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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ckDreaming

2022/05/11

바라캇컨템포러리, 제임스 바너 개인전 <Ever Young>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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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모델,메드웨이예술대학>람다프린트68×55cm1963/2022

가나의 1세대 사진작가 제임스 바너의 한국 첫 개인전 <Ever Young>(3. 17~5. 8 바라캇컨템포러리)이 열렸다. 작가는 1929년, 가나가 영국령 식민지인 ‘골드 코스트(Gold Coast)’였던 시기에 태어났다. 그는 의무 교육을 마친 직후, 마치 정해진 운명이었던 듯 카메라를 손에 들었다. 그의 일가친척 중 사진가가 3명이나 됐고, 학창 시절 은사가 카메라를 선물하기도 했다. 초기엔 초상사진 스튜디오를 운영했지만, 신문과 잡지의 사진기자로 활동 범위를 점차 넓혀갔다. 가나의 수도 아크라와 런던을 오가면서 조국의 독립 과정과 유럽으로 이주한 아프리카인의 일상을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각으로 포착했다. 이번 전시는 60여 년에 걸친 그의 작품 세계를 총 34점의 작품에 집약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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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딜리서커스에서마이크에건>1972/2022

전시명 ‘Ever Young’은 바너가 1953년 처음 개업했던 스튜디오 이름을 그대로 빌려왔다. 이 이름은 북유럽 신화의 여신 ‘이두나’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두나가 보살피는 나무에 맺힌 사과만이 모든 신에게 ‘영원한 젊음’을 선사한다는 이야기다. 바너 또한 사진을 찍으면서 피사체에게 영원한 젊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의 영원함은 환상이나 수식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오늘날과 같이 디지털 사진을 ‘포토샵’으로 보완, 수정한 게 아니라, 인화 직전 인물의 얼굴에 손수 리터칭을 가했기 때문. 출품작 <이블린 아베우의 초상>(1954~59/2020)이 이 시기 작품으로, 단아한 표정과 포즈를 취한 젊은 여성을 흑백 필름에 담았다. 이외에도 독립국 지위를 얻고 체제를 정비하던 가나의 간호사, 경찰관, 사무관 등의 모습을 포착했다.

런던의 블랙 디아스포라

바너는 1950년대 후반, 스튜디오를 뛰쳐나와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영국 신문 『데일리 그래픽』,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패션 및 라이프 스타일 잡지 『드럼』의 프리랜서 사진가로 발탁된 것. 백인만이 프로페셔널 작가로 제도권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당시로선 파격적인 인선이었다. 덕분에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읽히던 『드럼』에 독립의 환호와 감격으로 가득한 가나의 길거리 사진을 실을 수 있었다. 또 바너는 기자 자격으로 대통령 궁을 출입하면서, 가나의 독립을 이끌고 초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폭정으로 실각한 콰메 은크루마와 깊은 교분을 맺기도 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가나를 비롯한 여러 아프리카 국가가 세계 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드럼』 또한 아프리카의 정치적 상황과 경제 및 문화적 발전 양상을 소개하고, 유럽의 선진 문물을 자신의 대륙에 빠르게 전파하려 했다.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아프리카 사진가가 바로 바너였다. 이를 위해 그가 런던으로 건너간 때는 1959년. 현지에 체류하며 발굴한 흑인 모델을 촬영해 『드럼』의 표지를 장식해 나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델 에린 이브렉이 트라팔가 광장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에린 이브렉>(1966~67/2022)과 가나 출신의 ‘BBC 아프리카’의 아나운서 마이크 에건이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환한 웃음과 함께 자유롭게 뛰노는 <피카딜리 서커스에서 마이크 에건>(1967/2019)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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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위일체대성당에서주일미사아이들,아크라>젤라틴실버프린트40×50cm1970/2021_주일미사를마친아이와청소년을촬영했다.런던활동이후귀향한1970년대의대표작.작가는영국에서배운컬러사진기술을가나에널리보급했다.

1970년대 바너는 나고 자란 아크라로 귀향했다. 자신의 두 번째 스튜디오 ‘스튜디오 X23’을 설립하고, 자국의 풍경과 사람들의 여러 표정을 렌즈에 담기 시작했다. <인형을 든 어린 소녀>(1972/2022)는 아프리카 특유의 화려한 패턴의 헝겊으로 인형을 감싸 업고 있는 소녀에 포커스를 맞췄다. 또 이 시기에 달력, 잡지 화보 등 상업사진에까지 진출했다. 출품작 <스튜디오 X23 입구와 광고사진>(1974/2021)을 보면 그가 당시 얼마나 다양한 일을 겸업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바너는 가나 최초의 컬러 사진 스튜디오 ‘컬러 프로세싱 연구소’를 세우고, 런던 메드웨이예술대 재학 시절 배운 컬러 사진 기술을 현지에 보급하는 데도 힘썼다.
그렇다면 오늘날 바너의 사진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가 서구 백인의 시각으로 점철되었던 현대사진의 전개에 제동을 건 선구자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열강은 피식민 대륙 혹은 국가를 지배하고 통제하는 데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목적으로 사진을 활용했다. 다시 말해, 피식민지를 ‘덜’ 근대화되고 ‘더’ 궁핍한 모습으로 왜곡하곤 했다. 바너는 이와 반대로, 가나의 아름다운 일상과 사람들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가 주목한 유럽의 아프리카인 공동체는 결코 주류 문화에 종속되거나 일방적인 영향 관계에 놓여있지 않은 능동적인 모습이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이미지 정치’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오늘날, 이분법적 시선에 매몰되지 않고 만인을 동등하게, 또 아름답게 빚어낸 바너 사진의 힘을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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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바너/1929년가나아크라출생.런던서펜타인갤러리,디트로이트미술관, 브리스톨시립미술관(이상2021),아크라누부케재단(2019),세네갈세인트루이스사진미술관,요하네스버그IF(이상2017),런던오토그래프ABP(2010)등에서개인전개최.<Paris-Londres,MusicMigrations(1962-1989)>(파리포르타도레미술관2019),<AnotherLondon>(런던테이트모던2012)단체전참여.뉴욕현대미술관,디트로이트미술관,런던국립초상화미술관,테이트모던등에서작품소장. 현재런던에거주하며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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