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영혼, 진실의 변증
덴마크국립미술관 SMK, 양혜규 개인전 <Double Soul> / 조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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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개인전 <Double Soul> 설치 전경 2022
모순은 거짓의 조건이다. 요소가 상충하거나 일관되지 않을 때 진술은 의심받는다. ‘소리 없는 아우성’, ‘사늘한 햇살’처럼 상반되는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대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양혜규에게 진실은 외려 모순을 확신하는 순간 다가온다. 보편성과 통일성을 기반으로 이해되는 세계는 기만이다. 어떤 것도 단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진실은 이질적인 요소의 중첩으로 성립한다. “내가 ‘이중성’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것이 전체와 관련을 가지면서 어떠한 기원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모든 나머지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중’의 쌍은 우리가 되고자 열망하지만 끝내 그림자에 남겨져 있는 것이다.” 양혜규의 작품에서 사실과 허구, 일상과 비일상, 기계와 인간, 정통과 이단 등 상이한 가치가 침투하는 접점은 단일한 것으로 간주된 세계에 대한 이론(異論)이다.
덴마크국립미술관 SMK에서 개최한 <Double Soul>(3. 5~7. 31)에서 양혜규의 이의 제기는 ‘영혼’을 향한다. 덴마크 미술씬의 선구자였던 피아 아르케와 소냐 펠로브 만코바를 모티프로 한 신작과 1994년부터 2022년까지 대표작을 아우르는 50여 점 작품을 덴마크 관객에게 처음 공개했다. 블라인드, 무빙 라이트, 2가지 향으로 구성된 <Lethal Love>, 빨래 건조대 조각 <Non-Indépliables, nues>, <Lacquer Paintings>, 쿠션 작업 <Mundus Cushion–Yielding X >와 <Vita Cushion-Yielding S>, <Silo of Silence–Clicked Core> 등 그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주요작을 총망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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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c Intermediate - Six-Fingered Wayfarer after Arke> 분체 도장 철골, 그물, 손잡이, 볼 베어링 외 혼합재료 100×104×210cm 2021
전시를 대표하는 중심축은 신작 <Sonic Intermediates–Double Soul>이다. 두 개 조각이 한쌍인 이 작품은 각각 아르케와 만코바의 작업에서 영감을 얻었다. 독립운동가 김산과 그의 궤적을 추적했던 기자 님 웨일스의 만남을 담은 <조우의 산맥>, 독일 녹색당을 창립했던 페트라 켈리와 그의 연인이자 반전 운동의 중심이었던 게르트 바스티안의 사랑을 담은 <Lethal Love> 등 양혜규는 계속해서 역사 속 인물의 서사를 작업으로 만들어왔다. 이들은 각자 위치에서 현실 변혁을 외치는 뜨거운 삶을 살았다. 이번 신작의 모티프가 된 아르케와 만코바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이 표현하는 것은 그들의 삶과 신념이지만 동시에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양혜규는 체제가 품지 못했던 소외된 사람, 사건을 다시 무대에 올려 현 체제의 한계를 환기한다.
양혜규가 베를린과 서울 사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디아스포라 정체성을 사유하듯, 아르케와 만코바 모두 단일 문화나 국가 틀을 넘어서는 작업 세계를 추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르케는 덴마크 자치령인 그린란드 출신 작가로 극지방 원주민의 식민 지배를 영상과 사진, 글로 다뤘다.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아르케 작업은 이누이트의 이주와 탄압 역사 연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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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ic Intermediate - Tripodal Shapeshifter after Felov Mancoba> 분체 도장 철골, 그물, 손잡이, 볼 베어링 외 혼합재료 212×147×191cm 2021
양혜규는 아르케의 사진에 등장하는 여섯 손가락 장갑에 주목했다. 이누이트 전통 장갑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이유는, 카약의 노를 젓다 장갑이 젖을 경우 뒤집어서 착용하기 위해서다. 양혜규는 여기서 ‘육손’이라는 타자성을 도출한다. 다섯 손가락이 정상인 세상에서, 육손은 배제되고 소외된 타자의 상징이다. 작가는 아래위로 대치된 육손 위에 해양과 대륙이 도치된 지구를 올려, 타자의 관점으로 새롭게 재편된 세계를 제시했다.
한편 만코바는 남아프리카 미학을 동시대조각에 도입한 아방가르드작가로 평가받는다.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현대예술가로 평가받는 어니스트 만코바의 연인이기도 했던 그는 서유럽 중심 예술경향을 거부하고 제3지대를 모색했다. 양혜규는 만코바 조각의 비대칭성과 여러 개 다리를 지닌 괴이한 형상에 착목했다. 매끈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표면과 정형화되지 않은 양태는 서구의 미감 체제에서 벗어난 탈경계적 상상의 산물이다. 또한 조각 사이사이에 부착된 풀포기는 어니스트 만코바의 고향이자 소냐 펠로브 만코바가 추구했던 남아프리카의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공수한 본토의 식물 모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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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개인전 <Double Soul> 설치 전경 2022
전시는 대중에게 익숙한 기존작으로 대부분 구성됐지만 단순히 회고전 성격을 띠진 않는다. 양혜규에게 구작의 재배치는 이전 전시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작품의 배면, 즉 이중성의 가시화다. 일부를 수정하거나 환경과 배치를 변주한 작품은 새로운 전시에 출품될 때마다 또 다른 맥락을 만들어낸다. 가령 병원이나 공항의 다종교 기도실에서 영감을 얻은 벽지 작업 <Multiple Mourning Room>엔 이누이트 전통 장갑과 의상을 새롭게 더했다. “나의 작업은 대상을 향한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것의 전부를 알지 못하더라도 끌리면 하는 것이다. 알아야 완벽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자기 검열에 작업을 조금도 양보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작업이 끝난 후에야 새롭게 알게 되고 확장되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전시는 내게 중요한 ‘포스트프로덕션’이다.”
양혜규가 최근 천착하는 주제는 ‘무속’이다. 2021년 8월 국제갤러리에서 종이 무구인 설위설경을 주제로 <황홀망> 연작을 발표했고,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아르케 작업에 등장한 이누이트의 샤머니즘을 연구했다. 올해 3월 중순엔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영등굿을 보러 제주도를 찾기도. 서구에서 활동하며 그곳의 주류인 기독교에 포섭되지 않은 이교 전통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그것이 우리나라의 무속, 샤머니즘과 연결됐다. “오늘날 무속은 비과학적인 미신이거나 개인의 기복을 비는 문화로 변질됐다. 그러나 과거에 굿은 비를 내리거나 그치게 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난 자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서 펼쳐졌다. 무속의 본질은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데 있다.” 작가는 샤머니즘이 공동체를 중심으로 세계를 재사유하는 또 하나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작가는 4월 개최하는 베를린 바바라빈갤러리 개인전과 10월에 열리는 파리 샹탈크루젤갤러리 개인전에서도 <황홀망> 연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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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규 / 1971년 서울 출생. 서울대 조소과 졸업.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 마이스터슐러. 캐나다 온타리오미술관 AGO(2020), 뉴욕현대미술관(2019), 베를린 킨들현대미술센터(2017), 파리 퐁피두센터(2016), 파리 갤러리라파예트(2016), 포르투 세할베스현대미술관(2016), 함부르크미술관(2016), 베이징 울렌스현대미술센터(2014), 리움미술관(2014), 본 쿤스트페어라인(2014)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개최. 리버풀비엔날레(2018), 시드니비엔날레(2018), 카셀도쿠멘타(2013) 등의 기획전 참여. 볼프강한미술상(2018) 수상. 현재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