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가의 '언어 게임'
바라캇컨템포러리, 영국 설치작가 엠마 하트의 한국 첫 개인전 / 조재연
기호에 반영된 사회 시스템을 조각으로 재현하는 엠마 하트(Emma Hart). 그가 바라캇컨템포러리에서 한국 첫 개인전 <Big Mouth>(2021.11. 24~1. 23)를 열었다. 말을 이용한 언어적 표현과, 표정 몸짓 손짓 등 비언어적 표현의 배면에 담긴 위계와 차별, 관습을 주제로 도예작품 21점을 선보였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개념인 ‘아비투스’는 경제적 차이가 규정하는 문화적 특성을 의미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상류층에서 하층민까지 이르는 계급의 분화는 생활 수준뿐 아니라 언어와 행동 양식, 취향까지도 좌우한다. 하트는 세계에서 계급 체계가 가장 확연하게 나뉜 곳 중 하나인 영국에서 나고 자랐다. 영국은 현재에도 군주를 인정하고 혈통에 따른 귀족 신분이 존재하는 국가. 상류층, 유산층, 중산층, 노동 계급 등으로 구분된 체계에서 예술가가 주로 배출되는 계급은 중산층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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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하트 개인전 <BIG MOUTH> 전경 2021 바라캇컨템포러리
노동 계급 출신이었던 하트는 작가가 된 이후 아트씬에서 늘 위화감에 시달렸다. “나는 우리 집안 최초의 대학생이었고, 동네의 또래 중 유일한 대학생이기도 했다. 미술계에서 누군가 만날 때마다 억양, 말투, 단어 등이 내 출신을 드러낼까 움츠러들었다.” 작가는 자신의 ‘아비투스’가 상류층 중심의 예술계와 만나 일으키는 문화 충돌에 주목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 그 모습이 진실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오는 분열감, 그리고 자신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하트를 괴롭혔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스스로 사기꾼이라고 느끼는 심리적 불안 상태인 ‘가면 증후군’과 연결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을 ‘Big Mouth’, 즉 허풍이 많은 사람을 의미하는 ‘떠버리’로 지은 이유에는 이러한 배경이 작용했다.
한편 하트는 현재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학부에서 사진을 전공한 사진가였다. 하트는 아름답지만 추악하고, 합리적이지만 부조리한 세상의 모순을 있는 그대로 이미지에 담고 싶었다. 그러나 사진의 결과물은 의도와는 반대였다. “가까이서 비극으로 보이는 삶도 멀리서는 희극처럼 보인다. 사진에서 삶은 멀찍이 떨어져 있고, 거친 진실은 사진의 표면처럼 매끄럽게 납작해져 미화됐다.” 하트는 사회를 미화하는 데 사용되는 스펙터클의 돌파구를 도예에서 찾았다. 흙과 돌이 주재료인 도예는 인화지를 매개로 하는 사진과는 다르게, 대상의 거친 표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시각적 화면을 넘어 실제적인 무게감, 입체감을 가진다. 하트는 도예의 이러한 측면이 오염되고 부패한 현실의 측면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점토를 다루는 과정에서 손은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점토는 개인적인 삶과 정제되지 않은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에게 도자의 광택은 공적인 것을 재현하고, 반대로 매트하고 거친 표면은 사적인 것을 의미한다. 더불어 관객이 수동적으로 관찰하기보다 3차원의 오브제를 경험한다는 점 역시 하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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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왼쪽) 유약과 색화 장토를 이용한 세라믹 48×50×28 cm 2020, <양다리>(오른쪽) 2021
하트의 초기 도예작업은 도자와 사진을 결합한 형태로 제작됐다. 2014포크스톤트리엔날레에서 개최한 개인전 <Giving It All That>에서 그는 사진의 프레임과 좌대를 도자로 만들거나, 사진을 쟁반처럼 사용해 그 위에 자기를 올리는 등 사진과 도자를 결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마치 점토가 매끄러운 사진의 표면을 뚫고 나오는 것 같은 형상으로 미화되지 않는 실제의 감각을 전달했다.
하트는 이번 바라캇컨템포러리 개인전을 준비하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작품과 관객이 맺는 적극적인 관계가 작품 세계의 중심인 작가에게 팬데믹 기간은 답답한 시간이었다. 많은 전시가 디지털 형식을 오프라인 전시의 대안으로 선택했지만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관객과 일대일로 교감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관객이 조각을 경험하는 순간, 작품은 오직 당신만을 다루는 ‘당신의 조각’이다.” 특히 작가에게 이번 개인전은 관객과 직접 만나는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Big Mouth>전에서 작가는 도예의 재료로 ‘스톤웨어’를 처음 시도했다. 유약을 바르지 않은 흑백 석기로 도자를 빚었다. 인간은 사회에서 상황에 맞는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한다. 그는 도예에 광택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유약으로 그러한 페르소나를 은유했다. 반대로 유약 없이 날것의 거친 표면을 그대로 드러내는 스톤웨어는 가장되지 않은 본연의 자아를 상징한다. 한편 하트는 익숙하지 않은 재료를 다루는 공정 동안 자신이 ‘변증법’이라 칭하는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변증법이란 대상의 대립하는 두 성격을 통일해서 더 높은 단계로 고양하는 철학적 과정. 무른 점토와 다르게 쉽게 조형되지 않는 스톤웨어를 제어하기 위해서 하트는 말 그대로 전쟁을 치러야 했다. 하트의 의도와는 다르게 뒤틀리고 휘는 스톤웨어를 말리기 위해 전용 건조대까지 만들었다.
<Big Mouth>의 출품작은 총 다섯 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핑거포스트’ 손가락 표지다. <You’re All over the Shop>, <Social Climber>, <Look You Up and Down>의 손가락은 방향을 의미하는 표지인 동시에 타인의 말이나 행동, 외양을 지적하는 손가락이기도 하다. 관객은 수많은 손가락의 지시 앞에서 이를 따를 것인지 따르지 않을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또한 관객은 자신의 손가락을 들어 표지와 함께 누군가를 지적하는 주체가 될 수도, 반대로 지적당하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작가는 두 입장 중 하나를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개인에게 강요된 사회 체계에 접근했다.
두 번째 테마는 ‘타깃’. 18개의 양궁 표적 형상으로 구성된 <Big Mouth>는 말을 하는 순간 말투, 억양 등에 내재한 문화적 특성이 드러나면서 표적이 되고 눈총을 받는 상황을 나타낸다. 타깃 중앙의 붉은 점은 입을 표현했다. 반면 이를 표적으로 노리고 쏜 화살에 달린 눈은 외부인이 자신의 영역에 진입하지 못하게 경계하고 위협하는 시선을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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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dback> 검은 석기, 아크릴릭 채색 도기 50×50×50cm 2021
다음의 테마는 ‘메가폰’이다. 두 개의 색으로 반씩 칠해진 얼굴은 개인의 양면성을 의미한다. 하트는 하층민과 상류층의 문화를 동시에 경험한 자신의 얼굴이 이처럼 ‘아수라’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매끈하게 나뉜 두 색면은 확성기를 통과하자 뒤틀리고 깨진다. 자신과 맞지 않는 언어 양식을 마주하고 상황에 어긋나거나 적절치 않은 말이 나와버린 당혹감과 불안을 표현했다.
네 번째는 ‘배트’다. ‘이리저리 논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bat around’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말을 주고받는 상황을 타격을 주고받는 상황에 비유한 작업은 대화에 내재된 폭력성을 보여준다. <Bat>의 끄트머리에 배치된 타면(打面)은 관객에게 말을 걸면서도, 되돌아올 응답을 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다. 은어, 방언, 전문어 등 문화 영역에서 특정한 언어가 암암리에 강요되는 상황에 담긴 구조적 폭력을 드러냈다.
하트가 마지막으로 설정한 테마는 ‘스피치 버블’. 말풍선은 만화에서 인물의 대사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그림 기호다. 광택을 낸 표면과 달리 내부는 붉은 화장토로 덮어, 번지르르한 외형과 대조되는 부끄럽고 창피한 내면을 표현했다. 작가는 이 시리즈 중 일부의 텍스트를 ‘양다리’, ‘입방정’ 등 한글로 표기했다. 말풍선으로 입을 표현하기 위해 텍스트를 사용해 왔는데, 한글이 발음 기관의 모양을 상형한 소리글자라는 점에서 강한 유대감을 느꼈다.
그의 작품은 개인 콤플렉스에서 출발해 사회적인 메시지에 닿는다. 곳곳에 위트와 유머가 자리 잡고 있지만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엄중한 고발’이다. 달궈진 흙은 식어 도자로 남았지만, 뜨거운 시선이 여전히 일렁이며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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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하트 / 1974년 런던 출생. 크로이던예술대 사진 전공, 슬로이드예술대 순수미술 석사 및 킹스톤대 순수미술 박사 졸업. 런던 선데이페인터(2020, 2017), 바스 디엣지(2019), 에든버러 더푸르트마켓갤러리(2018), 이탈리아 콜레치오네마라모티(2017), 런던 화이트채플(2017), 갤러리르준(2016), 레트랑제(2015), 버밍엄 그랜드유니온(2015), 런던 오스트리안컬처럴포럼(2015) 등에서 개인전 개최. <Ways of Seeing>(런던 레이턴스톤도서관 2019), <The Lie of the Land>(영국 밀턴케인스갤러리 2019), <Condo, The Sunday Painter>(상파울루 어센트럴갤러리아 2019) 등 그룹전 참여. 막스마라여성미술상(2016) 수상. 현재 런던에 거주하며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