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햇살을 뺏지 마오
2021 / 03 / 07
올리버 암스, 제이슨함에서 2년 만의 개인전 오픈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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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ture> 캔버스에 유채 2019-2020 121.9×91.4cm
캔버스에 두텁게 올라간 물감. 그 색채는 상당히 다채롭다. 군데군데 물감끼리 뒤섞인 부분도 눈에 띈다. 물에 녹아들지 못하고 떠오르는 형형색색의 기름띠가 연상된다. 화면의 질감은 거칠다. 빠르고 강한 붓질로 쓸어내린 자국과 단단한 도구로 긁어내고 갈아버린 흔적이 화면 가득 빼곡하다. 특별히 떠오르는 이미지나 기호는 없다. 다만 작품마다 다른 메인 컬러와 톤이 자아내는 심상을 감각할 뿐이다. 미국 화가 올리버 암스(Oliver Arms)는 이처럼 자신의 회화를 ‘구축’하고 ‘해체’한다. 마치 조각하듯 말이다.
그가 제이슨함에서 개인전 <Don’t Take My Sunshine Away>(2. 25~4. 13)를 열었다. 이곳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개인전이다. 첫 전시 <Inaugural Exhibition>(2018)은 제이슨함의 개관전이었다. 당시에도 대담한 색채와 질감의 회화작품 11점을 발표했다. 암스는 캔버스에 물감을 칠하고 말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단계에만 며칠, 몇 달,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렇게 물감의 ‘지층’이 차곡차곡 쌓여 나간다. 그는 이내 이 공든 탑을 무너뜨린다. 정확히는 산업용 벨트 샌더(belt sander), 쉽게 말해 자동 사포질 기계로 물감 층을 갈아낸다. 물감이섞인 흔적, 거친 질감은 이때 완성된다. 젊은 시절의 작가는 학비를 마련하려 건설 현장에서 일한 적 있는데, 당시 오래된 주택 외벽에 켜켜이 쌓인 페인트를 벗겨냈던 경험을 작업 기법으로 변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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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Take My Sunshine Away> 전경 2021 제이슨함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총 5점. 마찬가지로 긴 시간과 고된 노동이 집약되어 있다. 암스가 충격과 공포의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전후해 마무리한 작품이다. <Optimism’s Flame>(2020~21), <How Much Language Does Silence Need?>(2017~21), <El Ayer Se Fue (지나간 어제)>(2019) 등 작품명에는 작가의 경험과 감정, 사색의 시간이 녹아 있다. 기존 작업엔 각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심상을 따와서 이름 지었다고. 총 네 개의 전시실 중 세 개에는 가로세로 2m 길이의 달하는 대형 작품 1점씩, 나머지 전시실에는 2점을 마주 보게 걸었다. 각 작품 앞에는 낡고 투박한 나무 벤치를 놓았다.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공수했다. 그가 작업하며 흠뻑 빠졌을 사색의 공간, 그 분위기를 관객에게 오롯이 전달하려는 목적이다. 또한 전시장의 모든 창을 가려 어두컴컴한 실내를 연출했다. 보다 몰입도 높은 관람을 위해서다.
암스의 회화는 일견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회화의 재료, 행위, 물성에 대한 질문을 표면 아래 묻어 두지만은 않는다. 애초에 그의 창작 동기가 회화의 본질 탐구에서 비롯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에 반응하고, 내면에 침잠했던 감정이 가장 중요한 화두다. 물감을 쌓고 갈아냈던 지난한 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갔던 여러 상념을 덧입혀 강렬한 색감과 거친 질감으로 응결한다. 아마 이번 전시명은 온 세상이 혼란스러웠던 가운데, 홀로 작업실에 머물며 찾아낸 한 줄기 ‘햇살’ 같은 희망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가 아닐까? 그래서 그의 회화는 혼란스럽지만 아름다운, 진중하면서도 가벼운, 따스하면서도 차가운, 그래서 언제나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이 세상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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