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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을벗고,굴레에맞서

2022/02/06

쾨닉갤러리, 이란 화가 아르가반 코스라비 개인전 개최 / 김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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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rapped> 캔버스에아크릴릭,나무패널,폴리에스테르로프 104×105cm2021

‘이란에서 춤출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2018년 당시 17살이었던 이란의 체조 선수 마에데 호자브리가 집에서 음악에 맞춰 다양한 춤을 추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당국이 체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한 국영 TV 프로그램에서 체포된 소녀가 울먹이고 반성하는 인터뷰 모습을 방영하면서 이란 사회의 여성 억압에 대한 논쟁이 불거졌다. 이란에는 춤추고 노래하는 여자 가수가 없다. 또한 여성은 히잡을 쓰더라도 공개 석상에서 독창을 하거나 춤을 출 수 없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란의 여성 인권을 우려하는 서양 사회 일각에서 ‘이란에서 춤출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라는 구호가 생겨났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매년 집계하는 성평등 국가 순위에서 2021년 이란은 156개국 가운데 150위를 차지했다. 거리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동물용 올가미로 낚아채고, 여성 복싱 선수가 경기 중 무릎 길이의 반바지를 입었다는 이유로 연행될 각오를 하는 이란. 이런 사회에 문제 의식을 느낀 일부 이란 여성들이 ‘탈출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테헤란 출신의 아르가반 코스라비도 자유로운 작업 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간 화가다. 그가 베를린의 쾨닉갤러리에서 첫 독일 개인전 <TRUTH BE TOLD>(1. 14~2. 20)를 개최했다. 11점의 신작 회화를 출품해 이란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고민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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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s>캔버스에아크릴릭시멘트154×100cm 2020

아르가반 코스라비의 미국행 과정에는 이란의 정치 사회적 현실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작가는 건축가 아버지 슬하 줄곧 수도 테헤란에서 자랐다. 이란은 고등학생 때 전공을 골라야 하는데, 당시 코스라비는 학문의 실용성을 염두에 두고 ‘수학과’를 택했다. 이후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실용적인 예술분야인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당시 나는 학문의 ‘상호 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픽디자인을 고른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테헤란에서 10년 정도 아동용 동화책을 만드는 상업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디자이너는 늘 고객, 작가, 출판업자와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 내 창조적인 열정을 충족하거나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치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와의 소통 제일 위에는 이란의 ‘검열’이 있었다.”
작가는 2015년 보다 열린 환경에서의 창작 활동을 위해 지구 반바퀴를 돌아가는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페인팅을 한 번도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탓에 코스라비는 메사추세츠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1년간 포스트-바칼로레아 프로그램을 들었다. 그는 1년 동안 작업의 주제적, 표현적 뼈대를 만드는 연습을 했고, 이후 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RISD)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이때부터 이란 사회에 팽배한 여성 억압을 전면적으로 다루기 시작한다. 코스라비 작업의 맥락을 파악하려면 이란의 현대 여성사를 간략히나마 이해해야 한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란은 철저히 친서방 정책을 펼치는 팔레비 왕조의 통치 아래 ‘히잡 착용 금지법’이 내려질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허나 1979년 이슬람혁명 후 신권 정치로 급선회하면서 여성의 복장을 ‘율법’에 맞춰 엄격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란은 대통령이 아니라 이슬람 시아파 성직자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하는 ‘신정 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공권력이 여성의 행동을 강하게 ‘지도’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이란을 심리적, 물리적으로 떠나왔기 때문에 새로 눈에 들어온 지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이란에선 여성들이 공공장소에 나갈 때마다 히잡 쓰기를 강요당한다. 나도 그게 불공평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삶의 일부였기 때문에 별수 없었다. 미국에서 지내는 요즘엔, 머리에 햇볕을 쬐며 밖에 나갈 때마다 그것이 얼마나 불공평했는지 더욱 철저하게 느낀다. 다만 나는 모든 걸 다 부정적이고, 어둡고, 침울한 렌즈로만 보려고 하진 않는다. 대화의 가능성을 터놓고 싶은 거다.” 실제로 코스라비의 작업은 그리 우울하지 않다. 처음 그의 작품을 흘깃 보면, 화사한 색채 덕에 달콤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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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iosity> 캔버스에아크릴릭,나무패널,실,고무줄 100×218.5cm2021

코스라비는 아트씬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딘 지 8년이 채 안 된 라이징 아티스트다. 그만큼 매년 작업 경향이 눈에 띌 정도로 탄탄해지고 있다. 그가 연도별로 작품을 정리해 둔 홈페이지(www.arghavankhosravi.com)의 카테고리를 따라가 보면 한 해 한 해 표현과 형식이 일목요연해지고 주제 의식도 구체화되는 경향이 보인다. 가장 초기인 2016년경에는 주로 ‘페르시아 세밀화’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작품을 제작했다. 이란의 옛 이름인 페르시아에서는 양피지, 금속, 상아 등에 작고 정교한 그림을 그렸다. 사물을 축소해 화려하게 표현하는 세밀화는 이슬람 미술사의 백미로 불린다. 초창기의 코스라비는 페르시안 세밀화의 교묘한 문양 뒤에 숨은 다양한 인물 군상을 그렸다. 신화와 종교의 등장인물, 선글라스를 낀 남성 등 동서고금의 사람들이 패턴 속에 숨어있어 이때까지만 해도 ‘여성’에 대한 관심이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듬해인 2017년부터 여성 인물이 전면에 등장한다. 당시 코스라비는 텅 빈 캔버스 화면을 마주하기 두려워, 만기된 자신의 여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란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리해 깊게 숙고하는 시간이었다. 눈이 가려지고, 손발이 묶인 여성의 도상도 이때부터 나타났다. 이 드로잉들은 2018~19년 대형 회화로 제작되는데, 코스라비는 가족의 도움을 받아 이란에서 공수한 카펫에 그림을 그렸다. 문화적인 함의를 가진 실제 사물을 도입해 논의의 차원을 확장한 것이다.
또 한 번의 변화는 2020년에 일어난다. 작가는 회화를 ‘조각적’ 차원으로 변환한다. 여러 개의 나무 패널을 쌓아 올리거나 붙이고, 노끈, 직물 등을 회화에 부착해 ‘부조 회화’를 제작했다. “2년 전부터 나는 회화의 삼차원성에 도전해 왔다. 회화가 현실에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를 드러내고 싶었다. 또한 그림에 겹쳐진 수 개의 그리드와 레이어는 이민자이자 여성으로서 살아온 분절된 삶을 의미한다. 이곳의 미국, 저곳의 이란, 그리고 그 사이에 생긴 제3의 공간….” 한편 작가는 늘 ‘이중성’을 염두에 둔다. 억압적인 도상을 고운 색깔로 칠하거나, 정적인 분위기로 폭로의 메시지를 던진다. 동양과 서양, 회화와 조각의 경계도 마음껏 넘나든다. 현실에선 거부당한 ‘모순’을 그대로 포용한다. 작가에게 회화는 세상의 모든 장벽을 힘껏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지렛대이다. 그렇기에 코스라비는 이란에서 겪은 자신의 경험을 회화에 도입하지만, 구체적인 내러티브는 소거한다. 모든 관객에게 해석의 자유를 열어두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그에게 제일 중요한 건 이란 여성을 단순히 ‘피해자화’하지 않는 것이다. “서양 미디어의 방식으로 이란 여성을 왜곡하고 싶지 않다. 내가 바로 그 당사자니깐. 대신 나는 이란 사회에도 변화를 위한 희망의 움직임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내 그림을 보는 이들도 각자 겪은 가부장적 경험을 돌이키며 따뜻한 공감과 연대를 나누기를. 그리고 언젠간 한국에서도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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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가반코스라비(ArghavanKhosravi)/1984년이란출생. 아자드대학교그래픽디자인학사,테헤란대학교일러스트레이션 석사,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순수미술석사졸업.브뤼셀 스템즈갤러리(2021),뉴욕레이첼우프너갤러리(2021),뉴욕 라일즈&킹갤러리(2019)등에서개인전개최.<TheMemories, TalesandFolkSongs>(뉴욕하이라인갤러리2020),<Strange Beach>(뉴욕프리드먼갤러리2018),<LifelineasMedium>(뉴욕532갤러리토마스재클2018)등의단체전참여.2022년시카고카비굽타갤러리,맨체스터커리어뮤지엄오브아트,매사추세츠의로즈아트뮤지엄등에서개인전개최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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