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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Look]유예림

2022/03/14

Ryu Yaerim: 장황한 농담, 관습 비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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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래그런스오브유>패널에유채193.9×224.2cm2021

<채프먼 씨 내외는 연말 부부동반 모임 참석을 위해 외출하였고 그들의 어린 아들 행크는 부부의 자동차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부엌으로 향했다>. 이 긴 문장이 유예림의 첫 개인전 제목이었다. 전시명뿐만 아니라 작품의 제목도 장황하다. <정말 맛있겠어요, 저도 조금만 주시겠어요?>(2021), <세계의 사우나 수도 탐페레에는 320만 개의 사우나가 있다>(2020), <채프먼을 쫓는 바이에른 출신 남자와 네덜란드 나막신을 신은 울루>(2019) 등등. 연극의 대사 같기도 하고, 지시문 같기도 한 문장 속으로 관객을 불러들이는 작가. <두산아트랩 전시 2022>(1. 12~2. 19 두산갤러리)에 참여한 유예림은 음악, 소설, 영화 등에서 영향을 받아 허구의 내러티브를 구상한다. 특히 단어나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을 때 흥미롭게 들려오는 구절에서 출발해, 그 내용이 엉겨 붙고 튕겨 나가고 다시 수렴됐을 때 발생하는 제3의 이야기를 회화에 담는다. 서사의 콜라주로 상상된 그의 작품은, 그래서 특정한 상황을 묘사하는 작품명과 묘한 괴리가 있다. 오히려 제목은 사건을 유발하지만 이내 퇴장하고 마는 ‘맥거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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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무리는빈정상한싸움꾼의매서운눈초리에겁을먹기는커녕오히려흥미로워했다구경꾼무리의흥미로운기색에민망함을느낀싸움꾼은상대싸움꾼의명치를세게가격함으로써민망함을달래보려애썼고명치를가격당한상대싸움꾼은숨이막히는감각에공포감을느껴타임을제안했다>패널에유채40.9×53cm2020

그렇다면, 유예림의 그림이 글의 내용을 보조하는 삽화라면 말이 될까? 아주 긴 플롯을 함축해 담은 삽화라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상황이 그림에 반영됐을 수도 있는 것이니. 실제로 작가는 ‘삽화’라는 코멘트에 ‘회화’임을 필사적으로 증명하려 했던 자신을 보며 ‘회화와 삽화’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이에 그는 문장을 배반하는 ‘자율적인 삽화’를 콘셉트로 삼았다. 한편 유예림의 작품에선 ‘서구적 전통성’이 진하게 느껴진다. 수직 수평의 균형 잡힌 화면 구성, 구체적인 상황 설정과 사실적인 표현법, 푸른 눈과 부푼 뺨을 가진 1세계의 인물, 탁한 저채도의 색감···. 유예림의 작품은 성서와 신화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종교화의 혈맥을 이어받은 듯 보이지만, 전통회화의 대전제인 ‘제목과 내용의 1대1 대응’을 통쾌하게 비틀며 ‘회화의 관습’에 타격을 입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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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스훈트산책시키기>패널에유채48×64.5cm2019

유예림 / 1994년생. 홍익대 회화과 학사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 재학. 쇼앤텔(2021), 쉬프트(2020)에서 개인전 개최. <Mind Sculpture>(BGA마루 2021), <Obertürkheim>(슈투트가르트 베르스타벨 2017) 등의 단체전 참여. 올봄 상하이 Func갤러리에서 그룹전, 2023년 초 갤러리기체에서 개인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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