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소씨, 우리는 행복해요?!" ①
2011 / 09 / 14
아트선재센터에서는 2004년 작고한 개념미술가이자 설치작가 박이소의 드로잉을 모은 <개념의 여정>전이 열리고 있다. 이에 artwa에서는 과거 art in culture가 다루었던 박이소 관련 기사를 되돌아 본다. 아래의 기사는 박이소 유작전 <탈속의 코메디(Divine Comedy)>의 개최에 맞춰 마련된 art in culture 2006년 4월호(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121/38/)의 특집 "박이소씨, 우리는 행복해요?!"의 일부분이다. 1984년부터 1997년 사이의 작업과 그 이후의 작업을 비교·분석한 <박모 대 박이소> 부터 들여다 보자.
박모 대 박이소
1982년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박철호는 1984년 스스로의 이름을 박모로 개명한다. 그 후 박모는 현대미술 담론의 한 가운데 선 뉴욕의 아시아계 남성으로서 '정체성의 정치학'을 따른다. 그러던 그가 1995년 한국으로 귀국한 후 1997년에는 다시 한번 개명하는데 그 이름이 우리에게 알려진 박이소다. 그는 이름을 바꾼 후 정체성의 정치학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두고, 허약하고 값싼 재료들을 이용, 특유의 냉소주의에 젖은 작품들을 펼쳐 놓는다. art는 박모의 이런 대립된 양상을 포착하고 그의 '박모'로서의 작업과 '박이소'로서의 작업을 대조해봤다.
<<박모>>

<무제> 캔버스에 아크릴릭, 플라스틱 밥솥 175×180cm 1985

<이그조틱-마이노리티-오리엔탈> 컬러 사진, 에나멜페인트 76×61cm 1990

<식탁용 의자> 1994 <쓰리 스타 쑈> 혼합재료 96×127cm 1994
<<박이소>>

<유엔타워> 합판, 나무, 종이박스,아연 도금 철판, 건축자재 쓰레기, 스티로폼, 드로잉 1997

<오늘> 감시 카메라 두 대, 비디오 프로젝터 두 대, 나무로 만든 벽 25×300×300cm 2001(2006년 재제작)

<팔라야바다(Fallayavada)> 혼합재료 200×300×400cm 2004(2006년 재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