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드림, 자유와 해방
독학파 화가 제이미 홈즈, 가나아트센터에서 아시아 최초 개인전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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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House #2> 캔버스에 아크릴릭, 오일 파스텔 182.9×182.9 2021
미국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 작가 제이미 홈즈. 아프리카 혈통의 작가는 미국 각지에서 ‘블랙라이브스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던 2020년에 데뷔했다. 블랙라이브스매터는 미니애폴리스에 거주하던 조지 플로이드가 비무장 상태임에도 경찰의 과도한 진압에 목숨을 잃은 사건 이후 뿌리 깊은 인종 차별주의에 대항하는 사회 운동이었다. 홈즈의 대표작 <They’re Going to Kill Me>는 이와 깊은 관계를 맺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다. 플로이드가 내뱉은 단말마의 다섯 문장을 뉴욕, LA, 댈러스, 마이애미, 디트로이트 등 5개 도시의 하늘에 현수막으로 만들어 날렸다. “그들은 날 죽일거야(They’re going to kill me), 제발 숨을 쉴 수가 없어(Please I can’t breathe), 배가 아파(My stomach hurts), 목이 아파(My neck hurts), 온몸이 아파(Everything hurts).” 하늘에 나부낀 고통의 울부짖음은 ‘인종의 용광로’라 불리는 미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홈즈의 개인전 <What Happened to the Soul Food?>(1. 27~2. 27)가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그의 아시아 첫 개인전일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을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자리다. 그의 작품엔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은 가족, 주변 친지들이거나 작가 자신을 그려 넣는다. 또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주의 도시 ‘티보도 (Thibodaux)’의 일상적 장소를 배경으로 삼는다. 티보도는 최초의 흑인 저항 운동이 일어난 기념비적인 도시다. 1887년 티보도의 사탕수수 농장의 흑인 노동자 1만 명이 파업을 선언했고, 농장주를 비롯한 백인들이 자경단을 결성해 수백 명의 노동자를 학살했다. 또한 이동식 트레일러, 허름한 아파트, 낡은 놀이터와 공터 등은 미국 최남단 ‘딥 사우스(Deep South)’의 흑인 커뮤니티를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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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아크릴릭, 오일 파스텔 182.9×182.9 2021
홈즈는 정식 미술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독학파 화가다. 다만 어릴 때부터 그 재능만큼은 출중했다. “나는 정말 어릴 때부터 사람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건 다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의 가족도 특출난 재능을 이미 눈여겨 보고 있었다. “사촌 형도 내게 ‘밥 말리의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한 적이 있다. 스케치를 조금 하다가 그만뒀는데, 엄마가 더 힘을 내서 그려보라고 응원했다. 엄마는 매년 크리스마스 때마다 내게 미술용품을 사주시기도 했다. 심지어 내가 성인이 되어 석유 시추 노동자로 일할 때까지도 말이다.” 홈즈는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전업 작가가 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던 중 2016년 댈러스로 이주하며 그의 삶은 큰 전환을 맞이한다. “댈러스 포트워스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카우스의 전시를 봤다. 그리곤 깨달았다. 나는 사실 화가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다시 뉴욕으로 거처를 옮겨 본격적으로 작업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총 11점. 회화가 10점, 조각이 1점이다. 출품작 <Soul Food>(2021)는 회화와 조각이 한 세트로, 캔버스 화면엔 캠핑용 그릴에 음식을 조리하는 한 남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시 제목에도 쓰인 작품명 ‘Soul food’는 미국 남부 흑인들의 전통 음식을 가리키는데, 날이 갈수록 점차 사라지는 흑인 커뮤니티의 전통에 대한 작가의 향수가 묻어난다.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집에 돌아와 부엌 식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눠 먹는 지극히 ‘미국’적인 가족 문화를 그는 그리워한다. 한편 화면 오른편에 미국의 대표적 식료품 회사 ‘언트제미마(Aunt Jemima)’의 광고 포스터를 배치했는데, 이 회사는 인자한 인상의 흑인 여성을 오랫동안 로고로 사용해 왔다. 이는 과거 백인의 ‘친근한’ 흑인 하녀 혹은 유모의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블랙라이브스매터 운동 이후 광고계에서 퇴출된 바 있다. 홈즈는 이 이미지를 차용해 흑인 노예의 역사와, 불과 몇 년 전까지 공공연하게 일어났던 인종 차별의 문제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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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a Dream> 캔버스에 아크릴릭, 오일 파스텔 242.6×198.28cm 2021
또 다른 출품작 <I Have a Dream>(2021)을 살펴보자. 홈즈는 티보도 시내의 마틴루터킹공원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데 작품의 제목이 왠지 낯익지 않은가?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1963년, 마틴 루터 킹이 링컨기념관에서 흑인의 자유, 미국 민주주의의 희망을 외쳤던 연설의 가장 유명한 대목이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색다른 경험을 보여주는 교육적인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홈즈에게 미술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들어가기 위한 삶의 방식이자 그 실천이다. 때문에 그의 작업은 언제나 역사를 되짚고, 현재의 문제를 진단한다. 그에게 미 대륙 전체를 들끓게 했던 사회 운동에 앞장서 참여하는 일과 자신의 주변을 세심히 살펴 캔버스에 옮기는 일은 다르지 않다.
홈즈의 삶 중심에는 흑인 인권 신장의 열망과 더불어 강력한 종교적 신념이 자리한다. 총 두 점의 <Facing Myself>는 자신의 두상을 그리고 그 윤곽을 따라 캔버스를 재단했다. 한 작품에는 붉은 표지의 성경이, 나머지는 검은 표지의 성경이 홈즈의 미간부터 인중까지 얼굴 한가운데를 가리고 있다. 기존작 중 <Ushers>(2020)는 여성 신자들이 고해 성사를 올리는 듯하고, <Forgive Us>(2020)는 목사가 소년에게 세례를 내리고 회개의 기도를 함께하는 듯하다. <Always on a Sunday>에는 주일 오전에 교회에는 가지 않고 유원지에서 범퍼카를 타는 젊은이들 사이에 흑인 예수를 그려놓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는 나의 뿌리였다. 하지만 삶의 목표를 그것에서 구하진 않았다. 어느덧 내가 37살의 화가가 되었으니, 작품을 통해 흑인 기독교의 전통을 찾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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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Seen It All (Distressed)> 린넨에 손 자수 83.8×157.5cm 2021
한편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대개 검은 옷을 입고 있다. 그 자체로 ‘blackness’를 강조하는 장치이자, 그의 주변에서 너무도 빈번히 일어나는 사망 사건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시신을 운구하는 장면을 그린 <Carrying Caskets #3>(2021)에서 작가는 ‘Rest in Peace’라는 문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채 관객과 눈을 마주친다. “내가 살던 곳에선 ‘항상, 똑같은, 오래된’ 사건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다. 비록 모든 흑인 커뮤니티가 이런 위험에 처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 중 <Peace of Mind>와 <City Bluse>(2021)에서만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 대신 갈색 풀숲에 파묻힌 듯한 참새 떼가 화면에 내려앉았다. “어린 시절 할머니 집 마당에서 참새를 처음 봤다. 평생 티보도를 벗어나 본 적이 없어 참새는 그곳에만 사는 새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가 작가의 삶을 선택하고 댈러스, LA, 뉴욕 등 다양한 도시를 오가다 보니 참새가 어디에나 있는 흔한 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새는 홈즈의 다른 작품에도 자주 등장하는데, 고향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신의 자유로움을, 할머니 집이 있었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동시에 상징한다. 3년 차 신예 화가인 홈즈에겐 앞으로 새롭게 가야 할 장소도, 그려야 할 그림도, 더 크게 외쳐야 할 메시지도 아직 무궁무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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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홈즈(Jammie Holmes) / 1984년 미국 루이지애나주 티보도 출생. 디트로이트 라이브러리스트리트콜렉티브(2021,2020), 댈러스컨템퍼러리(2020) 등에서 개인전 개최. <Shattered Glass>(LA 다이치프로젝트 2021), <High Voltage>(텔아비브 나시마란다우프로젝트 2020), <To Be Determined>(댈러스미술관 2020) 등의 단체전 참여. 디트로이트 더벨트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 <Universal Language>, 뉴욕 외 미국 대표 도시 5곳에서 <They’re Going to Kill Me> 등 발표. 현재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거주 및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