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에 날리는 어퍼컷!
체제 비판 예술가 스체파노비치, 한국 첫 개인전 / 조재연 기자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 블라디슬라브 스체파노비치(Vladislav Šćepanović). 세르비아 태생으로 베오그라드에서 활동해온 그가 한국 관객에게 강렬한 첫인사를 건넨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스체파노비치의 개인전 <한 화가의 증언>(5. 25~8. 29)에 대표작 21점이 공개됐다.
작가는 자신을 ‘파이터’로 칭한다. 실제로 아마추어 복서이자 유도 유단자인 그는 자본주의를 향해 예술의 펀치를 날린다. 특히 작가는 대중문화의 향락적 이미지와 사회 문제를 결합한 팝아트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고 있다.
스체파노비치는 냉전 시기 몬테네그로의 예술가 가문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 예술가였던 덕에 스체파노비치는 예술을 삶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일찍이 받아들였다. 그가 학부생 때 벌어진 유고슬라비아전쟁은 각성의 계기가 됐다. 정치적 탐욕이 불러온 동족상잔, 제노사이드, 민간인 테러를 보면서 그는 회화로 참상을 증언하리라 다짐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92년 몬테네그로는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한다. 전화와 체제 전환이 가속화한 빈부격차는 곧 작가의 피부에 와닿았다. 이때부터 그는 전쟁과 가난 배후에 도사리는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작업의 주제로 삼았다.
작가의 사회 비판적 주제는 때때로 논란에 직면하기도 했다. 2003년 세르비아 포비든갤러리에서 예정됐던 개인전 <Passion 2>는 당국의 검열로 취소 당했다. 자국의 인종 청소 범죄와 이슬람교도에게 가해진 폭력을 이라크전쟁에 빗댄 작품이 문제였다. 갑작스러운 조치였지만 작가는 좌절하지 않고 폐쇄된 미술관 앞에서 도록을 배포했다. 이 소식을 들은 폴란드 출신의 유명 큐레이터 안다 로텐버그는 자신이 기획한 <제45회 옥토버아트살롱>(베오그라드 컨티넨탈브렉퍼스트갤러리 2014)에 스체파노비치를 초대해 전시 재개를 도왔다.
이번 개인전 <한 화가의 증언>은 작품의 주제에 따라 총 세 개 시퀀스로 기획됐다. 첫 번째, 시뮬라시옹. 여기서 스체파노비치는 디지털화한 자본주의 지배 구조를 재현한다. <아담과 이브>(2020)에는 QR 코드 이미지를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돌린 아담과 이브를 담았다. 정보 기술 발전이 역설적으로 소통을 단절시키고,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한 상황을 꼬집었다. 재밌게도, 유화로 그린 QR 코드에 핸드폰을 가져다 대면 실제 접속이 가능하다. <너 자신을 방송하라>(2016)는 선택적으로 수용되는 정보의 흐름을 비판한다. 미국인 기자를 처형하는 IS,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주검,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미국의 중산층 가족, 총 세 개의 이미지를 결합했다. 당시 미국은 강제 수용소 운영과 CIA 고문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었지만, 미국 정부에 의해 자행된 폭력은 은폐됐다.
두 번째, 권력. 작가는 편견을 야기하는 스테레오 타입에 의문을 던진다. <이름 없는 이>(2020)는 국적과 인종을 알 수 없는 소년병 그림이다. 전통적으로 순수함을 상징하는 어린이를 전쟁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표현해 아동 착취 문제를 지적했다. <선택은 당신의 몫>(2020)은 소련과 나치의 심벌 위에 ‘Money-Mouse Face’ 이모티콘을 겹쳤다. 제국주의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보이지 않는 자본의 침략이 시작된 현실에 주목했다. <왕좌의 게임>(2020)은 올해 예정된 도쿄 올림픽을 테마로 삼는다. 도널드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사이에 고대 그리스 조각상 <원반을 던지는 사람>을 삽입했다. 국가 간 파워 게임으로 변질된 올림픽의 상황을 드러냈다. 한편 <줄리언 어산지>(2020)는 지도층의 부패를 폭로해 2010~11년 아랍권 민주화 운동에 일조했던 줄리언 어산지의 초상이다. 작가는 어산지를 비롯해 자유와 진실을 위해 헌신하는 모든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고.
세 번째, 자본. 마지막 시퀀스에서 작가는 미디어가 미화하는 자본의 뒷모습을 파헤친다. <엄마와 아빠>(2018)에는 어린이가 모델로 등장하는 담배 광고를 재현했다. 모티프가 된 광고는 1950년대에 유통된 체스터필드 담배 홍보 포스터.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에 담배 선물을 잊지 않고 준비하겠다는 아역 배우의 대사를 그대로 옮겼다. 가족애마저 상업적 유인으로 전락시킨 자본주의의 교활함을 풍자한다. <뉴욕시티 2>(2018)에는 뉴욕 거리의 쓰레기 더미를 지나는 성모를 그렸다.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가 위험한 찻길을 걸어가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속적인 문물 사이에 소외된 성모의 모습으로 대도시에 만연한 비인간성을 강조했다.
검열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논쟁적인 작업을 지속하는 스체파노비치. 작가의 그림에는 사회 모순을 지치지 않고 응시하는 집요함이 깃들어 있다. 이는 그가 말하는 ‘진정한 예술가’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는 말한다. “예술은 화폐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세계의 정신적 저항으로 존재한다. 나는 예술가의 손으로 빚은 작품이야말로 세상을 향한 시각적 항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