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조각과가구,경계의시학

2021/06/14

설치작가 구현모, 개인전 <리셈블(Resemble)> / 조재연 기자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41b014c6e996ef7ddc9b19f62fc06ba32a326f01-500x375.jpg

<리셈블(Resemble)>전시전경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탐색하는 구현모. PKM갤러리에서 그의 개인전 <리셈블(Resemble)>(4. 22~5. 22)이 열렸다. 닮음을 뜻하는 제목 ‘리셈블’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축으로 인공과 자연, 내부와 외부, 실재와 허구 등 상반되는 영역의 중간 지대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에는 설치, 조각, 드로잉, 마케트 등 총 44점이 출품됐다. 자연을 테마로 한 근작은 물론 가구와 예술의 경계를 다룬 신작 33점을 모두 만난다.
전시장 1층에는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Table>(2021) 시리즈와 <나무>(2021) 시리즈를 배치했다. 각각 테이블과 의자를 표방하는 두 작품은 전시장을 보태니컬 카페 같은 분위기로 바꿔놓는다. 지하층에는 신작 <꽃> 시리즈와 함께 작가의 다면적인 주제를 미니어처로 재현한 <Stage-earth> 시리즈가 펼쳐져 있다. 2014년부터 2021년에 이르는 긴 여정을 좌대 위에 총집합했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a909142662f3c42dd280ec4748ed436d98058392-500x376.jpg

<리셈블(Resemble)>전시전경

경계를 중심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고유한 관점은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에서 비롯했다. 구현모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천안에서 성장했다.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그에게 두꺼운 벽과 커다란 방으로 된 집은 늘 완고해 보였다. 그러나 작가의 기대는 이사 날 무참히 깨졌다. 굴착기 삽이 벽돌 표면에 닿자 집은 일순간에 주저앉았다. 돌은 모래와 같았고, 철근은 지푸라기와 다를 바 없었다. 잘아진 돌을 여전히 돌이라 부를 수 있는지, 구겨지고 휘어진 철은 과연 본래 개념에 부합하는지. 한때 안정과 보호의 징표였던 집이 폐허가 된 곳에서 아이는 자신의 편견을 고민했다. 이때의 경험이 고정된 개념을 의심하는 작품 세계의 기반이 됐다.
작가는 학부에서 도예과를 졸업하고, 이후 독일에서 조소를 전공했으니 조형미술 외길을 걸어온 셈. “조금 더 직접적인 물성과 공간을 다루고 싶었다. 회화는 평면에 입체를 그리지만 결국 평면에 그치고 만다. 하지만 조형은 실재하는 공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 설치 장르를 고수하는 그의 태도는 메시지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와 관련 있다. 독해를 요구하는 메시지보다 직접적이고 동물적인 방식으로 경험되는 ‘감각’을 전달하고 싶다고.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79c8ccb2b286afc7e6b5f9cc624b38cee874e47b-500x376.jpg

<리셈블(Resemble)>전시전경

이번 전시의 테마는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자연. 첫 개인전부터 이번 전시까지 쉼 없이 이어온 주제다. 인간의 활동이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인류 때문에 변화한 환경이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 작가는 이전과 같은 방법으로 인공과 자연을 분별할 수 없는 상황에 착목했다. <설악산 나무>(2021)는 나뭇가지 일부를 도금한 듯 보이지만 사실 전체가 황동이다. 나뭇가지를 주물로 뜬 뒤 태우고, 빈 곳에 황동을 부어 완성했다. 불에 탄 재가 황동 겉면에 달라붙어 나무와 비슷한 질감과 빛깔을 갖게 됐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5d5336ea1cc950b7356eb72ad9fff3d448f85a18-500x372.jpg

<숲>나무,황동,가변크기2021

<숲>(2021)은 실제 나뭇가지에 마디와 잎눈을 황동으로 만들어 붙였다. 두 작업은 제작 과정을 알고 보면 인공물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연물로 보인다. 나뭇가지의 모양과 남은 재는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연하게 결정됐다. “나는 연역법보다는 귀납법으로 작업을 추구한다. 정해진 설계를 따르기보다 그 상황에 맞는 변화를 추구한다. 작업이 끝나기 전까지 작가조차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알 수 없다.” 작가는 통제 불가능한, 즉 인공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해 예술과 자연의 겹침을 시도했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f4023ffd5cc7ddf73bfb89b51372741d34fbe3b3-500x666.jpg

<리셈블(Resemble)>전시전경

두 번째 테마는 가구다. 전시로는 이번에 처음 선보였지만 구현모는 25년째 가구를 만드는 가구 장인이다. 작업실에서 사용하는 책상, 수납함, 의자 등을 모두 손수 제작했다. 그는 가구로 쓸모와 쓸모없음의 경계에 접근한다. 사용 가치의 유무에 따라 예술과 비예술의 개념을 구분했다. <Table-달로부터> 시리즈는 작업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생긴 나무조각을 조립해 제작했다. 우연은 여기서도 개입한다. 퍼즐처럼 한 조각을 붙이면 그것에 맞는 다른 조각을 찾아야 했다.
작품은 커피나 책을 올릴 만큼 넓고, 미끄러지지 않을 정도로 평평하다. 이 쓸모는 작품을 상품으로 만든다. 그러나 관객 누구도 작품에 물건을 올려놓지 않는다. 테이블의 사용 가치가 전시라는 장 안에서 중지되고 비예술은 작품으로 전환된다. 작가는 <꽃>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처음으로 작업에 채색을 시도했다. 설치작업의 구조를 체험하는 경험은 물론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담고 싶었다. 꽃의 쓸모가 감상에 있듯 예술감상도 또 하나의 사용 가치임을 표현했다.
작가는 일회성과 반복성의 경계에도 주목했다. 가구를 테마로 작업하기 전까지 그에게 예술의 가치는 일회성에 있었다. 반복 없이 늘 새로운 작품을 시도했고, 작품이 훼손되는 일이 발생해도 수정하거나 보수하지 않았다. 연약한 구조를 예술성의 일부로 여겼다. 그러나 가구는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하므로 튼튼해야 했고,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수리가 필요했다. 이번 전시로 작가는 전시장 밖에서도 예술가의 책무가 끝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93010faa45f73c2c2acd311d2488305f7ec8589f-500x376.jpg

<리셈블(Resemble)>전시전경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 방식은 자연스럽게 혼종, 하이브리드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작가는 선을 긋는다. “혼종은 그냥 두 개의 성격을 섞는 결합에 불과하다. 내가 경계를 허문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경계를 넘나들 뿐. 오히려 경계에 서기 위해선 개념을 뚜렷이 알아야 했다. 작업을 하면 할수록 예술의 본질은 선명해진다.” ‘경계 서기’는 좀 더 예술다운 예술에 다가서기 위한 시도. 작가는 여집합을 꾸리듯 비예술의 외부를 인식하며 예술의 본질에 접근한다.
구현모는 최근 분재를 시작했다. 시험 끝난 고등학생처럼 전시를 오픈하면 새 아이디어가 더 잘 떠오른다고. 소유 불가능한 자연을 실내에 수용한다는 점 때문에 분재에 끌렸다. <나무> 시리즈를 제작하고 남은 줄기가 분재의 재료다. 잘린 밑동을 살리고자 영양제까지 투여했다. 더불어 분재가 뿌리내릴 화분까지 제작 중. 그는 그렇게 또 다른 경계로 향한다.

https://cdn.sanity.io/images/m65sjp4q/production/0997f41e7bf65d39b55780930efdd19df01e6c86-500x380.jpg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2024.11.01~)
[만료]고흥군청(2024.11.01~2025.01.08)
[만료]한솔제지(2024.11.13~2025.01.08)
아트프라이스(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