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텍스트, 편집의 감칠맛
2020 / 12 / 08
11년 차 에디터, 격월간 사진잡지 『보스토크』 편집장 박지수. 그가 개인전 <기억된 사진들 2010-2020>(10. 30~11. 28 합정지구)을 열고 10여 년간 써온 글을 한자리에 모았다. 일간지 연재 칼럼, 잡지 기사, 전시 서문과 리뷰까지, 모두 ‘사진’을 이야기한다. 예리한 눈으로 선별한 사진은 동시대 풍경을 비추고, 현실을 날카롭게 읽어내는 글에는 그의 에디터십이 녹아 있다. / 이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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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개인전 <기억된 사진들 2010-2020> 전경
2016년 늦가을, 사진계에 지각 변동이 일었다. 한국 사진잡지의 혁신을 예고하는 신생 매거진이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으로 창간 후원금을 모으며 태동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창간호 제작비 7백만 원. 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결과, 약 3천 3백만 원이 모금돼 목표액의 467%를 초과 달성했다. 같은 해 11월 25일, 『보스토크』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기존 사진잡지에서 만나기 힘들었던 새로운 필자군, 젊은 감각을 지닌 디자인 스튜디오 물질과비물질의 협력, 광고 수익에 목매지 않으려는 의지. 『보스토크』가 추구하는 새로움이란 사진을 더 깊이 알고, 즐기고, 느끼기 위해 사진 밖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시도다. 인류 최초 유인 우주선 이름이기도 한 ‘보스토크’. 독립 출판의 굴곡진 현실을 딛고 출발한 우주여행이 벌써 4주년을 맞았다.
사진계의 보스토크호를 이륙시킨, ‘인간 『보스토크』’ 박지수 편집장이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 자체가 처음은 아니다. 2016년에는 사진가 커뮤니티 리플렉타가 참여한 단체전, 2018년에는 사진작가 이민지 개인전을 기획했다. 그러나 박지수가 기획한 박지수 개인전은 처음이다. 11년 차 사진잡지 에디터로서 사진(가) 주위에서 머물고 바라보며 쓴 글을 모았다.
전시는 세 파트다. 첫째, 칼럼. 1년 반 동안 매주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 23편을 선별했다. 보도 사진, 사료 이미지, 영화 장면을 꼼꼼히 읽어내는 글은 현실의 이면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둘째, 납품한 글. 잡지에 쓴 기사, 청탁받아 집필한 서문과 리뷰를 모아 한 권의 리플렛을 제작했다. ‘리플렛들의 리플렛’에는 그의 활동 반경과 작품을 해석하는 사유가 압축됐다. 마지막, 사진. 1980년대생 이후 사진작업자의 작품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추리고 소개 글을 덧붙였다. 한국 동시대사진의 경향을 요약하는 동시에 텍스트 전시가 주는 피로감을 줄였다. 프레임을 넘나드는 텍스트와 사진 구성이 컴퓨터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닮은, 박지수 머릿속의 편집 지형도를 전시장에 시각화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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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1층에는 1980년대생 사진작업자들이 2010년대 이후 발표한 사진을 '사파라' '세팅' '카메라 롤' '페이스타임' '프리뷰'라는 다섯 키워드로 구분했다.
사실 박지수가 사진 외길 인생을 걷지는 않았다. 학부에서 국어국문학과를 전공했지만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그 매력에 빠졌고, 제대 후 수능 시험을 다시 치러 28살에 사진학과로 진학했다. “대학 때 옆길로 많이 샜다. 어머니와 형이 사진학과를 가라고 권유할 정도로. 국문학과 다니는데 사진만 찍으러 다니고, 휴학 중에도 동아리 회장 하고 있으니까 ‘얘가 제정신이 아니구나’ 느낀 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기로 미리 약속한 것처럼 작은 우연과 원인에 부딪히며 무언가가 된다. 박지수는 작업과 취업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했고, 사진기 대신 키보드를 잡았다.
그가 에디터로 발돋움한 곳은 『월간사진』이다. 2010년 막내 기자로 입사해 작은 꼭지부터 맡으며 기자라는 직업의 역할과 좋은 편집자 모델을 고민했다. “『월간사진』에 있을 때만 해도 기사를 잘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감 기간에 지나치게 날카로워지는 사수들을 보며 기자가 본인 기사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면 전체가 틀어진다는 걸 느꼈다. 기자 자신이나 작가보다 독자를 위해 글을 써야 한다고 깨달았다. 예민하게 굴지 말자고, 글 욕심을 덜자고 다짐했다.” 이후 2013년, 그는 『월간사진』을 나와 사진 앱진 『VON』 편집장을 맡았다. 제작 과정은 종이 잡지와 별다르지 않지만, 디지털 플랫폼 특성상 삽입 가능한 사진 수, 글 분량, 스크롤로 무한히 연장되는 지면은 편집의 운용 범위를 크게 확장했다. 하지만 2015년 『VON』은 회사 사정으로 갑작스레 휴간했다. “9월호 발행을 이틀 앞두고 갑자기 고별사를 썼다. 잡지는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구나 절감했다. 그래도 『VON』은 ‘안녕’ 멘트라도 넣었지, 그마저도 못 하고 사라진 잡지도 많다. 전·월세와 비슷하다. 2년간 우리 집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집주인에게 쫓겨나듯이, 만들 땐 에디터 잡지 같지만 사실은 발행인의 것이고 상황에 따라 휴간하기도 한다.” 백수가 된 박지수에게 손을 내밀어준 다음 일터는 『PHOTO닷』이다. 포도알 같은 동글동글 제호와 감각적인 이미지로 변신한 2016년 『PHOTO닷』이 박지수 전 편집장의 작품. 그러나 이곳에서도 그는 역시 세입자 신세였다. 발행인이 기대한 개편과 낙차가 큰 탓이었을까, 2016년 7월호를 마지막으로 경질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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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지하 1층. 박지수가 직접 선택한 사진을 전시했다.
다시 길바닥에 나앉은 그는 차라리 집주인이 되기로 한다. 튼튼한 벽돌집은 못 되고 둥지에 가까울지라도 소수의 욕망을 위한 과시형 기사가 아니라 독자를 위한 콘텐츠를 편성하고, 독자가 구입하는 책의 수익으로 최소한의 순환 구조를 지향하며. 그에게 『보스토크』는 최장기간 직장이다. “24호까지 나오리라 예상치 못했다. 요즘엔 언제 멈춰야 가장 좋을지 생각한다. 하고 싶은 주제가 계속 생기기도, 없어지기도 하고, 버겁기도, 어떤 때는 두렵기까지 하다. 출판 시스템은 일정 수준의 독자 수가 없으면 존재 의미가 사라지는데 그게 어느 정도일지 고민한다.”
국어국문학도가 11년 차 사진잡지 에디터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어느 날 사진 동아리에 가입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다 기사를 쓰고, 잡지를 만들다 쫓겨나고…. 에디터란 누구보다 에디터의 존재를 자주 고찰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편집의 사명감과 즐거움을 스스로 정의하며 일의 동력을 재생산한다. 박지수에게 편집자로서 뚝심은 무엇일까? “과거에는 좋은 콘텐츠와 이미지를 고르려 했다면, 미투 이후로는 나쁜 걸 보여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소개하면 안 되는 기사를 걸러내려면 세간의 정보에 민감해야 한다. 편집자는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일상을 살아간다. 이 사실에 둔감해지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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