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몰라도 돼!!”

2020 / 12 / 06

다양한 집단의 여성 초상을 그려온 샹탈 조페(Chantal Joffe). 리만머핀 서울에서 한국 최초의 개인전 <십 대들(Teenagers)>(11. 12~2021. 1.29)을 열었다. 딸, 조카, 딸의 친구 등 가까이서 지켜본 질풍노도의 십 대들을 담은 신작 15점으로 전시를 꾸렸다. 그의 작업은 강하고도 취약한,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다 자랐지만 어리숙한 존재를 다정하게 매만지는 애정의 손길이다. / 김해리 기자

<카를로타와 에스메> 보드에 유채 50.8×40.5cm 2020

‘중2병도 제때 오는 게 복’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 큰 성인의 때늦은 일탈을 놀리는 말이지만, 그 이면엔 과하게 허장성세한 태도 혹은 객기 충만한 반항만큼은 꽃봉오리 청소년의 일시적 특권이라는 함의가 있다. 아이라기엔 적잖이 커버렸고 어른이라기엔 여전히 미숙한, 그 괴리가 만들어낸 질풍노도의 ‘중고딩’ 시절. 성인으로 몸과 마음을 리모델링하느라 분주한 사춘기다. 샹탈 조페는 자신의 딸을 포함한 소년 소녀를 그려 한국 최초의 개인전 <십 대들>을 개최했다. 2018~20년 사이 제작한 신작 회화 15점으로 전시를 꾸렸다. 
조페의 딸 에스메(Esme), 조카 알바(Alba), 딸의 친구 벨라(Bella), 카를로타(Carlotta), 프레이저(Fraser)가 그림의 주인공. 심드렁한 표정, 무관심한 눈빛의 ‘어른 아이’들은 시시한 세상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시시콜콜한 비밀을 속닥거리고 있다. 끓어오르는 ‘방년’의 에너지를 어떻게든 발산하던 때다. 과거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온다면 어른이 됐다는 신호다. 당신은 세상 오만 고민을 전부 떠안고 세차게 흔들리던, 그때 그 치열했던 십 대 청춘을 기억하는가? 
1990~2000년대 초반까지 조페는 패션쇼의 캣워크 모델, 포르노 여배우, 문학작품의 주인공을 작은 사이즈의 캔버스에 담아왔다. 특히 영혼 없는 포르노 여배우의 눈빛에 반짝이는 생기를 선사하고, 획일적 시선으로 다듬어진 대중문화의 여성에게 와일드한 개성을 선물해왔다. 2004년 딸 출산을 계기로 주변 실제 인물을 모델 삼기 시작한 조페. 회화의 주제가 사적인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번 전시는 딸 에스메를 비롯해 가까이서 오랫동안 지켜본 십 대 청소년의 초상화로만 채웠다. “부모가 되는 건 급진적 변화를 가져온다. 전혀 다른 사람이 돼야 한다. 내 작업은 점점 사적 영역으로 들어왔고 이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딸과 그 친구를 관찰할 때면 마치 동물원이나 식물원에 간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 회화란 발견의 과정이고, 발견을 추적하는 일은 중독적이다.”

<에스메> 캔버스에 유채 180 ×120cm 2020

3m 높이로 리만머핀갤러리를 내려다보는 <알바>(2019). 최근 14살을 맞아 중학교에 입학한 작가의 조카다. 소매를 척척 걷어붙이고 꼿꼿이 선 그는 마치 사냥감을 주시하는 거인 전사와 같다. 작가는 교복을 갖춰 입은 여자아이가 뚜벅뚜벅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에서 여성의 강인한 파워를 감지했다. 어른인 양 한껏 꾸민 12살의 <벨라>(2020)와 <에스메>(2020). 훌쩍 길어진 팔과 다리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듯 어정쩡한 자세와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이들은 눈앞의 이와 시선을 맞추기보다 그 너머를 내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짐작할 수 없다. 컬러 셀로판지를 덧댄 어른의 시선과 달리, 이들은 뿌연 유리창으로 처음 발견한 풍경을 보기에 흐리멍덩한 공상과 아리송한 몽상으로 불투명한 세계를 메꾸는 중이다.
둘 이상을 함께 그린 작품도 있다. 대체로 1인 초상화에 비해 작은 크기다. 아이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모습을 담았다. <카를로타와 에스메>(2020)에서는 시답잖은 농담에도 깔깔 웃음을 터트리는 딸과 친구를 묘사했다. ‘엄마는 몰라도 돼’라고 쏘아붙이던 쌀쌀맞은 말투와 흘겨보던 눈초리는 온데간데없다. <프레이저와 에스메>(2020)의 프레이저는 이번 전시 유일한 남성 모델로, 에스메와 일주일 차이로 태어나 평생 알고 지내온 사이다. 조페는 허물없던 두 아이가 비로소 여성과 남성으로 ‘변태한’ 데서 오는 미묘한 긴장을 포착했다. 작가는 전한다. “여러분의 십 대 시절을 떠올려보세요.”
“나는 빛과 그림자 사이의 깨끗한 선, 투명하고 선명한 색을 그리고 싶었다. 내 표현력을 의도적으로 자제했다.” 작가는 바탕색으로 ‘애플 그린’을 사용한다. 흐리고 탁한 표현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화면 군데군데 바른 산뜻한 연두색이 살결의 따스함, 마음의 천진함을 돋운다. 또한 인체 비율을 과장하고, 배경을 어그러트렸지만 조페에게 이는 왜곡이 아니다. 자신이 느낀 그대로의 “진실한 묘사”라고 강조했다. 본인의 경험과 감각에 솔직한 작가. 그는 충동의 투영을 사실로 여기는 표현주의의 후예다. 파울라 모더존-베커의 일기장 구절 <개인의 느낌이 중요한 것(Personal Feeling is the Main Thing)>(2018)을 지난 전시 이름으로 차용할 만큼, 여성 표현의 성화(聖火)를 나르고 있다.

<카를로타와 에스메> 보드에 유채 50.8 ×40.5cm 2020

이처럼 작가는 대중문화의 셀러브리티, 하위문화의 포르노그래피, 어머니와 딸까지 여성주의 미술의 테마를 맴돌고 있다. 이들을 사회적, 생물학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주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다만 조페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의식보다도 “여성의 신체와 걸음걸이, 풍부한 표정 변화, 재밌는 옷매무새”를 담고 싶었다고 한다. 그의 작업은 강하고도 취약한,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다 자랐지만 어리숙한 존재를 다정하게 매만지는 애정의 손길에 가깝다. 해당 인물을 둘러싼 세간의 편견을 걷어내고 그들이 내뿜는 궁극의 에너지 자체를 화폭에 담았다. 페미니스트이기 이전에 휴머니스트인 것이다. 다시 한번 조페의 그림을 살펴보자.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 모든 애송이들의 초상이다. 봄을 생각하는 불완전한 인류의 얼굴이다. 결국 회화의 주제는 삶으로 회귀한다. 우리는 삶의 한 단면을 ‘흑역사’라 덮어두고, ‘한때’라 치부해 까맣게 잊고 살지는 않는가?  
2021년 조페는 꽉 찬 일정을 소화할 예정. 덴마크 루이지애나미술관, 런던 빅토리아미로갤러리, 더블린 아일랜드현대미술관에서 연이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모두 ‘엄마’가 주제다. “2021년은 엄마의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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