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미니멀리즘 조각의 거장
조엘 샤피로의 한국 세 번째 개인전, 페이스갤러리 서울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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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샤피로>전 전경 2017 페이스갤러리 런던
미니멀리즘 조각의 후예 조엘 샤피로. 그의 작품은 흔히 ‘포스트-미니멀리즘’으로 분류되곤 한다. 본연의 색과 질감을 드러내는 청동과 나무로 생동감 넘치게 운동하는 인체 ‘형상’의 조각을 제작해왔기 때문. 최근에 올수록 다채로운 원색의 아크릴 물감으로 표면을 채색한 작품도 상당수 발표하고 있다. 그가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개인전 <조엘 샤피로>를 열고, 신작 9점을 포함해 총 14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최근 확장 이전한 페이스갤러리의 두 개 층을 모두 활용했다. 작가가 내한하지는 못했지만, 조각가답게 자신의 스튜디오에 미니어처 전시장을 만들어 작품을 배치하며 전시를 완성했다.
조엘 샤피로는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 또한 뉴요커, 둘 다 재능 있는 의학자였다. 특히 그의 모친은 창의력까지 넘치는 만능인이었는데, 조각이 취미였다. 샤피로도 유년 시절부터 예술가를 꿈꿨다. 독일 난민 출신의 표현주의자에게 미술수업을 받았고, 미술관도 자주 들락거렸다. 다만 그의 부친은 예술가의 꿈을 만류했다. 그가 의사가 되어 가업을 잇길 원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환자 중 예술가들이 얼마나 생활고에 시달리는지 이야기해주시곤 했다. 그러면서도 시인이자 변호사였던 월리스 스티븐스처럼, 다른 직업이 있었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셨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의 재능을 의심한 게 아니라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신 거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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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샤피로>전 전경 2021 페이스갤러리 서울
1965년은 샤피로의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던 해다. 그의 기억에 따르면, 샤피로는 부모님의 권유로 뉴욕대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나름의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 해 말엽, 봉사 단체 ‘평화봉사단(Peace Corp)’에 참가해 인도에서 체류하면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67년까지 약 2년간 인도 곳곳의 사원, 박물관, 유적지를 여행하며 인도 전통예술에 매료됐던 것. “인도의 종교, 문화, 제도는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특히 건축물을 비롯한 예술과 너무나 잘 어우러졌다.” 그 후 샤피로는 뉴욕으로 돌아와 스튜디오를 임대했고, 뉴욕대 예술대학에 재입학한다.
1960년대 뉴욕 미술계는 새로움의 용광로와 같았다. 명실상부 ‘미국 미술’인 추상표현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었고, 앤디 워홀을 필두로 한 팝아트도 엄청난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미니멀리즘 조각도 대세였다. 구체적 형상이나 장식적 효과를 배제하고, 재료의 물성을 강조하는 기하학적 형상의 조각이었다. 로버트 모리스, 칼 안드레, 도널드 저드, 솔 르윗 등이 대표 작가다. 이들은 작품에 어떤 ‘의미’를 기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작품이 놓인 ‘장소’와 ‘관객’의 역할이 부각되었는데, 이는 로버트 스미스슨과 같은 대지미술로 이어졌다. 소위 탈미니멀리즘의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조엘 샤피로의 작품 세계는 이 시기와 맞물려 그 문을 열어젖힌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자신의 예술관을 밝혔다. “나의 작품 세계는 미니멀리즘과 대화를 나누며 시작됐다. 현재를 만들어가는 예술가와 과거와 역사를 만들어온 예술가 간의 대화는 예술을 진화시킨다. 다만 예술의 진화는 매우 느리게 진행될 뿐. 때때로 엄청난 도약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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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샤피로>전 전경 2017 페이스갤러리 런던
미술사에 조각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새긴 샤피로지만, 활동 초기에는 평면작업이 중심이었다. 흠집을 낸 종이에 물감을 부은 다음, 통째로 기울여 물감을 흘려보내는 드리핑 기법을 실험하거나, 나일론 섬유 같은 산업 소재를 재료로 끌어들였다. 작가는 최근에도 평면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평면은 3차원 공간에서 실제 조각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구조를 표현”한다. 1970년대 샤피로의 초기 조각은 거푸집에 청동 등 금속 재료를 부어 만든 소품 위주였다. 의자, 집, 말 등 구체적 형상을 갖고 있는데, 이는 외로움, 비어 있음, 죽음 등에 대한 메타포였다. 이후 주물은 샤피로 조각의 시그니처 패턴을 남기는 주요 제작 방식이 된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활기찬 동작의 인체 형상을 떠올리는 조각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각목처럼 기다란 직육면체가 이어지며 인체 형상을 이루는 구조다. 청동 작품의 경우, 그 표면에 거푸집으로 사용했던 나무틀의 결과 무늬가 그대로 남는다. 이번 페이스갤러리 서울 개인전의 3층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3점의 작품이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작품명은 모두 <무제>, 1995년작 1점, 2006~08년 사이에 제작한 작품 2점이다. 사람과 비슷하거나 두 배 이상 큰 스케일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작품은 팔다리의 길이가 서로 다르다. 근작일수록 팔다리가 더욱 길어지고, 무게 중심이 위태로워 보이는 만큼 동작은 더 역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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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청동에 채색 166.4×80×182.2cm 2019
샤피로는 현재 단 한 명의 어시스턴트를 두고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파트타임으로 고용했다. 노령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작업을 혼자 하되, 형태나 무게 중심을 잡는 등 꼭 필요할 때만 타인의 개입을 허용하는 것이다. 미니멀리즘 조각에 레디메이드가 쓰이고, 팝아트가 공장형 대량 생산을 표방했던 것과 정반대다. 오히려 모더니즘 예술의 작가주의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해왔음을 알 수 있다.
3층 테라스 전시장에는 코발트블루로 채색된 청동 조각이 대로변을 바라보며 박진감 넘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2층 전시장도 표면을 채색한 작품 위주로 꾸며졌다. 선명한 오렌지색, 진한 핑크색 등은 작품의 운동감에 저마다 다른 감정을 부여한다. 오렌지처럼 신나고, 핑크처럼 열정적이라고 말해야 할까. “감정을 끌어내는 색에 흥미를 느낀다. 청동, 철, 나무 등 재료 본연의 색을 숨겨버리는 일도 재밌다.” 샤피로는 자신의 작업이 “생명을 표현한 추상”이라고 주장해왔지만, 관객에겐 자유로운 감상과 해석을 허용한다. 작품의 다채로운 색은 문화권마다 그 의미와 상징을 달리하고, 개인의 경험과 직관이 더해져 해석의 폭은 더욱 넓어진다. 그러니까 2021년 8월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을 본 서울의 뭇 관객이 샤피로의 작품을 보고 높이뛰기 선수가 힘차게 뛰어오르는 순간을 떠올리는 감상도 나름 의미가 있다. 샤피로는 올가을 뉴욕 파울라쿠퍼갤러리, 스페인 메노르카 섬의 갤러리아카욘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과연 그가 평생을 보낸 도시에서는, 그리고 지중해의 따뜻한 휴양지에서는 그의 조각이 어떤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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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샤피로(Joel Shapiro) / 1941년 뉴욕 출생. 뉴욕대학교 조각 전공 및 동대학원 석사 졸업. 뉴욕 크레이그F.스타갤러리(2019), 매디슨현대미술관(2018), 파울라쿠퍼갤러리(2018), 스위스 빈터투어미술관(2017) 등에서 개인전 개최. <There’s There There>(하우저앤워스 사우샘프턴 2021), <Lévy Gorvy × Pitkin Projects>(레비고비 아스펜 2021), <Field of Dreams>(패리쉬미술관 2020) 등 단체전 참여. 휘트니미술관, 뉴욕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에서 작품 소장. 워싱턴D.C. 홀로코스트추모박물관, 광저우 미국영사관 등에 작품 영구 설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