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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COMERS77×콘노유키

작품/전시를 시공하기: 2015년 이후를 중심으로
/ 콘노 유키

2017년 취미가에서 열린 곽이브의 프로젝트 <역할 part>에서 특징적인 점은 ‘부분’, 즉 대상을 소재・자재로 다루는 일이다. 전시에서 대상(이미지)은 도구처럼 어떤 것‘으로’ 사용되고 다른 결과물이 ‘된다’. 예컨대 커튼의 이미지는 전시장을 장식처럼 액자화하면서도 커튼 자체의 성격을 유지하여 보여준다. 열고 닫는 커튼이 그렇듯이, 전시에서 이미지는 비유적 또는 실제로 팔랑거리고 멈춘다. 잘라내고 붙여 넣을 때, 이미지는 전시 공간에서 다르게 구축되는 소재・자재가 된다. 이 성격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전시 제목과 공간에 설치된 ‘으로’와 ‘되자’의 문구가 들어간 이미지다. ‘무엇’이 빠진 두 표현이 그렇듯이 소재・자재가 역할의 방향성 및 수단이 되는 지점을 전시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런 성격은 보다 물리적인 형식으로 김동희의 작품에 찾아볼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가공할 헛소리>(2018)에 출품한 <프라이머, 오퍼시티>에서 작품은 전시장 공간과 외부를 열고 닫는1) 매개 역할을 한다. 곽이브가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에 집중했다면 김동희는 공간을 소재・자재 삼아 전시 공간과 작품이 맺는 관계에 더 주목하였다.
2015년 이후에 소개된 작품을 볼 때, 그 특징(을 ‘뒷받침하는’ 것)은 무엇일까? <역할 part>와 <프라이머, 오퍼시티>의 공통점은 이미지와 전시장을 불문하고 소재・자재로 다뤄지는 특성인데 그것은 ‘시공(施工)’의 결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시공이란 도면에 따라 현장에서 공사를 하고 구조물을 만드는 일을 가리키지만, 단순히 어떤 형태를 만드는 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목수가 만든 것 이상의 역할을 집이 수행하듯이, 시공은 결과물에 다음과 같은 특성을 내포한다: (1) 조건 설정하기, (2) 대상을 내부에 담기, (3) 외-내부를 구획하여 경계면 만들기. 시공은 공법(工法)과 구법(構法), 즉 전체(상)와 부분의 역할에 대한 관계와 ‘만드는’ 일과 구축하는 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 말하자면 작품의 전체상을 만드는 일과 세부를 구성하는 일의 관계, 작품을 배열하고 설치하는 전시의 관계를 재설정하면서 무엇을 소재・자재로 다루는지에 대한 방법론으로 적용된다. 곽이브의 작품에서 설정된 사각형 컷이 어떤 장면을 부분적으로 담아냈듯이, 김동희의 작품은 전시 및 공간을 참조하여 공간 내부와 창 너머로 보이는 외부, 그의 작품과 다른 참여 작가의 공간을 구획하고 또 연결한다.

1-1 조건 설정하기

먼저 개별 작가 작품마다 조건이 설정된다. 박아람의 <에이포트레이트>(위켄드 2017)의 동명의 작품은 정해진 범위에서 작가와 관련된 정보값2)을 통해 변주하며, <뉴 스킨: 본 뜨고 연결하기>(일민미술관 2015)전에 소개된 강동주의 <달은 어디에 떠있나>(2015)3)와 <프리셋>(원룸 2017) 전시에 소개된 주슬아의 <Spot Motion> 시리즈(2017)4)에서 달을 찾고 영상의 시간을 과정적 지표로 기록하였듯이, 두 작가는 나름의 조건을 도입하여 평면을 다룬다. 작가가 조건을 설정하는 작업이 있는 한편 조혜진의 개인전 <한시적 열대>(케이크갤러리 2015)에 소개된 일련의 작품, 정금형의 <소방훈련 시나리오>(2016)5), 노인 되기 연습을 묘사한 제니 조지프(Jenny Joseph)의 시와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치매 예방 뇌 훈련 퀴즈를 결합한 SMSM(Sasa[44], 박미나, 최슬기, 최성민)의 <경고>(서울시립미술관 <에이징 월드> 출품작, 2019)는 기존에 정식화된 자료를 참조하여 다룬 사례이다. 다른 한편 규칙은 미술의 기존 형식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분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일례로 리지드(이상훈, 최경원)의 활동은 2015년과 2017년에 ‘단단한 바탕’이라는 강연을 열어 회화를 구성하는 바탕을 분석하였고 <단단한 바탕 - 미리보기>(한예종복도갤러리 2018)에서 회화를 구성하는 재료적인 측면을 보여주었고, <조각스카웃>(탈영역우정국 2017)에서 조각스카웃(이충현, 박종호, 권구은, 강재원)의 네 명은 3차원으로 존재하는 그 매체가 오늘날에 어떻게 위치될지 실험해본다.6)

1-2 대상을/대상으로 내부에 담기

작품에서 내부에 담기, 즉 프레이밍(framing)은 어떤 대상을 소재・자재 삼을 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놓인 조건을 가시화한다. 예컨대 이나하의 <RESIZE>(원룸 2018)와 유지영의 <Spilled Water>(레인보우큐브갤러리 2018)에서 작업에 다뤄지는 이미지는 원본이 지닌 구속적인 면모를 캔버스를 통해서 ‘포착’한다. 두 작가가 다루는 이미지는 표상 방식에서 방향 설정이 전제되는데, 인터넷상에서 유통되는 여성의 이미지와 스티커에 사용되는 애니메이션의 특정 장면은 대상화되고 잘 보여주는 컷을 전제로 한다. 마찬가지로 임창곤의 개인전 <불거지는 풍경>(공간형 2019)에서 파편을 조합하고 접히는 구성은 물리적인 시공뿐만 아니라 캔버스 화면―작가가 ‘덫’이라 부르는7)―에 인물이 불편한 자세를 취하는 인물을 ‘포착’한다.
프레이밍에 따른 소재화는 영상 작품에도 드러난다.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 및 사물을 만들어 촬영하는 류한솔(성균갤러리 2018)과 최영인의 작품(<장난이 조각조각> 유튜브 공개작, 2020)8)이 있으며, 다른 한편 이다은의 <이미지 헌팅>(갤러리 175 <이미지; 변환; 상> 출품작, 2018)이나 김효재의 <디폴트>(OS 2019)는 앞서 언급한 대상이 놓인 조건을 가시화하는 특징을 지닌다. 두 작업은 공통적으로 몰래 유통되고 확산되는 이미지를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전자의 경우 그 과정에서 설득력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을 가시화하고, 후자의 경우 소재화되는 패턴에서 스스로를 익명화하여 이를 디폴트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볼 수 있다. 두 작품은 오늘날에 소재로 이미지가 취급되는 상황에 주목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품 내부적으로 그런 상황을 다룬다.
<재현의 방법>(원앤제이갤러리 2020)에서 소개된 김혜원의 작품 <회화의 이해>(2020) 또한 마찬가지다. 일종의 눈속임 그림처럼 이중 삼중으로 액자화되어 있는 이 작품은 책을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묘사되었지만, 책 표지에 들어간 그림 또한 사진으로 기록되어 소재로 다루어진 사실을 가시화한다. 내부에 담겨진 대상은 그 틀을 단순히 억압적인 것으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틀에 조건 지어진 결과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실키 네이비 스킨>(인사미술공간 2016)에서 <오렌지 포디움>(시청각 2018)까지 선보인 최고은의 오브제 역시 기성품을 가공해서 변조한 결과에 머물지 않는다. 작가가 가공한 대상은 기능이 탈각된 대상으로 전시장에 놓이는데, 그 놓인 상태에서 도드라지는 시각적 매끈함이나 세련됨이 어느 시기 가정에서 전자 제품이 장식적 가치로 한몫한 지점을 보여준다.

1-3 외-내부를 구획하여 경계면 만들기

외부와 내부를 구획하는 일은 (2)와 연관해서 프레이밍을 전제로 하면서 둘의 관계를 주목한다. 외부 곧 작가의 내면이나 바라본 풍경, 사회상이 작품 내부에 옮겨질 때, 경계 짓고 딱 잘라놓을 수 없는 관계, 즉 경계면의 관계가 전제된다. 애초의 표현 대상 즉 모티프나 작업에 쓰는 매체=재료와 재현 행위의 결과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결과에 따라―최근에 서문이나 리뷰에서 빈번히 등장하는―‘해상도9)’ ‘투명성/불투명성’ ‘레이어’ ‘평평함/납작함10)’의 값이 획득된다. 해상도 조절은 투명성/불투명성에 영향을 미치고, 투명성과 불투명성을 사이에 두고 평평함과 납작함은 각각 강화된다. 여기서 평평함과 납작함이 무엇을 가리키는지가 중요하다. 작품이 평평하거나 납작하다고 하는 경우, 애초의 표현 대상과 재현 행위의 결과, 그리고 양자의 관계를 모두 아우른 공간이 작품이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주어를 무엇으로 하는지에 따라 평평함이나 납작함은 다르게 작용한다.
예컨대 <달의 이면>(아시아문화전당 2017)에 출품된 이수경의 작품 <APEC 숏헤어>(2017)의 경우, 페인팅[드로잉]은 3차원적 캣 타워의 구성을 통해 화면적 깊이 대신 물리적 공간에서 깊이를 부여받는다. 한편 개인전 <The Gold Terrace>(아트딜라이트갤러리 2018)에서 소개된 이미정의 작품에서 그려지는 공간 즉 캔버스 역할을 하는 지지체 자체는 평평하지만, 장식의 깊이감 없는 표면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보면 납작하다. 다른 한편 오희원의 개인전 <Iridescent Fog>(ONE FOUR 2019)의 출품작과 심혜린의 개인전 <촘촘하고 반짝이는 연대>(갤러리조선 2017)에서 작품은 반복적으로 그리는 터치가 모두 특징적이지만, 전자에서 환영적으로 창출된 표면은 캔버스에서 평평할 정도로 물성이 없지만, 후자에서 붓의 흔적은 물성을 갖고 레이어를 형성한다.
한편 모니터상의 효과를 캔버스나 오브제로 풀이한 경우, 그 이행 단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기록된다. 3D 프로그램의 뷰포트를 바탕으로 물질적으로 시점을 혼재한 작품을 선보인 문이삭의 개인전 <passion. connected.>(아카이브봄 2017), 윤향로의 개인전 <서플랫픽터>(P21 2018)에 소개된 <Screenshot_4.00.30-001>(2018), 정희민의 <UTC -7:00 Jun 오후 3시의 테이블>(금호미술관 2018)과 <An Angel Whispers>(P21, 2019)에서 작품은 포토샵과 3D 모델링 소프트웨어가 화면상에 만들어내는 환경에서 출발하지만 작품으로 옮기는 과정에 물성과 촉각성을 강조한다. 스크린 환경이 통합적이고 투명한 성격11)을 지닌 데 반해, 작품은 시뮬레이팅된 촉각을 물질화한다.
페인팅과 달리 화면 안에서 다루는 대상을 동일한 시선과 거리로 적용하는 카메라나 모니터는 일차적으로 대상을 자명하게 기록한다. 처음부터 납작함이 전제되고 평평하게 송출되는 시각 기록물은 외-내부의 괴리를 매체 간 이동 대신 시공간적 거리로 표현한다. 이 시공간적 거리는 기술적 장치를 통해 순식간에 전달되는 이미지를 통해 수용자의 시점과 거리를 벌려놓고 전달된다. 공간;극에서 열린 이의록의 프로젝트 <Tele Image Beta>(2018)의 망원경으로 밤하늘을 보는 장면과 초대형 망원경으로 시뮬레이팅되는 영상 기록, 개인전 <시작하자마자끝나기시작>(두산갤러리 서울 2019)에서 소개된 장서영의 <슬립스트림>(2019)의 후방 거울과 내비게이션, 송민정의 <Caroline, Drift train>(<퍼폼2018> 출품작, 2018)의 발길이 끊긴 플랫폼에서 디바이스 화면을 통해 미리 전달되는 목적지의 이미지가 그렇듯이 작품은 시공간의 노출 속도를 비교하여 전달함으로써 작품이라는 경계면에 지금과 나중, 이곳과 저곳을 붙박는다.

2. 전시를 시공하기

전시를 시공한다는 말은 당연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전시 공간이 있어야 비로소 작품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시 공간을 참조하거나 전시 공간을 다른 공간처럼 꾸며 설정하는 전시가 최근에 등장하였다. 어떤 경우에 작품과 전시의 관계는 작품을 다루는 전시(장) 아닌 것으로 변모하였고, 그와 달리 전시장을 거울삼아 참조하는 매개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 또한 등장하였다.

2-1 조건 설정하기

여기서 조건은 세부 즉 부분적 구성뿐만 아니라 전체 이미지를 설정한다. 이 특성을 ‘가설(仮設)’ 즉 ① 가상을 설치하기, ② 임시적으로 설치하기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가상을 설치하는 일은 작가들이 어떤 회사의 모양새를 갖추어 전시장을 만든다. 박보마의 플드즈프 스튜디오(fldjf studio)와 송민정의 시리어스 헝거(Serious Hunger)는 현실과의 경계면을 유지하면서12) 반-가상으로 활동하고 노상호의 <더 그레이트 챕북>(웨스트웨어하우스 2016)에서 샵의 모양새로 출현한다. 전시 공간을 다른 공간으로 설정하는 다른 사례로 압축과 팽창의 활동13)과 <소쇼룸: 비디오 쇼룸>(2018 소쇼룸)을 들 수 있다. 데이터를 물질화하여 가상의 인테리어 공간(<허니 앤 팁> 아카이브봄, 2017)과 화이트 큐브에 가상의 사무실을 만들거나(<유령팔>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8) 채널을 돌려가면서 예고편처럼 영상을 감상하는 리빙-공간의 모양새를 갖춘 전시에서 시공하기의 역할은 가설에 머물지 않는다. 말하자면 시공하기는 많은 양을 보유할 뿐만 아니라 초과적 양을 필터링하고 다루는 역할을 한다. 돈선필 <끽태점>(아라리오뮤지엄인스페이스 2019)이 그 초과적 많음을 지시한다면, 앞서 든 예시는 작가 또는 관람자가 사진 이미지나 영상 작품을 선택하여 다룰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2-2 대상을/대상으로 내부에 담기

여기서 내부란 작품 자체 또는 전시를 가리킨다. 작품이 공간과 대응하거나 지지체 기술이 작품과 같이/함께 전시되고, 전시를 통해서 작품과 그 외 물건을 배열할 때, 공간과 소재・자재, 즉 전체와 부분, 즉 구성 요소의 관계는 재설정된다. 전시 공간에서 작품을 올리거나 담는 지지체 역할을 하는 장치들의 경우, 공간 디자인과 지지체로 볼 수 있다. <언리미티드 에디션>과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아르코미술관 2020)에 구조물을 제작한 길종상가, <당신은 몰랐던 이야기>(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18)에 플랫폼을 제작한 푸하하하 프렌즈, <미술을 위한 캐비닛>(아르코미술관 2014)의 소목장세미, 차슬아 <Ancient Soul++>(취미가 2018) 공간을 구성한 힐긋(선보성, 이창석), 조익정의 퍼포먼스 <Little Does She Know>(<퍼폼2016> 출품작)을 시공하여 그 과정을 퍼포먼스 <하던 놈이 해라>(2016)로 풀이하여 보여준 괄호가 있다. 이들이 작품을 보여주는 지지체로, 어떤 경우에 작품으로 참여한14) 한편, 미술 전시에서 작품을 전시 공간에 대응한 경우가 있다. 김동희의 <3 Volumes>(시청각 2017)는 기존의 공간적 제약을 수용함으로써 다른 공간을 작품으로 인풋하였고15), <포인트 카운터 포인트>(아트선재센터 2018)에서 공간을 참조하여 해석한 작품은 공간에서 독립적인 작품보다 기존 공간을 소재 삼아 양각한 것에 더 가깝다.

2-3 외-내부를 구획하여 경계면 만들기

외-내부의 구획은 전시 공간에 동선을 만드는 일에 해당된다. 임노식 <물수제비>(통의동 보안여관 2020)의 곡선이나 김희천의 <랠리>(커먼센터 2015)에서 <탱크>(아트선재센터 2019)까지 설정된 공간적 동선은 내부를 분할하거나 외부와 연결하여 관객의 시선을 신체적으로 동기화한다. 관객의 수행성이 강조되는 경향은 사용자 지향적인 방식으로 기획에 반영된다. 이때 사용자란 수동적 관객과 능동적인 작가 또는 큐레이터 중간에서 등장하는 또 다른 역할이다. <취미관>과 <PACK>, <더 스크랩>은 작품(또는 작품의 사본)을 보관하여 전시하는데 모두 투명한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작품을 소개한다. 이때 인터페이스는 작품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신, 박물관 소장품처럼 관객과의 거리를 두면서도, 상업적인 쇼케이스나 진열대로 나타나 거리감을 해소할 수 있는 권리를 동시에 보장한다.
이때 관객은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수동적이지만, 보고 선별하여 구매할 수 있는 점에서 능동적이다. 한편 <IN_D_EX: 인덱스>(서울시립미술관 2018)는 능동적으로 주제를 설정하는 큐레이터 대신 한 유저의 시선으로 전시를 만든다. 가구와 디자인, 미술작품의 구별뿐만 아니라 구조물, 벽면, 분위기까지 등가적으로 ‘조합 가능태’가 된 공간16)에서 커스텀 가능한 유저를 큐레이터의 시점에서 그려낸다. 유저의 시점은 작가의 경우 또한 작용한다. <폴리곤 플래시 OBT>(인사미술공간 2018)는 이미지 시뮬레이터인 선셋밸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세 작가(김동희, 권영찬, 문이삭)가 이미지 데이터를 만드는데, 이들의 결과물은 현실 공간에서 만들어진다기보다 가상에서 임포트된 결과17)로 등장한다.
시공은 만들기와 구성하기의 관계에서 출발하면서 작품과 전시, 나아가 관객과 전시를 만드는 관계자, 관계를 뒷받침하는 조건에 대한 논의이자 그 관계에서 재설정되는 소재・자재에 대한 논의이다. 무엇을 담는지에 따라 소재・자재가 재설정되는 것처럼 무엇이 소재・자재를 담는지에 따라 작품이나 전시 공간은 계속적으로 재설정된다. 작품 자체가 이미 외부―기획전, 사회적 배경이나 관심 주제, 그리고 미술사와 내부―무언가를 보여주는 캔버스 평면이나 질감이 느껴지는 재료, 그리고 이 둘을 또는 둘 이상을 복합적으로 아우르는 만큼 전시 공간과 전시, 작품과 전시, 전시 공간과 작품의 경계를 정확하게 나누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 보인다.18) 명확한 구분 대신 우리는 구획된 경계면을 타고 이동하는 소재・자재를 통해서 작품과 전시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 2월호 해당 지면의 각주를 다음으로 정정합니다 *

1) 실제로 이 작품은 20분에 한 번 커튼이 열리고 닫혔다.
2) 작가의 생년월일, 키, 몸무게, 발, 심박수, 호흡수, 체온의 측정값을 획의 길이로 다시 규격화한 작품으로, 본인은 ‘가동 획 회화(Movable Stroke Painting)’라 부른다.
3) “강동주의 드로잉은 매번 조금씩 다른 규칙들에 의해 지배되는데, 이를 관통하는 대원칙은 눈의 자동화된 작용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윤원화, 『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워크룸, 2016), p.152.
4) 이 전시는 “‘원본 이미지에 내포된 조건도 함께 번역’한다는 점과 그 번역이 회화 고유의 요소들, 즉 물감의 물성, 색채의 점진적인 진행, 그리고 스트로크의 질감 등이 선명하게 감지되는 방식을 취했다는 점이 주목을 끈다.”(강조는 필자에 의함) 유지원, 「2017년 회화 이야기」, 『계간 시청각』(2017년 1호), p.70.
5) 2020년 팬데믹 시대에 선보인 <정금형의 배달 서비스>가 관객에게 미리 전달하는 수령 시나리오 또한 그렇다. https://products.minguhongmfg.com/delivery-service/
6) “조각의 본질적인 차원에 있어서 재료, 제작 과정, 수용자와의 관계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고, 뉴미디어에 의해 재-창안된 환경 안에서 가능한 조각의 형식을 탐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각에 대한 앞선 질문에 있어 그들의 태도는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3차원으로 존재하는 조각적 덩어리는 과연 무엇을 의미하고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어떠한 양태를 띠고 있는 것일까?” (조각스카웃 서문 중) 이와 비슷한 관심사는 2017년에 열린 두산큐레이터 워크샵 기획전 <사물들 조각적 시도>(문이삭, 조재영, 최고은, 황수연)나 2019년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열린 <We Don’t Really Die> 또한 비슷한 관심사로 부각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두 기획전은 기존 조각 형식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된 점을 알 수 있다.
7) “임창곤은 그림의 지지체가 되는 여러 조각의 패널로 이루어진 프레임을 ‘덫’이라고 이름 붙였다.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자들을 위한 프레임을 구축하고자 했던 시도는 지금과 같이 그것을 ‘덫’으로 가시화하여 그가 그리는 남성의 몸을 직접 가두는 방식에 다다랐다.” 임창곤 <불거지는 풍경>에 쓴 김명지 글에서 인용.
8) 최영인의 경우 오브제와 스토리를 각각 ‘물건들’과 ‘글귀’로 보고 작업한다.
9) 해상도는 한편 ‘정보량 많음’과 관련이 있다. 종종 인터넷상에서 기묘한 사진 장면처럼 한 공간에 다른 차원에 속하는 정보가 뒤섞여 (배열 아닌) 배치되어 있을 때 정보량 많음은 발생한다. 단번에 읽어내기 어려운 특징은 김희천의 <썰매>(2016)에 해당되는 한편, 압축과 팽창의 <허니 앤 팁>과 <유령팔> 출품작은 어떤 값을 설정하고 많은 정보량을 필터링한다.
10) 앞서 언급한 <We Don’t Really Die>, <사물들 조각적 시도> 외에도 미술작품의 매체를 둘러싼 질문은 많은 기획전에서 주요 관심사로 다루어졌다. <뉴 스킨: 본 뜨고 연결하기>(2015), <평면 탐구: 유닛, 레이어, 노스탤지어>(일민미술관 2015), <무빙/이미지>(문래예술공장, 아르코미술관 2016), <룰즈>(원앤제이갤러리 20167), <플랫랜드>(금호미술관 2018), <장르 알레고리-조각적>(토탈미술관 2018), <Lobby Muddy Carpet>(2/W 2018), <그림과 조각>(시청각 2018), <올오버>(하이트컬렉션 2018), <젊은모색2019: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 2019), <당신의 삶은 추상적이다>(아트스페이스3 2019), <불온한 데이터>(국립현대미술관 2019), <리브 포에버>(하이트컬렉션 2019), <가볍고 투명한>(원앤제이갤러리 2020), <정보의 하늘에 가상의 그림자가 비추다>(아트스페이스3 2020), <팁과 요령: 오늘 당신의 눈은 어떤 세계를 보게 될까요?>(김세중미술관 2020), <10 Pictures>(WESS 2020), <수행하는 회>(This is not a church 2021), <Against>(김세중미술관 2021)
11)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컴퓨터 사용의 맥락에서 투명함(transparency)을 1. 작동하는 구조가 명확히 파악 가능하고 2. 잘 다룰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전자는 기술자 중심적, 후자는 사용자 즉 시뮬레이션 유저 중심적인 측면이 크다. シェリー・タークル, 日暮雅通, 『接続された心―インターネット時代のアイデンティティ』(早川書房, 1998), pp.54~55.
12) 그러나 경계면의 유지는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공회전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문제의식을 언급한 글로 김뺘뺘의 「[YPC x CREAM] 유령회사와 예술적으로 허용된 거짓말」(2020년 12월)이 있다. “가설된 네트워크가 반가상성 혹은 반투명성을 지지해주지 못할 때, 유령회사는 ‘본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는 매우 선명한 압박을 경험한다. (···) 이에 따라 모든 ‘진실’을 밝히고 유령 회사를 현실 자아에 편입하거나 합법적인 몸체를 얻는 선택을 해야 하는 때가 있는 것이다.” http://yellowpenclub.com/kbb/cream-2/#_ftn2
13) 시공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전시를 ‘시공’으로 생각하니까 장소가 바뀌면 아예 다른 그림을 구상하고 만들게 돼요” 『VOSTOK』, 2018년 9호.
14) 예컨대 <오 친구들이여, 친구는 없구나>(2017)의 경우 길종상가 대신 박길종과 김윤하 이름으로 참여하였다.
15) <3 Volumes>는 “디지털의 영역에서 비롯한 사용자의 관점을 통해 물리적인 공간을 재해석하는 과정을 동반하며, 이를 토대로 각자가 천착해온 매체 혹은 조형의 문법과 (장소성과 무관한) 공간의 구조 간에 접점을 형성하고 이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편집해낸다.” 권시우, 「공간 인터페이스, ‘압축과 팽창’과 김동희의 사례」, 『계간 시청각』(2017년 1호), p.83.
16) “작품, 구조물, 벽면, 가구, 디자인, 분위기 등 전시의 모든 요소에 모두 동일한 무게를 갖게 하여 목록화함으로써, ‘전시’를 하나의 ‘조합 가능태’로 제안하며 관객의 능동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한다.” 전시 서문에서 인용.
17) 작가별로 다음과 같이 작업하였다. “문이삭은 데이터 영역에 랜덤하게 생성된 이미지를 휴먼 스케일이 아닌 인사미술공간의 축척에 대입해 일종의 구조체이자 벽의 역할로 공간에 출력한다. 권영찬은 참여 작가와 디자이너의 경계에서 건물 외벽의 현수막, 입구의 유리문, 전시장의 벽과 바닥,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품 표면을 작업의 영역으로 삼아 전시를 구성하는 텍스트를 분산 배치한다. 김동희는 실재 공간에 수평으로 층위를 쌓던 기존의 방식을 선회해 또 하나의 공간을 스크린 안에 구현하고, 공간을 유영하는 궤적을 영상으로 풀어낸다. 개별 작업은 인사미술공간이라는 실재 환경에서 일종의 표피처럼 서로의 영역에 최소한의 지지체로 달라붙는다.” polygonflash.net에서 인용.
18) 조은채, 「전시/작품/공간: 불연속면 연결하기」, 『계간 시청각』(2018년 2호), p.75.

COVER
조효리 <Paints Pillar> 스테인리스에 유채 30×60cm 2020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2024.11.01~)
[만료]고흥군청(2024.11.01~2025.01.08)
[만료]한솔제지(2024.11.13~2025.01.08)
아트프라이스(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