 프린트 150×150cm 2020
인간의 욕망, 사회의 모순을 드로잉, 사진, 퍼포먼스 등으로 표현해온 고상우. 개인전 <Evolution>(10. 7~11. 4 갤러리나우)을 열고 대표 시리즈 약 10점을 선보인다. 1978년 서울 출생의 작가는 15살 미국으로 이주하며 수많은 차별에 부딪혔다. 피부색, 성별, 신체를 향한 편견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고,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사진과 퍼포먼스를 전공하며 그간의 문제의식을 작업화했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반전’. 고상우는 <자화상> 시리즈에서 이브, 마리아, 마돈나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서양 여성으로 분장하고 그 모습을 네거티브 필름으로 찍어 인화했다. 네온사인처럼 화려하지만 얼어붙은 듯한 파란 피부의 인물은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이미지로 인종과 젠더의 경계를 흐린다. 붉고 푸른 색상이 대비되는 사진작업은 동양인 이민자의 이상과 현실을 암시한다. 빛과 어둠의 반전이 애정과 편견의 역접 혹은 결합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시리즈를 처음 공개했던 2001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칼햄머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어 미술계에서 주목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청색 사진의 선구자(pioneer of blue photography)’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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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펄> 하네뮬레 종이에 엡손 HDR 잉크젯 프린트 150×150cm 2020
작가는 기존 사진을 네거티브 반전해 사회의 경계, 갈등, 정서를 개념적으로 뒤집는 작업을 지속해간다. “작품의 스토리보드를 구상하고 직접 나서서 작업하거나 모델을 캐스팅한다. 색상의 반전을 고려해 몸에 페인트칠을 한다. 촬영 환경을 섬세하게 세팅한 뒤 약 3,000~5,000장을 찍는다. 수천 장의 사진 중에 단 몇 장만 살아남는다.”
2002년 전후로는 자전적 스토리에서 더 나아가 사회 문제와 그 이면에 담긴 불변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탐구했다. 2004년부터 통상적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모델을 찍었고, 특히 2007년 <I am beautiful> 시리즈로 고정된 아름다움에 의문을 던졌다. 2008년부터는 레즈비언 커플과 협업해 동성애에 관한 편견을 비틀거나, 고통을 뛰어넘는 사랑을 이야기했다. 2019년 고상우는 멸종 위기 동물에 주목해 실제 동물의 모습을 촬영한다. 동물의 사실적 형상에 디지털로 비현실적 채색을 더했다. 일러스트 전문가와 약 2년간 긴밀하게 작업한 결과다. “사랑스러운 존재로 묘사한” 동물 주위의 꽃, 나비, 하트는 자연과 어우러진 동물의 순수한 영혼이다. “우리는 동물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운명이다. 그들이 없어지면 우리도 사라진다. 그 눈동자를 마주하고 교감하며 경각심을 지녔으면 한다. 눈동자에 다양한 감정이 반영되도록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최근 작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한국, 유럽, 미국에서 총 10주간의 격리 생활을 했다. “뿔이 잘려나간 채 동물원에 갇혀 생활하는 사슴을 떠올렸다. 주변과 단절되고 자유가 사라졌다. 멸종 위기 동물은 결국 인간 때문에 고통받는 존재인데, 현재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인간의 모습도 그와 다르지 않다. 멸종 위기 동물에는 인간도 포함된다.” 고상우는 앞으로도 네거티브 작업으로 이미지를 ‘반전’, 세상을 ‘전복’할 예정이다. “왜 네거티브인지 물으면, 나는 왜 주류에 등을 돌리면 안 되는지 반문한다. 반전된 사진은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통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