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돌고 도는 인생
이길이구갤러리, 화가 이문주의 신작 <댄스> 시리즈 공개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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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캔버스에 아크릴릭 80.3×116.5cm 2019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요즘은 10년도 길다. 5년이면 도시의 풍경과 스카이라인이 모조리 변한다. 그런데 그 스펙터클한 변화의 결과는 비슷비슷해 보인다. 어디를 가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마천루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드넓은 아스팔트 도로만이 뻗어있다. 반면, 도시 도처에는 뻥 뚫린 공백도 존재한다. 건물을 부수는 중인지, 새로 지어 올리는 건지 알 수 없는 폐허들 말이다. 물론 그곳엔 사람도 있다. 건설 현장의 노동자, 무심히 길을 지나는 행인, 삼삼오오 모여 뭔가를 함께하는 무리들…. 지극히 일상적이면서도, 문득 상상하노라면 왠지 기묘한 느낌을 주는 장면이다.
화가 이문주는 이 요상한 도시의 폐허 풍경과 그곳의 사람을 그려왔다. 그가 열다섯 번째 개인전 <댄스>(11. 11~12. 3 이길이구갤러리)에서 발표한 동명의 신작 시리즈에서 눈여겨볼 변화는 ‘사람’. 기존작에선 황량한 도시 풍경에 사람은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사람이 있더라도 풍경의 일부로만 존재했다면, 이번 전시의 출품작에선 사람이 가장 중요한 표현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춤을 추는 노인들’이다. 이들이 춤을 추는 숲과 공원, 공터는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은 곳이다. 그런 곳에서 노인들이 춤을 추는 장면도 언젠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만 같다. 다만 이문주가 이들의 형체를 구체적으로 그려놓지 않아서, 이 노인들이 지금 흥겨워하는 건지 지겨워하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또 기묘하다. 왜 이 노인들은 저곳에서 줄 맞춰 춤을 추고 있었을까? 왜 이문주는 이 기묘한 장면을 그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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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근로자> 캔버스에 아크릴릭 145.5×224cm 2018
이문주는 작품 활동 초기에 대개 도시의 폐허 풍경을 그렸다. 그의 시선이 처음 머문 폐허는 1994년 서대문구 현저동의 재개발 지역, 이어 서울대 재학 시절 매일같이 지나치던 대학동 인근의 공사장 방음벽에 눈길을 돌렸다(<방음벽>(1996)). 두 곳 모두 1990년대 말엽 아마도 서울시 최초의 재개발 지역 중 한 곳이었을 터. 이문주는 마냥 평범해 보이던 마을이 갑자기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을 관찰하며 사진으로 찍어뒀다. 그리고 그 풍경을 붓과 물감으로 다시 옮겼다. “처음엔 사회나 정치 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외부에 시선을 던지지만, 언제나 나라는 사람, 나의 심리를 중심으로 현대 도시가 지닌 조형적 특성을 그렸다. 도시가 나의 내면을 투사하는 하나의 대상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당시 대대적인 철거와 재개발 과정을 근거리에서 마주하며, 자연스럽게 ‘도시’라는 장소의 사회적 맥락에 관심이 커져갔다. 1997년엔 매주 공사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를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나의 ‘바깥’으로 주제를 돌리게 됐다.”
이문주는 서울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00년 보스턴으로 유학을 떠난다. 보스턴은 흔히 ‘아이비리그’로 대표되는 깔끔하고 정숙한 교육 도시의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실상은 미국 혹은 전 세계의 어느 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지켜본 보스턴은 유명 대학교가 위치한 동네나 그렇지, 뒷골목 길바닥엔 가난과 마약에 찌든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가 학적을 옮기며 이주한 디트로이트는 더했다. 자본과 공장이 빠져나간 곳엔 일자리를 잃은 유색 인종 노동자만이 남아 빠르게 슬럼화됐고, 도시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한때 ‘자동차의 도시’로 미국의 산업 경제를 이끌던 디트로이트의 결말은 쓸쓸하다 못해 끔찍했다.
이때부터 그는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마치 기자나 역사학자가 된 듯 취재를 나가 인터뷰하고, 각 도시의 발전사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디자인하우스 2012)에서 호크니는 앙리 베르그송의 언급을 인용한다. 베르그송은 루앙 대성당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성당 앞 카페의 좌석에서 일어나, 그곳을 향해 똑바로 걸어가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장소를 콜라주해 화면을 재구축하는 나의 회화적 방법론의 이유를 정확히 설명하는 구절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 풍경은 그가 체류했던 여러 도시의 풍경이지만, 그곳이 어느 한 도시의 폐허라고 콕 집어 말할 순 없다. 그림 하나에는 하나 혹은 여러 개 장소의 서로 다른 시간대에 대한 기록이 콜라주되어 있다. “한편으로 집요한 조사와 취재는, 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실존적 과제이기도 했다. 세계의 대상과 내가 유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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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90.8×72.5cm 2020
이문주가 마지막으로 거친 도시는 2000년대 후반의 베를린,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던 도시다. 그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차 머물며 그 변화의 속도를 직접 체감했다. 냉전을 증언하기 위해 도시 자체를 박물관 혹은 기념비화하는 프로젝트와 더불어, 동시대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대형 쇼핑센터가 우후죽순으로 지어지는 풍경을 마주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베를린 장벽 앞을 지나는 어느 노부부를 발견했다. 이 기억을 꺼내 그린 그림이 <오랜 커플 Ⅱ> (2018), 일민미술관 개인전 <모래산 건설>(2018)의 가장 마지막에 걸어뒀던 작품이다. “처음으로 풍경을 대부분 생략하고, 인물을 전면에 등장시킨 작품이다. 이 그림을 그리고 나니, 이참에 미뤄뒀던 인물 소재를 이젠 꺼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특정 장소의 기록적 의미에 대한 강박을 떨치고, 일상의 장면과 인물의 동작 자체에 좀 더 단순하게 집중해 보고자 했다.”
<댄스> 시리즈는 그가 서울 도심의 공원을 지나며 봤던 ‘시니어 댄스 수업’을 소재로 그렸다. 혹자는 기존작의 ‘버려진 장소’와 ‘황혼의 노인’을 유사한 회화적 대상으로 해석하기도 했는데, 이문주의 접근은 사실 이와는 달랐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무언가를 처음부터 다시 배우기 시작하는 서툰 스텝, 서로의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호흡을 맞추는 단순한 움직임, 한참 어린 강사의 구령에 따라 동작에 집중하는 노인들의 모습이 무심히 도심을 지나치는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시 말해, <댄스> 시리즈는 우연히 마주쳤던 한 ‘순간’을 모티프로 시도하는 회화 연작이다. 기존에는 철저한 조사와 사진 이미지를 기반으로 비교적 정확한 재현을 할 수 있었다면, 이번엔 순간적인 이미지 하나로 수많은 작업을 전개해야 했다. 자연히 노인들의 얼굴과 표정을 자세하게 표현할 수 없었고, 주변 풍경도 좀 더 모호하거나 단순하게 그렸다. 한편, 그 순간엔 수없이 스쳐 지나가고, 또 어느 장소나 사물, 인물에 축적된 ‘시간’이 녹아있다. 작가가 베를린 장벽 앞에서 노부부를 마주쳤던 건 한순간이지만, 그 순간을 느린 속도로 캔버스에 옮기며 그들의 오래된 시간을 함께 곱씹는 것이다.
또 이문주는 이 익명에 가까운 노인들을 그리면서 작가 자신과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노년층에 대한 이미지와 고정 관념을 곱씹어 생각했다. “극단적인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인 한국 사회는 노인을 생산 능력을 상실해 아래 세대가 부양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본다. 한편으론 원숙함과 현명함, 축적된 경험과 지식의 전수자, 너그러움과 포용의 주체 등의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양극화된 프레임에 노인을 끼워 맞추는 게 왠지 억지스럽고 부당하게 느껴졌다.”
흘러간 유행가 중 ‘돌고 도는 인생’이라는 제목의 곡이 여럿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도, 도시를 움직이는 일꾼도, 이문주의 그림 속 노인들이 밟는 스텝도 모두 돌고 돈다. 다만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그 ‘속도’가, 훗날 21세기 인간 사회를 정의하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도시 풍경이 바뀌고, 그 구성원이 나이들어가는 과정을 붓질로 붙잡아 둔 이문주의 회화는 언젠가 2021년 인간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일종의 ‘역사화’로 불릴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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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주 / 1972년생. 서울대 서양화과 및 동대학원 석사 졸업. 미국 크랜브룩아카데미오브아트 회화전공 석사 졸업. 파비욘드갤러리(2019), 일민미술관(2018), 난지갤러리(2010), 베를린 쿤스틀러하우스베타니엔(2008), 대안공간풀(2005) 등에서 개인전 개최.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경기도미술관 2019), <Moving &Migaration>(가오슝미술관 2019), <Korean Eye: 에너지와 물질>(런던 사치갤러리 2012) 외 다수의 단체전 참여. 현재 서울에 거주하며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