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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운율

2022/05/11

조은숙갤러리, 권혁근 개인전 <Promenade> / 김복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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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29050>캔버스에유채116.80×91cm2021

화가 권혁근이 <Promenade> 시리즈로 신작 개인전을 연다. 3년 만의 발표 무대다. ‘Promenade’는 우리말로 ‘산보, 산책’이라는 뜻이다. 전시 작품이 왜 <Promenade>인가. 이유가 있다. 작가 자신의 일상에서 산책의 비중이 커졌다. 근자에 그는 작업실을 옮기는 등 창작 환경을 새롭게 정비했다. 생활 리듬을 바꿨다. 그는 서대문 자택에서 남산 자락의 작업실까지 온전히 걸어서 출퇴근한다. 걷기는 사람의 일상이다. 그러나 오늘날 도심에서의 걷기는 이례적인 일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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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30050>캔버스에유채116.80×91cm2021

산책은 육체 활동이지만 정신 활동으로 치닫는다. 권혁근의 <Promenade>는 창작의 걸음을 응축하는 메타포다. 코로나 펜데믹 시대를 보내면서 모두가 고립과 폐쇄의 시간을 겪었다. 코로나 블루는 내면으로의 응시라는 값진 시간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 작가에겐 가열한 자기 검증의 시간이리라. 권혁근은 홀로 걷는다. 30대의 ‘이립(而立)’을 거쳐 40대의 ‘불혹(不惑)’에 이르기까지 창작의 여정을 유유히 산책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까지 왔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나=작품’, 그 존재로의 산책이다.

불혹, 새로운 창작의 걸음

권혁근의 작품이 변화했다. 물론 ‘지속 중의 변화’다. 조형의 기본 토대는 이전과 다를 바 없는데, 화면을 경작하는 방법이 다르다. 먼저 캔버스에 검정이나 흰색으로 자유롭게 바탕을 조성한다. 종이처럼 번지는 효과를 노릴 때는 양귀비오일을 발라 지지체를 촉촉하게 만든다. 바탕 그림은 단순한 밑칠도 아니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밑그림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자동기술(automatism)에 기대는 필적(筆跡), ‘붓의 흔적’이다. 이 바탕 위에 화면의 표정을 만들어간다. 손가락이나 나이프로 위에서 아래로 가지런히 일정한 궤적을 반복해 그려나간다. 물감은 우연히 겹치기도 하고, 두께가 다른 텍스처를 남긴다. 바탕에 미리 그려놓은 색 위에 새로운 표현을 입히는 일은 ‘그리기’이자 동시에 ‘지우기’이다. 뭉갬과 겹침, 생성과 소멸의 과정이 구성, 색채, 농담, 밀도, 텍스처로 직결된다. 마침내 화면은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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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09100>캔버스에유채162×130cm2021

첫 번째 변화는 유채색에서 무채색으로, 다색에서 단색으로의 이행이다. ‘흑백 시대’가 왔다. 이번 <Promenade> 시리즈는 비록 유화 물감을 구사하지만, 일필의 수묵 조형의 원리가 깔려있다. 권혁근은 본래 지필묵 베이스의 한국화 작가였다. 수묵 정신으로의 자연스러운 귀환이다. ‘수묵의 유화적 번안’이라 해도 좋다. 이전의 작품은 화면의 맨 밑층에 검정 겹을 깔고, 그 뒤 시간을 두고 초록, 노랑, 주황의 겹을 구축했다면, 근작은 오로지 흑백 물감으로 일필을 휘두르듯 화면을 단번에 수습해 나간다. 그만큼 작품 제작 과정이 간결해졌고, 시간도 단축됐다. 권혁근은 색채를 흑과 백으로 환원했다. 이전에는 계절의 분위기나 자연 풍경에 비유할 수 있는 다양한 색채를 구사했지만, 이제는 그 모든 색채를 조용히 잠재웠다.  자연 풍경을 떠올리는 일말의 재현성은 아예 사라지고, ‘심상(心象) 풍경’이라고 해도 좋을 순수 추상의 세계로 이동했다. 권혁근의 시선은 확실히 외부에서 내부로, 객체에서 주체로 이동했다. 흑과 백은 현실의 색이 아니다. 실제 자연계에는 순수한 색으로서의 흑과 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물질은 흑과 백 사이의 색이다. 그러니까 흑과 백은 비교의 색이다. 극단적인 메타포의 색이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같은 이원론적인 개념의 대역(代役)을 맡기도 한다. 그래서 흑과 백만으로 표현된 화면은 현실보다는 꿈이나 환상처럼 암시적 환영적 내용에 더 적합하다. 권혁근의 흑백 <Promenade>는 마음의 색, 심리의 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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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044020>캔버스에유채73×60.5cm2021

두 번째 작품 변화는 화면 구성이다. 이전에는 물감을 쌓는 반복 행위에 일정한 방향이 없었다면, <Promenade>에서는 하나의 방향으로 정연하게 구성된다. 이전 작품은 띠 모양의 구성이 지각 변동처럼 서로 충돌하거나 소용돌이치듯 역동적이었다면, 근작은 수직으로 내리그은 제스처를 촘촘히 나열해 큰 띠를 만든다. 한 화면에 여러 개의 큰 띠를 쌓는다. 질서 있는 통일을 유지하면서도 잔잔한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구성이다. 활화산처럼 타올랐던 에너지가 한풀 누그러졌다.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시끄러운 것에서 조용한 것으로 바뀌었다. 정중동(靜中動)의 짜릿한 긴장감!
<Promenade>의 화면을 보노라면,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마음의 파동 같은 것을 맛본다. 고저장단의 선율, 그 다발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빗살무늬 토기의 표면 같은 고졸한 멋과도 통한다. 산사(山寺)의 정적을 깨는 풍경(風磬) 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작가 자신은 오언율시의 리듬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렇다. “모든 예술은 음악의 상태를 동경한다.”(월터 페이터) 모양이 없는 소리가 인간의 영혼을 뒤흔들 듯, 20세기 추상 회화는 음악으로의 지향으로 순수성, 자율성, 정신성을 획득했다. 권혁근의 <Promenade>에도 잔잔한 음악적 율동이 흐른다. 정신의 운율이다. 사색의 주름. 권혁근은 우뚝 서서 <Promenade>를 그린다. 화면의 뉘앙스는 손의 궤적이다. 그러니까 몸의 흔적이다. 몸은 캔버스와 일체화되어 화면을 부지런히 산보한다. 바로 존재의 발자국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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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근/1977년생.단국대동양화과학사,홍익대동양화과석사졸업.조은숙갤러리(2019,2017),보두앙르봉갤러리파리(2018),이유진갤러리(2015)등에서개인전개최.<PostIllusion>(조은숙갤러리2019),<서미인터내셔널in2016>(샌프란시스코포트메이슨센터2016)단체전참여.현재서울에거주하며활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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