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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더카머’,21세기생태의증언

2021/10/06

바라캇컨템포러리, 미국 작가 마크 디온 국내 첫 개인전 / 김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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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디온개인전<한국의해양생물과다른기이한이야기들>전경2021바라캇컨템포러리

형형색색의 진귀한 사물로 가득 찬 캐비닛이 방 한가운데 우뚝 서 있다. 검푸른 바닷속을 연상시키는 벽지에는 해파리, 오징어, 향유고래, 새우, 청새치 등 다양한 해양 생물이 그려져 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손바닥만 한 생선을 유심히 뜯어보는 보조 연구원이 있다. 이 ‘수수께끼의 방’을 서성이는 하얀 가운의 남성. 바로 미국 출신의 작가 마크 디온이다. 생태학자, 고고학자, 컬렉터의 콘셉트를 표방하는 마크 디온이 국내에서 첫 개인전 <한국의 해양 생물과 다른 기이한 이야기들>(9. 8~11. 7 바라캇컨펨포러리)을 열었다. 이번 전시에는 30여 년간 박물관 역사, 해양 생태, 환경 문제를 다뤄온 그의 작품 세계가 집약돼 있다. 한국을 직접 답사하며 제작한 드로잉, 조각, 몰입형 디오라마 등 총 24점의 작품이 출품됐다. 자연사박물관의 전시실을 거닐듯, 그의 작업을 하나하나 뜯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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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atrumMundi(CosmologicalCabinet)>목재캐비닛,유리진열대106.7×106.7×25.4cm2018

관람 키워드는 4개다. 하나, 박물 전시의 문법. 마크 디온은 ‘박물관의 역사’에서 기인해 1990년대부터 줄곧 캐비닛 시리즈를 제작해왔다. 그는 캐비닛을 ‘박제된 지식’의 아이콘으로 삼아 동시대의 ‘생태’를 다룬다. 즉, 무언가를 반드시 ‘봐야만 하는’ 전시의 본질을 끌어와, 숨기거나 모른 척하는 지천의 환경 오염 문제를 우리 눈앞에 두고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야말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21세기의 생태 이슈로 가득한 새로운 ‘분더카머’다. <해양 폐기물 캐비닛>(2021)은 디온이 해양환경공단, 동아시아 바다공동체,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협력해 남해, 서해에서 수집한 해양 쓰레기로 구성된 설치작업이다. 병뚜껑, 세제 용기, 깨진 유리, 부표 덩어리, 찢긴 어망 등을 과학실에서 볼 법한 캐비닛에 차곡차곡 진열했다. 한쪽은 서해, 다른 한쪽은 동해에서 수집한 폐기물이지만 육안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전시를 결정하고선 가장 먼저 지도를 펼쳤다. 세 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만큼 ‘오션 헬스(ocean health)’가 주요한 이슈일 거라 확신했다. 다만 나는 한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바다 문화권 국가들에 만연한 전 세계적인 오염을 다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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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해양생물>혼합재료250×800×240cm2021

둘, 드로잉. 작가는 드로잉을 모든 작업의 기초로 삼는다고. 특히 이번 개인전에는 코로나19로 단절된 14개월 동안, 그간 상상으로만 남겨뒀던 큰 규모의 드로잉을 완성했다. <평삼치>(2021), <생물학 교실 개구리의 미덕과 리서치 유토피아>(2021), <해양 생태 피라미드>(2021), <어류학의 기본 덕목>(2021) 등으로 층고가 높은 벽면을 가득 채웠다. 과학실의 생물 차트를 닮은 이 작품에는 마크 디온의 ‘블랙 유머’가 녹아 있다. 가령 향유고래의 해부도에 ‘서식지 파괴’, ‘전쟁’, ‘남획’, ‘산호 백화’ 등 해양 생물의 멸종 원인을 연결하거나 오징어의 부위별 명칭 대신 ‘풍경화’ ‘개념미술’ ‘대지미술’ 등 생태와 연관된 미술사조의 이름을 기입했다. 자명한 진리 같은 과학의 ‘도식적 분류 체계’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불완전의 팩트임을 암시한다. “우리가 믿는 것은 무엇이며, 과연 그것은 진실인가?” 또한 드로잉에선 악동 같은 마크 디온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알쏭달쏭한 알레고리를 ‘진지하게’ 해석하는 관객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문명인’의 관성적인 학구열에 시니컬한 조소를 날리는 것이다. 
셋, 연극적 디오라마. <한국의 해양생물>(2021)은 20세기 초 해양 선박 연구실을 재현한 몰입형 디오라마 작품이다. 마크 디온은 학자와 예술가가 영감을 주고받으며 학문적 성과를 내기 위해 협업했던 과거의 지식인 문화에서 착안해, 그 치열한 현장을 연극 무대처럼 꾸몄다. 이를 위해 작가는 ‘정보통’이자 ‘파트너’로서 일러스트레이터 3~4명을 섭외했고, 이들에게 매일 전시장에 나와 수산 시장에서 아침마다 공수되는 해산물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말 그대로 한 달간 상연되는 ‘연극 무대’를 설치한 것이다. 작가는 이 작업으로 심해를 누비는 고래와 거북이만이 아니라 저녁 식사에 등장하는 ‘반찬’ 역시 생태계의 일원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이처럼 해양 생태는 우리와 직결된 문제이며, 오염은 코앞에 닥쳐 있는 것이다. 그에게 연극적 디오라마는 불이 꺼지지 않는 생생한 ‘교육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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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론토사우루스>에폭시수지,타르,목재혼합재료 180.3×190.5×63.5cm2016

넷, 조각. 방한한 마크 디온은 전시 투어 내내 ‘조각’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내 작업에서 ‘물질의 조우’는 대단히 중요하다. 드로잉마저 ‘사물(thing)’로 느껴지도록 꾀하니깐. 조각은 내게 매우 각별한 매체다.” <브론토사우루스>는 작가의 대표적 조각작품. 석유 회사들이 공룡 캐릭터로 ‘환경 친화적’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데서 착안했다. 인간이 상업적으로 자연을 편집하고 취사선택하는 데 대한 비판 의식이 투영됐다. 또한 좌대 하단에는 작은 문을 뚫어 갤러리에서 사용되는 청소 도구를 집어넣었다. 고고한 예술감상을 위해 은폐되곤 하는 노동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고. 특히 마크 디온은 <테아트룸 문디(우주론적 캐비닛)>(2018)을 ‘자화상’이라 칭했다. 이 작품은 일견 일상 사물을 모아둔 삼단 진열장처럼 보인다. 3층에는 촛불, 화살, 모래시계, 메트로놈, 2층에는 그간 작업의 과정에서 수집한 조개껍데기, 폐품, 열매, 그릇, 1층에는 다양한 책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3층은 고전 정물화에 등장하는 메멘토 모리의 표상들이다. 2층은 내가 예술로 탈바꿈하는 물질들이며, 1층은 나의 삶을 추동하는 궁극적인 수집욕과 분류욕의 상징들이다.” 시간, 예술, 욕망으로 채워진 마크 디온의 자화상. 이것을 그가 ‘조각’으로 부른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사물을 ‘집적’하는 방식에선 프랑스의 누보 레알리스트가 떠오르지만, 마치 그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내던지는 운동가보다도 유한한 시간을 잘근잘근 곱씹는 철학자 같아 보였다. / 김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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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디온/1961년미국매사추세츠주뉴베드퍼드태생.하트포트예술대학교,뉴욕스쿨오브비주얼아츠에서수학.보스턴ICA,뉴욕드로잉센터,메트로폴리탄미술관,MoMA,휘트니미국미술관,뉴뮤지엄,런던화이트채플갤러리,테이트갤러리,베를린마틴그로피우스바우등에서다수의개인전개최단체전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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