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혼돈’의 캐스팅
쾨닉&페이스갤러리 서울, 알리시아 크바데 개인전 동시 개최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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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odecuple Be-Hide> 거울, 청동, 화강암, 사암 240×240×110cm 2020
인간은 정말 지구라는 공간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을까? 지나간 과거, 숨 쉬는 현재, 다가올 미래라는 시간 개념은 실재하는 것일까? 폴란드 출신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의 예술세계는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크바데의 한국 첫 개인전 <Sometimes I Prefer to Sit on a Chair on the Earth>(2021. 12. 10~1. 22)이 쾨닉과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동시에 열렸다. 거울과 청동, 세라믹을 활용한 조각, 시곗바늘과 눈금자를 재료 삼은 평면 등으로 시공간과 물질의 개념을 탐구한 근작 30여 점을 선보였다. 두 전시는 크바데의 전속 갤러리인 쾨닉의 제안으로 성사됐는데, 쾨닉과 페이스갤러리는 이전에도 몇 차례 협업 전시를 기획한 바 있다.
인간과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내려 노력해 왔다. 과학과 철학은 그 궁금증에 해답을 내놓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고, 예술도 이 기나긴 여정에 동참했다. 크바데는 고차원적인 질문에 앞서, 우리의 ‘현실’을 고찰한다. 그 첫 번째 사유의 대상은 우리가 태어나고 죽는 행성 ‘지구’.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신이 사무실 의자에 앉는 일은 행성 위에 앉는 일과 다르지 않다. 크바데의 쾨닉 서울 전시 <Sometimes I Prefer to Sit on a Chair on the Earth>의 초입에는 이를 직접적으로 비유하는 조각 <Siège du Monde>(2021)가 설치돼 있다. 의자의 네 다리 아래에 커다란 돌이 놓여있는데, 행성을 연상시키는 완벽한 구 형태의 돌은 의자의 앉는 면 위로 불룩 튀어나와 있다. 관객은 여기에 앉아 초월적 존재라도 된 듯, 우주적 스케일의 시야를 상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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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ège du Monde> 청동 49×49×75cm 2021
전시장으로 한 발짝 더 들어서면 평면작품 <Selbstporträt>(2021)이 보인다. 직사각형의 프레임에 산소, 탄소, 구리 등 24개의 각기 다른 물질을 넣은 24개의 유리 시험관이 원을 그리고 있다. 인체를 구성하는 24개의 물질로 이뤄진 작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의 자화상이다. 24라는 숫자는 인간이 수천 년간 사용해 왔던 십이진법을 지시한다. 태양이 지구를 한 바퀴 돌 때 달은 차고 기울기를 열두 번 반복하기 때문에, 인류는 특히 시간을 십이진법으로 계산해 왔다. 총 60칸으로 나뉜 동그란 시계 판엔 1부터 12까지의 숫자가 차례대로 올라가 있고, 제각각 다른 길이와 회전 속도로 시, 분, 초를 가리키는 바늘이 우리의 시간을 정의한다.
크바데는 이 시곗바늘을 작품의 재료로 적극 끌어들였다. 그는 카드보드지나 파피에르 마쉐 등의 종이에 금빛의 손목시계용 바늘을 촘촘히 심는다. 시곗바늘의 방향과 총량 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주제의 시리즈로 나뉘는데, <Causal Emergence(July 2023)>(2020)는 화면 한가운데에서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듯, 시곗바늘이 나선형을 이루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작품명 속 괄호의 날짜. 작품 속 저마다 다른 쪽을 가리키는 시침, 분침, 초침을 시간으로 환산해 모두 더하면, ‘2023년 7월’의 시간의 총합이 도출된다. 다른 작품의 제목에도 모두 특정 연월이나, ‘54 days 15 hours’와 같은 환산된 시간의 총합이 부제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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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sal Emergence(July 2023)> 판지에 판지에 아연을 씌운 금, 액자 81×81× 4.7cm 2020
신작 시리즈 <Entropie>(2021)는 열역학의 핵심 개념인 ‘엔트로피(entropy)’를 탐구한 결과물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 엔트로피는 ‘에너지나 물질이 변화해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자신의 저서 『엔트로피』(1980)에서 “인류 문명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만들어낸 에너지의 잉여분, 즉 엔트로피가 더 큰 무질서와 혼돈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쳐 말해 고요한 질서의 상태에는 필연적으로 무질서가 잠재해 있다는 것인데, 크바데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하는 엔트로피의 진행 과정을 시각화했다. 그는 물이 담긴 사각 프레임에 두 방울의 물을 떨어트리고, 수면에 퍼져나가는 동심원의 파동을 관찰했다. 그리고 두 동심원이 바깥쪽을 향해 퍼짐과 동시에 프레임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에너지의 움직임을 시곗바늘로 표현했다. 이어 다른 방향의 에너지들이 서로를 간섭해, 일정한 간격의 동심원이 점차 사라지고 무질서의 장이 펼쳐졌다가, 파동 자체가 거의 사라진 상태까지 작품으로 보여준다.
<Duodecuple Be-Hide>(2020)는 크바데의 사유가 눈앞의 현실을 넘어 다차원의 세계로 확장해 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작품은 각각 12개의 양면 유리와 커다란 돌이 번갈아 자리하며 원을 그린다. 12개의 돌은 모두 매우 흡사한 모양을 갖고 있지만, 그중 진짜 돌은 단 두 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그 돌을 캐스팅한 청동 조각이다. 관객이 작품 주위를 맴돌며 감상하면, 이동하는 위치에 따라 거울 표면에 서로 다른 재료와 색깔의 돌들이 한 몸이라도 된 듯 착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서로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도플갱어 돌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다차원적 우주론을 연상시킨다. 또 다른 출품작 <Rocking(AKW_S 911)>(2021)은 작은 자갈을 매단 모빌로, 이름 모를 소행성의 군도를 지극히 인간적인 스케일로 축소했다.
한편, 페이스갤러리 전시 <Surrounded by Universes>는 시간보다 한 차원 아래일지 모르나, 그만큼 관객의 감각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과 중력을 다룬다. 이를 대변하는 또 하나의 재료는 ‘눈금자’. 평면 시리즈 <Rain>(2018~21)과 <Meta-Meter>(2021) 등은 화면에 1㎜씩 자른 눈금자를 세로로 붙여 아래로 향하는 중력을 형상화한다. 3층 전시장에서는 비교적 넓은 공간을 활용해, 세라믹 조각 연작 <All at Any Time>(2018)을 선보였다. 각 개체의 형상은 회전하는 물레에서 서서히 둥근 형태를 잡아가는 점토나 체스의 검정 비숍과 닮았다. 이것들이 서너 개씩 군집한 상태로 서로 오목하고 볼록한 부분이 마치 톱니바퀴 없는 기어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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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ti-Teller(20)(Orgel)> 광택 스테인리스 파이프, 콘크리트, 마카오바 볼 154.9×119.1×330cm 2018
테라스 전시장의 <Multi-Teller (20) (Orgel)> (2018)은 두 개의 콘크리트 벽을 관통하는 십수 개의 원통에서 푸른 화강석 구가 굴러 나오는 듯 보이는 조각이다. 인류가 삶의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오랜 기간 사용해 왔던 돌, 금속, 석회 등의 재료로, 모든 물질을 해체해 태초의 무질서로 환원하는 블랙홀의 구조를 형상화했다. 코스모스(cosmos)가 질서 정연한 우주를 의미한다면, 카오스(chaos)는 혼돈으로 가득 찬 우주를 묘사한다. 코스모스가 질서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면, 카오스는 형식이 없는 존재 그 자체, 근원적인 존재다. 따라서 카오스를 생각한다는 행위는 인간을 근원으로 회귀하게끔 충동하는 존재론의 출발점이다. 질서와 논리가 정연한 크바데의 예술에도 그 사유와 감상의 말미에는 늘 카오스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있다. 하지만 이 혼돈은 종말을 고하는 게 아닐지 모른다. 언젠가 축적된 엔트로피가 폭발해 혼돈과 무의 세계가 도래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태초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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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시아 크바데 / 1979년 폴란드 카토비체 출생, 1987년 서독으로 망명. 베를린예술대 순수미술 전공. 베를린 국립현대미술관(2021), 노이스 랑엔재단(2020), 쾨닉 도쿄(2020), 카타니아 비스카리궁전(2019), 뉴욕 메트로폴리탄뮤지엄(2019), 303갤러리(2019), 프랑스 CCCOD(2019), 쾨닉 베를린(2018), 노이어베를린쿤스트페어아인(2018) 등에서 개인전 개최. <The Same Sea>(헬싱키미술관 2021), <Inaugural Exhibition>(쾨닉 서울 2021), 멜버른 2020NGV트리엔날레, 바르샤바 2020폴스카비엔날레, <Ascensions>(뉴욕 오프파라다이스 2020), 독일 2020빙엔조각트리엔날레, <Momentum>(네덜란드 보르린덴미술관 2020) 등 그룹전 참여. 현재 베를린에 거주하며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