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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깔이변하기전에

2021/01/12

문웅 소장품 기획전 <세종 컬렉터 스토리> / 선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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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플렉<Stadium(WM)291Ⅸ>캔버스에유채200×200cm2006

이번 전시에는 컬렉터 문웅이 50여 년간 수집한 작품 3000여 점 중 120여 점을 선별해 공개했다. 출품작은 현대미술부터 고서화까지 동서고금의 다양한 장르를 망라한다. 전시명은 화가 홍성담이 1992년 8월 문웅에게 보낸 옥중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있던 작가는 나팔꽃을 편지 봉투에 넣고, 꽃잎의 ‘붉은색이 변하기 전’에 편지가 도착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적었다. 이렇듯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한 점 한 점에는 컬렉션의 사연이 절절히 녹아있다. 특정한 양식, 시대, 사조, 지역에 초점을 맞추는 보통의 기획전과는 달리, 컬렉터의 수집 철학이나 작가와의 인간적인 교류의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이색 전시다. 
해외에는 반즈파운데이션(The Barnes Foundation)의 소장품 순회전처럼 컬렉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공전의 히트를 친 전시가 수두룩하다. 한국의 경우, 생존 컬렉터, 현재 진행형의 컬렉션을 조명하는 미술관 전시는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야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 하정웅 컬렉션의 전국 시도미술관 순회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이번 전시는 기획과 감상 측면에서 모두 새로운 화두를 던진 의미있는 전시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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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섭<일몰>종이에수채38×56cm1985

특히 <세종 컬렉터 스토리>는 외부의 전문 큐레이터를 초대해 컬렉션 선별, 주제별 분류, 전시 동선 구성 등은 물론이고, 컬렉션의 역사와 의미를 분석하는 비평 작업도 펼친다. 올해 전시기획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동국 수석큐레이터가 맡았다. 그는 전시를 다섯 섹션으로 나눴다. 동서와 고금의 구분을 과감하게 허물고, 유사한 주제가 시대, 장르, 재료, 기법에 따라 어떻게 만나는지, 그 동질성과 이질성을 조망하는 자리다. 
첫 섹션 ‘산과 바람’에는 산수풍경이 펼쳐져 있다. 오지호, 박고석, 변시지, 김종학, 유병엽, 손장섭, 구자승, 주태석의 풍경화, 그리고 이상범, 허백련, 변관식, 김기창, 허건 등의 전통 산수화가 소개되었다. 또한 북한의 인민화가 선우영, 해외 작가로 하리 마이어의 풍경화가 전시됐다. 두 번째 섹션 ‘사람과 삶’에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상을 그린 작품 위주로 구성됐다. 홍성담의 작품이 단연 돋보인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에 제작한 작품뿐 아니라 목판화가 다수 소개됐다. 또 오윤, 임직순, 황유엽, 김원숙 등과 함께 데이빗 호크니, 랄프 플렉의 작품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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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엽<비둘기있는풍경>캔버스에유채50×65.5cm1987

세 번째 섹션은 ‘정중동 동중정.’ 움직임과 멈춤의 조형적 상호 작용을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 작품을 모았다. 이응노, 천경자, 박대성, 배동신, 임직순, 구본창, 이석주, 오치균 등의 작품이다. 문웅은 수채화가 배동신의 <자화상>을 경매에서 31회나 응찰을 거듭한 끝에 시작가의 9배로 손에 넣었다. 네 번째 섹션은 ‘서화미술 일체.’ 전통 서예뿐만 아니라 서예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을 소개했다. 김정희, 이광사, 손재형, 이삼만, 김기승, 김충현, 이돈흥 같은 당대의 서예 대가와 함께 김환기, 이응노, 전혁림, 정건모, 오수환의 문자나 서예의 필획을 응용한 추상회화, 그리고 독일 신표현주의 화가 A.R. 펭크의 작품이 출품됐다. 
제5섹션은 ‘컬렉션 속의 컬렉션.’ 문웅이 컬렉터이자 후원자로서 작가와 긴밀히 교류해왔던 흔적을 확인하는 아카이브를 전시했다. 이대원의 스케치북과 벼루, 김흥수의 기사 스크랩북 등의 자료가 소개되었다. 우제길의 그림 연하장, 강연균의 스케치, 법정과 청담의 글씨, 김지하의 묵화, 안병욱의 글씨 같은 소소한 컬렉션도 포함돼 있다. 
문웅은 대학 졸업 후 27세 때 건설 회사를 설립해 재산을 모았다.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술, 담배는 입에 대본 적도 없다. 유일하게 돈을 쓴 곳이 그림이다. 문웅은 컬렉션 활동으로 작가를 꾸준히 후원해왔으며, 자신의 호를 딴 <인영미술상>을 설립해 신진 작가를 17년째 발굴하고 있다. 그는 27세 때 학정 이돈흥에 사사하여, 서예 공부를 시작했다. 반세기 이상 서예에 매진하면서 다양한 미술분야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 그는 성균관대에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론가다. 
문웅 교수는 이번 <세종 컬렉터 스토리>전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작은 일이 문화예술에 불씨를 지피고 사랑의 불길로 번져갔으면 좋겠다. 나의 이 미흡한 소장품이 일반인들에게 작은 울림과 자극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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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웅/1952년전남장흥출생.경영학,마케팅,국어국문학,예술경영학전공.성균관대예술학박사.중앙대예술대학원교수,호서대교수역임.이돈흥에게서예사사.『문예사조』에등단해한국문인협회회원으로활동.저서로『미술품컬렉션』,『인생을예술처럼』번역서로『인생을사는기술』,『기업이벤트프로젝트관리』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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