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싶다
2021 / 01 / 07
사진작가 김신욱의 괴수 추적기 / 김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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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시를 찾아서> 포스터
“정글 숲을 지나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늪지대가 나타나면은!” 한국에선 백이면 백 악어 떼가 나오겠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네시(Nessie) 떼가 출몰할지 모른다. 네시는 스코틀랜드 인버네스 인근 네스호수(The Loch Ness)에서 서식한다고 믿어지는 괴생물체다. 1934년 런던의 외과의사 로버트 윌슨의 카메라 렌즈에 깜짝 등장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수면 위로 길게 뺀 목, 출렁이는 물 아래 육중한 몸, 보일 듯 말 듯 미스터리한 턱선 윤곽은 단연 괴수계의 포토제닉 감이다.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네시를 찾아 모험 떠난 사진작가 김신욱.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네시를 추적하려 2018~20년 사이 9번의 탐사를 떠났다. 그 집요했던 결과가 제7회 아마도사진상 수상전인 <네시를 찾아서(In Search of Nessie)>(2020. 11. 19~12. 20 아마도예술공간)에 펼쳐져 있다. 키치한 포스터의 ‘어그로’에 이끌려 전시장에 들어서면, 사뭇 진지한 태도의 사진과 영상이 네시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 작가가 직접 모은 소품, 기사, 책과 함께 전설의 괴수 네시를 둘러싼 100년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005년 민물고기를 소재로 한 유형학적 사진 시리즈로 데뷔한 김신욱. 어릴 적 졸졸 따라다니던 한국의 민물고기 210종을 촬영했다. 이후 런던 유학을 기점으로 자신의 삶에 밀착한 주제로 행로를 튼다. 형식보다 의미의 맥락으로 포커싱을 돌린 분기점이다. 이 시기 작품은 모두 자전적 스토리에 기인한다. <Unnamed Land: Air Port City> (2015~20) 시리즈는 히드로 공항 인근을 촬영했다. 영국에 여행사를 차려 공항 픽업을 오가던 일상의 단면을 담았다. <The Night Watch>(2011~16) 시리즈는 군 시절 경험을 떠올려 유럽 국경지의 숲 야경을 포착했다. 반면 이번 전시의 <네시를 찾아서> 시리즈는 작가의 삶과 연결고리가 느슨한 첫 작업이다. 괴수 네시를 뜀틀 삼아 허구와 실재, 신화와 과학, 예술과 소비 등 여러 보편적 층위로 도약한다. “10년 전 네스호수에 처음 갔다. 인적은 드문데 주변 쓰레기통이 꽉 차 있던 모습이 퍽 희한했다. 그럼 누군가 오간다는 건데···. 1930년대 찍힌 사진 한 장이 도대체 뭐길래 싶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유학 생활의 일상이 피로하기도 했고,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지의 세계로 탈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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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rry Island>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50×66cm 2019
이번 작업은 ‘왜 하필, 영국의 하고많은 호수 중 네스호수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전시 공간의 구분은 최초의 질문에 대한 네 가지 대답이다. 제1안, 야외 온실은 네시의 역사, 종교적 원류를 암시한다. 커다란 서책과 양의 사체 사진 <Knockie Lodge>(2019)는 온실에 놓았다. 6세기 스코틀랜드에 가톨릭을전파한 성인 콜룸바의 네스강 괴물 퇴치 설화를 은유적으로 해설한다. 제2안, 지하 전시장은 네시 괴담을 현재까지 전승하는 데 일조한 (유사) 과학 섹션이다. 네스호수의 물을 담은 비커, 수중 조사용 전파탐지기, DNA 샘플, 각종 허위 기사 등 작가가 부지런히 챙겨 모은 아카이브로 가득하다. 꾹꾹 눌러 담은 자료는 네시 괴담의 전래 과정을 꽤 체계적으로 뒷받침한다.
제3안, 1층 윈도우 전시장은 가히 전설의 괴수가 살 법한 네스호수 풍경의 숭고미와 아우라를 보여준다. <Loch Ness Rainbow>(2019)의 아름다운 풍광에는 네시 헌터와 관광객의 욕망이 집약되어 있다. 제4안, 2층 메인 전시장은 몬스터 투어와 미디어 노출로 현재 진행 중인 ‘네시 산업’의 현황을 드러낸다. 현란한색으로 구매욕을 자극하는 네시 스토어 사진 <Gift Shop>(2019), 군데군데 놓인 귀여운 네시 모형은 자본주의에 흠뻑 취해버린 괴수의 전형이다. 김신욱은 과거에서 현재로, 전설에서 마케팅으로 이른 믿음의 벨트를 유형학적 ‘분류’ 방법론으로 제시했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아카이브형 사진전이라는 점. 합법적 루트로 수집해온 희귀 자료가 작품의 밀도를 증폭한다. “나는 네스호수의 전설과 역사를 있는 대로 몽땅 캐냈다. 뉴질랜드 연구자에게 학계의 입장도 듣고, 자칭 타칭 네시 전문가 할아버지와 인터뷰도 했다. 꼬박 2년이 걸렸다. 하지만 내가 캐치한 이미지만으로 1,500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네시의 시간을 다 메울 수 없었다. 앞선 시간과의 간극, 당대 사람의 반응과 해석을 아카이브로 채웠다. 모두 작업의 일부다.” 또한 네시 추적 과정은 쫄깃한 스릴, 긴박한 사투, 간담 서늘한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 같지만 정작 그에게는 막연하고 지루한 나날의 연속이었다고. “네스호수의 날씨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딱히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고됐다. 눈에 심지를 켜고 잠복해봤지만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작가는 실체 없이 인간 세계를 조종하고 먹여 살리는, 전 세계적인 롱런 괴수 스타 네시에게 헌정하는 회고전을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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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t Shop>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120×160cm 2018
한편 김신욱이 자신의 삶과 접점이 전혀 없는 네시를 소재 삼은 건 이례적이다. 영국 유학 시절 작가는 인종 차별에서 달아나려 밤의 숲으로 출사를 떠나곤 했다. 동양인을 향한 공격과 혐오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작업에는 제약이 따랐다. 태도를 180° 바꿔 재도약을 시도했다. 네시 시리즈는 대낮에 낯선 사람과 부대끼며 제작했다. 그는 왜 하필 모든 곳, 모든 시대에 존재했지만 ‘정상’ 범주에서 배척되어온 타자성의 징후이자 표상인 괴물을 타깃 삼았을까? 있지만 없고 없지만 있는 괴물을 끈질기게 탐사한 일은 유럽 사회에서의 주변인, 이방인, 타자에 해당하는 스스로를 찾아 떠난 존재론적 행위의 메타포일 수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신욱은 자신을 사진작가라는 정체성에 가둬두지 않는다. 현재까지의 작업에 알맞은 매체가 사진이었을 뿐, 앞으로 그려내고 싶은 주제가 다른 표현 방식을 원한다면 무엇이로든 전환할 예정이다. “사진은 이야기의 도구. 도구는 언제든 필요에 따라 갈아 끼울 수 있다.” 더욱이 작가는 작년 8월 예술 및 사진 출판사 ‘Artist Run Publishing (ARP)’을 개업했다. 책이 가진 기분 좋은 물성, 누구에게나 공평한 매개체라는 특성에 집중해 아트북을 제작하려는 목적이다. 우선 2021년에는 통의동보안여관 개인전, ARP의 유럽 북페어 출품에 집중할 계획. 앞으로 김신욱의 작업은 어디로 통통 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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