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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틀포레스트

2021/05/12

사진작가 엄효용, 나무와 하늘로 삶을 말하다 / 최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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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로은행나무여름>코튼페이퍼에피그먼트프린트120×90cm2014

너 나 할 것 없이 네모반듯한 건물, 쭉쭉 뻗은 도로, 성냥갑 같은 아파트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도시민에게 가로수와 하늘은 달력이자 시계다. 그것이 없다면 지금이 봄인지 가을인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고 주구장창 일만 할 거다. 
사시사철, 가는 곳마다 나무 사진을 수백 장씩 찍는 작가가 있다. 푸르른 봄에는 잠실 한강공원 이팝나무, 끈적끈적 여름에는 대관령 경강로 자작나무, 울긋불긋 가을에는 봉강가술로 메타세쿼이어, 제주의 겨울에는 하계학림로 귤나무까지. 엄효용이 포착한 나무는 사진보다 수채화에 가깝다. 개별 나무의 물성은 버리고 특정 학명으로 불리는 보편적 이미지를 뭉개진 초점으로 재현했다. 그는 적게는 100장부터 많게는 300장 이상의 가로수 사진을 중첩해 하나의 작업을 완성한다. “사람들은 ‘예스’ 아니면 ‘노’ 이분법으로 세상을 가른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수많은 단면이 존재한다. 겉과 속, 앞과 뒤, 비움과 채움 등 반대항이 실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작업의 무수한 반복은 서로 대립하고, 개별적인 존재 사이에 숨은 조화를 담으려는 노력이다.”
대로변을 달리며 만난 찰나의 자연을 엮은 사진작가 엄효용. 그가 개인전 <진실의 실체가 나타날 때>(4. 1~21 갤러리나우)를 열었다. 우연히 눈에 들어온 나무와 하늘을 찍은 사진 38점을 출품했다. 거대한 막대 사탕을 닮은 <소월로 은행나무 여름>(2014), 양떼구름이 피어난 <여의천 벚나무 봄>(2020), <리야드 대추야자 겨울>(2020) 등 10여 종의 나무가 엄효용의 필름에 담겼다. 그의 2019년 개인전 제목 <리틀 포레스트>(희수갤러리)처럼 한 장 한 장의 사진이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숲은 전시장에서 자신이 겪은 사계절을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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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6,2021>코튼페이퍼에피그먼트프린트 30×45cm2021

이번 전시에는 2006년부터 시작한, 연월일을 제목 삼은 하늘 연작 18점도 출품됐다. 하늘을 매일 기록한 이 작품은 실제 일상보다 꿈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한다. 분홍 코끼리가 떠다니고 유니콘쯤은 쉽게 찾을 수 있을 법한 몽환적인 풍광이다. 2017년의 하늘 365점으로 이뤄진 <2017-365sky>(2021), 윈도즈 XP 시절 바탕 화면을 닮은 <20060609>(2021), 만나본 적 없는 보랏빛 구름 <20150916>(2021)은 엄효용의 마음에 남은 신비한 기억의 집합이다. “우리 주변의 평범한 것을 신비롭게, 대단하게, 낯설게 보면 어떨까.” 작가의 방식으로 기록된 나무와 하늘은 작가 노트에서 귀띔하듯 그의 삶이요 시간의 파편이다.
“언제부터 나무에게 시선을 주었는지 가물가물하다. (…) 딸아이와 앵두나무 아래에서 캐온 어린나무,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싹튼 후박나무, 집 근처 나무 시장에서 인연 맺은 이런저런 나무, 그렇게 베란다가 나무 화분으로 가득할 무렵, 화분에 갇혀 있는 나무들이 애처롭게 다가왔다.” 예술가에게 이야깃거리 없는 작업이 없듯, 그에게도 사연 없는 나무가 없다.
꽃구경, 하늘 구경하러 멀리 나가기 어려움 요즘 ‘리틀 포레스트’를 선물한 작가에게 김재수 시인의 동시 「가로수」를 바친다. “어깨를 건드린다 아는 체하며 / 돌아보니 살며시 등을 기대는 가로수 / ‘쉬었다 가렴’ / 푸른 물소리로 말을 건넨다 / 그렇구나 / 숱하게 이 길을 오갈 때마다 / 나무는 내게 눈길을 주고 있었구나 / 등으로 전해지는 물소리 / 하늘엔 땡볕이 타고 있는데 / 기다리고 있었구나 나무는 / 푸른 그늘을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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