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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포토그래피시대

2022/06/13

세 개의 전시, 상업사진과 스냅사진 그리고 일상의 기록 / 조현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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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커머셜:한국상업사진,1984년이후>전경2022일민미술관

후기 사진 시대(Post Photographic Era). 시각문화이론가 프레드 리친(Fred Ritchin)이 주장한 개념이다. 진실성, 객관성 등 기존 사진의 전통적 가치를 디지털 사진이 해체 및 재정립하는 시대를 가리킨다. 리친은 동시대사진의 위상을 ‘몰락과 확장’의 기로에 놓는다. 한차례 죽음 이후 부활한 회화와 강렬한 비주얼의 뉴미디어 틈새에서 사진은 종말을 맞이하는 듯했다. 하지만 디지털 기술이 변주한 사진 이미지는 대상과 주체, 관객와 예술가의 매개물로서 상호 소통과 다양성의 폭을 크게 넓히고 있다. 리친은 주로 다큐멘터리 분야에 주목해 21세기 이후 디지털화한 사진을 ‘하이퍼-사진(Hyperphotography)’이라 명명했지만, 이 개념을 동시대 예술사진과 상업 및 패션사진에 소급 적용해 볼 수 있을까?

누구나 한 컷!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언커머셜: 한국 상업사진, 1984년 이후>(4. 8~6. 26)는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룬 1980년대 이후 한국 상업사진의 발전사를 조망한다. 상업사진가 29명을 한자리에 모아 잡지, 패션 화보, 영화 포스터 등 대중문화와 사진의 흐름을 교차해 바라보는 전시다. 여타 장르의 사진과 달리, 상업사진은 ‘실용성’이라는 태생적 목적과 이를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분업’이라는 생산 방식을 고수해 왔다. 특히 1980년대 유학 세대가 최신 장비와 기술을 국내에 도입한 이후 한국 상업사진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전시는 그 예로 미술계에선 ‘백자 사진’으로 유명한 구본창의 <알렉시오 화보(모델: 안도일, 이석)>(1987)를 소개한다. 서울 모처의 길가에서 힘차게 뛰어오르는 모델을 촬영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인물의 동작을 당대 최신의 촬영 기술과 장비로 포착했다. 1984년 5월엔 한국 최초의 ‘비주얼 패션 매거진’을 표방한 『월간 멋』이 창간됐다. 디지털 보정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 온전히 사진가의 역량만으로 완성한 ‘한 컷’의 사진이 지면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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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커머셜:한국상업사진,1984년이후>전경2022일민미술관

한편, 홍보 채널이 비교적 적었던 당시에는 매장 비치용 화보가 패션 브랜드의 시즌 신상품을 홍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홍보 마케팅에 대한 전문 지식도 부족했기에, 화보를 촬영하는 사진가의 능력에 따라 시각적 호소력도 천차만별이었다. 또한 촬영 현장의 컨트롤, A컷의 선별 등의 권한을 대부분 사진가가 가졌다. 사진가가 사진을 인화해 보여주지 않는 이상, 광고주나 에디터는 작품을 확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 기술이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사진가가 주도하던 상업사진의 생산 과정이 보다 더 세밀하게 분업화되기 시작한다. 1990년대 IMF사태는 노동 시장의 ‘유연화’를 가져왔다. 더 이상 잡지사 소속이 아닌 프리랜서로 독립해 각자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실장님’ 세대의 사진가가 출현했다. 이들은 2층 전시장의 <상업사진과 패션> 섹션에 주로 포진해 있다. 필름 시대 작가들의 어시스턴트 출신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다. 제작 환경의 급변 또한 실감했다. 특히 촬영 현장에서 사진가의 통제력이 크게 약화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정작 사진가 본인은 A컷을 건지지도 못했는데, 담당 에디터가 자의적으로 촬영을 마무리해 버리는 식이었다. 카메라에 장착된 디지털 액정 화면에서 에디터가 실시간으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 탓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를 한번 뒤집어 바라보자.  동시대사진의 생산 주체가, 모더니즘식의 1인 예술가가 아닌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수의 창작 주체로 분산하여 확장됐음을 알려주는 가장 명백한 예시가 아닐까. 이 집단적 의사 결정과 직무 분업으로 완성된 이미지야말로 그 실용성을 극대화한 ‘하이퍼상업사진’이 아닐까. 전시 포스터로 활용된 안상미의 작품 <하퍼스 바자>(2021)에서 보듯, 에디터, 스타일리스트, 헤어 디자이너 등 다양한 주체가 작품 제작에 실시간으로 개입한다. 단적으로 말해, 사진가  한 명이 단독으로 모델의 립 컬러와 헤어스타일을 좌우할 수 없는 시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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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시박<슬프다구!너가어딜가든물범벅!>2022

한편, 하시시박 개인전 <Hasisi Park’s !>(5. 5~29 더레퍼런스)와 나이젤 샤프란(Nigel Shafran) 개인전(4. 29~6. 4 N/A)은 디지털 시대의 스냅사진에 주목한다. 두 사진가는 ‘일상’의 주제와 ‘스냅’의 장르를 공유한다. 정확히는 ‘수없이 플래시를 터트려 가장 빛나는 한순간을 선택하는’ 디지털 스냅의 미학으로 일상을 포착한다. 하시시박은 네 번의 개인전 <Casual Pieces>에서 일상을 포착한 스냅사진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결혼과 출산 이후 그의 일상은 대부분 육아로 채워졌고, 자연스레 렌즈를 아이들에게 돌렸다. 첫째 아이가 !, ? 등 문장 부호를 배우면서 다양한 감정을 깨달을 즈음, 하시시박은 아이의 순수한 감정과 표정이 드러나는 초상을 찍기 시작했다. 
영국 출신의 사진가 나이젤 샤프란은 이번 전시에 총 4개의 시리즈를 출품했다. 지극히 평범한 장소와 사물에 집중해, 설거지를 끝낸 주방(<Washingup>(2000))과 음식물 쓰레기(<Compost Pictures>(2008~09)), 슈퍼마켓 계산대의 상품(<Supermarket Checkout>(2005))과 쓰고 남은 일회용품(<Packages>(2012~13)) 등을 소재로 삼았다. 샤프란 또한 1990년대 영국의 패션 잡지 『The Face』와 『iD』로 명성을 얻은 상업사진가 출신이지만 개인 작업에서는 아마추어리즘에 가까운 기법을 보여준다. 수직과 수평 구도에 크게 개의치 않고, 노출값도 자유로워 비교적 어둡게 찍힌 사진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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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젤샤프란<27June,2000Muesli,cheesesandwichatDarkroom,RuthbackfromLeeds,vegetarianrestaurantBlahblahblah,Shepherdsbush.>C-타입핸드프린트47.6×59.6cm2000

바야흐로 전문 작가가 아닌 사람도 비슷한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잘 나온 컷을 골라 업로드하는 ‘인스타그램의 시대’다. 마치 일기를 적듯, 자신의 평범한 생활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타인과 공유한다. 이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창작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하시시박이나 나이젤 샤프란과 같은 작가들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들은 프로페셔널 사진가로서 각자 고유의 기법과 효과를 개발하고 훈련했다. 하시시박이 의도적인 이중 노출로 두 개의 이미지를 오버랩하는 사진으로 호응을 얻고, 샤프란이 오히려 피사체를 멋지게 표현하려는 욕망을 최소화해 진짜 일상에 가까운 미학을 완성했듯 말이다.
하지만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핸드폰의 ‘이미지 보정 앱’으로 프로페셔널의 느낌을 얼추 따라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피드라는 자신만의 상설 전시장도 있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사진 기술의 힘으로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의 경계가 흐려진 ‘후기 사진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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