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아름다움
지난 4월 강남구 청담동에 문을 연 글래드스톤갤러리 서울. 뉴욕을 대표하는 톱 갤러리가 아시아 첫 지점으로 서울을 ‘픽’했다. 개관전 주인공은 프랑스 작가 필립 파레노(Philippe Parreno).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간과 공간’을 주제로 작업을 해왔다. 관계 미학, 제도 비판 등의 담론을 적극 실험해 미술계의 큰 주목을 끌었다. 최근에는 전시장 환경에 맞춰 자신의 구작을 변형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파레노의 한국 첫 개인전 <광물적 변이>(4. 6~5. 21). 그의 대표작이 서울이라는 장소에 맞춰 재탄생했다. Art는 필립 파레노와의 단독 인터뷰로 그의 예술관을 들여다본다. / 김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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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개인전 <광물적 변이> 전경 2022 글래드스톤갤러리 서울
Art 한국 첫 개인전이다. 그간 한국에 당신의 작품이 여럿 소개됐지만, 완결된 전시를 선보이긴 처음이다. 당신은 전시장 주변 환경을 작품에 반영하는 걸로 유명하다. 이번 개인전은 글래드스톤갤러리 서울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
PP 나는 전시가 열릴 장소를 아주 구체적으로 고려한다. 늘 ‘형태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는지’에 관심을 두고 질문을 던진다. 어떤 각본을 써야 하는가 혹은 어떤 상황에서 작업의 형태가 드러나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을 한다. 내게 전시는 ‘영원한 협상’이다. 전시를 열 때마다 해당 공간을 재해석하는 데서 작업을 시작한다. 도시 계획을 짜거나, 조경 건축을 구상할 때와 비슷하다. 즉, 나에게 전시는 꽤 구체적인 ‘목표물’이다. 이번 <광물적 변이>전 역시 비슷한 과정으로 시작됐다. 여태껏 그래왔듯, 구작에서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걸 즐긴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의 작업을 ‘광물화’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얻었다. 다른 데서 선보였던 형태를 완전히 변형했다. 반복되는 모티프일지라도, 각기 다른 전시에서 재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내러티브, 새로운 미장센, 새로운 의식과 상호 작용하면서.
대화, 예술의 핵심
Art 당신의 작업에선 협업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미술가, 음악가, 철학자, 기술자 등과 함께 일했다. 당신에게 협업이란?
PP 내게 대화는 ‘예술의 핵심’이다. 대화가 없으면 예술도 없다. 중세시대 예술가는 뮤즈와 나눈 잡담을 확장해 아카데미에서 설파했을 것이다. 대화는 아주 오래된 ‘기술’인 거다. 예술은 늘 타자와의 대화를 촉발한다. 마치 우정을 쌓는 과정과 같다. 가령, 우리(협업 팀)는 물리적인 오브제(작품)를 만들 뿐일지라도, 서로 진정 원하는 이상향과 그 의미를 공유한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대화는 우리를 보다 멀리 나아가게 한다. 더 빨리 연구하고, 더 많은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더 나은 관점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 세대가 ‘집단’을 믿게 된 점도 중요하다. 아주 큰 집단이 아니라 작은 집단 말이다. 연대는 언제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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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맨 인 리얼리티 파크> 얼음, 돌, 나무 막대기 외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2_파레노는 1990년대부터 <눈사람> 시리즈를 제작해 왔다. 이번 전시작은 갤러리 주변에서 공수해 온 맨홀 뚜껑 위에 놓였다. 얼음이 녹으면서 작가가 조향한 독특한 향이 퍼진다.
Art 나는 2018년 그로피우스바우에서 당신의 개인전을 보았다. 관객들이 공중에 떠있는 물고기 풍선 작업 <내 방은 또 다른 어항>과 재밌게 놀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 보니, 당신은 관객과도 협업하는 것 같다.
PP ‘보는 이(viewer)’의 참여는 매우 흥미롭긴 해도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는 ‘관객(audience)’이라는 말을 극도로 싫어한다. 예술가가 그들과 꼭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중(public)’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가령, 누구나 영화관에서 앞 좌석 사람 때문에 당황한 적이 있을 거다. 자막을 읽기 위해 그의 머리를 베어버리고 싶어지니깐. 이런 차원이 ‘관객’이다. 그들은 전시의 구성 요소로서, 나보다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시간적 차원에서 앞서 있다. 먼저 온 사람은 늦게 온 사람보다 조금 더 미리 전시에 대해 알고 있을 뿐이다. 즉, 전시장에선 존재의 핵심을 협상하게 된다. 누구든 자신의 시간에 주도권을 갖지만, 다른 사람이 있어야 예술작품을 읽는 데 품위가 생긴다. 여기서 ‘다른 사람’은 대중에 가깝다. 관객은 스펙터클의 차원에 있을 뿐이다.
Art 콘센트(<AC/DC 스네이크>), 눈사람(<아이스맨 인 리얼리티 파크>), 전등(<마키>) 등 평범한 일상 오브제를 재료로 사용했다. 이 사물들은 작업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PP 몇 년 전, 매튜 바니가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그는 우리 세대가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을 ‘측정(measure)’하기 위해 비디오카메라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예술은 매체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작업의 특정한 조건을 탐구한다. 특히 미술기관이 예술작품을 틀에 넣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알다시피 전통적인 미술관은 작품을 겨우 3개월 남짓 보여주고 철거해 버린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내 작품의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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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 유리, 금속, 전깃줄, 전구 50.2×152.4×76.8cm 2022_‘마키’는 미국 극장에서 사람의 시선을 끌고자 입구에 달아둔 전등이다. 서울 전시의 <마키>는 모래, 석회석, 탄산 나트륨을 결합한 특수 유리로 제작됐다.
Art 미술 이외에 어디서 영감을 받는지 궁금하다. 그 아이디어를 어떻게 시각예술로 승화하는가?
PP 5천 가지 색을 내뿜는 <마운트 아날로그>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좋은 예시겠다. 아주 예전에 그르노블미술관에서 한 친구가 르네 도말의 미완성 소설인 『마운트 아날로그』에 관해 들려주었다. 내게 “그 책 읽어봤어? 아니라면 꼭 읽어봐.”라며 적극 권했다. 이후 나는 『마운트 아날로그』를 연구하다시피 읽었고, 소설에서 말하는 아방가르드 실험의 특징인 ‘집합체’ 개념을 발전시켰다. 소설에 대해 짧게 설명하자면, 주인공은 ‘마운트 아날로그’라는 신성한 산의 존재를 추정하는 글을 잡지에 실었는데, 어느 괴짜가 그 산이 실제로 있다는 편지를 보내오면서 탐험을 떠난다. 꽤 별난 생각 아닌가? 어떤 물체를 상상하는 덴 두세 명만 있어도 된다. 심지어 그 물체가 실제로 존재할 필요도 없다. 아주 생생하게 ‘생각’만 해도 충분하다. 내가 집단적인 창작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이다.
르네 도말의 소설을 접한 지 몇 년 후였던 2001년, 나는 그의 책에서 얻은 ‘보려면 믿어야 한다’라는 아이디어를 ‘색채’라는 미술요소로 번안했다. 그리곤 파리현대미술관 개인전에서 한 공간을 ‘색채 빔’으로 가득 채웠다. 그날 밤 미술관 앞 길거리에는, 마치 누군가 전시실 안 환한 스크린만을 켜둔 듯한 광채가 어른거렸을 거다. 이번 전시의 <마운트 아날로그>는 과거 작업의 ‘리마스터링’ 버전이다. 당신은 다채로운 색 중 어느 색을 진짜라고 믿을까?
Art 소설 자체도 재밌지만, 이를 색채로 재해석한 당신의 작업도 큰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시간성을 작업 주제로 삼은 당신에게, ‘시간’은 진정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PP 나는 계속 과거를 새로 끄집어낸다. 이번 서울 개인전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를 재료 삼아 미래를 재구성했다. ‘미완’이란 개념은 흥미롭다. 예술작품이 꼭 ‘마무리’ 될 필요는 없으니까. 불완전성이야말로 상상 속에서 무한히 전개할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내게 ‘끝(The End)’이라는 단어는 가당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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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파레노 / 1964년 알제리 오랑 출생. 그르노블 에콜데보자르, 팔레드도쿄 조형예술고등교육원 등에서 수학. 뉴욕현대미술관(2019), 베를린 그로피우스바우(2018), 상하이 록번드미술관 (2017), 런던 테이트모던(2016), 서펜타인갤러리(2010) 외 다양한 미술기관에서 개인전 개최. <In Tune with the World>(파리 루이비통재단 2018), <Anywhere, Anywhere Out of the World>(파리 팔레드도쿄 2013), 베니스비엔날레(2011, 2009, 2007) 등 참여. 뉴욕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구겐하임미술관 등에서 작품 소장. 파리에서 거주 및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