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미술시장, 로컬 파워!
2025년 하반기, 아시아 미술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역동적이다. 과거 국제 아트페어의 흥행이 서구 메가 갤러리와 블루칩 작가에 좌우되었다면, 이제는 아시아가 자체 동력을 발휘해 시장을 견인한다. 인도에선 한국의 아트아시아가 론칭한 아트페어 아트아시아델리(9. 25~28 뉴델리 야쇼부미)가 성공적으로 첫 닻을 내렸고, 파리의 아시아나우(10. 21~26 파리조폐국)는 출품작의 범위를 서아시아와 남아시아로 확장하면서 외연을 넓혔다. 도쿄의 T3포토아시아(10. 10~13 도쿄미드타운야에스)와 아트타이베이(10. 24~27 타이베이세계무역센터)는 각각 ‘T3 포토 페스티벌 도쿄’(10. 4~27 도쿄 일원), ‘타이베이 아트위크’(10. 18~11. 2 타이베이 일원)와 호흡을 맞추면서 기획력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렇다면 이들 아트페어는 각각 어떤 방식으로 시장을 창출했을까? 아트아시아델리는 K-팝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고성장세를 보이는 인도의 잠재력을 K-아트마켓으로 연결하는 전략적 시도가 돋보인다. 이번 페어에 5개국 51개 갤러리가 참여해 작가 220여 명이 작품 760여 점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가나아트, 표갤러리, 선화랑, 금산갤러리 등 주요 화랑이 참여하고, 김창열, 박서보, 이강소, 이배 등 한국 대표 작가의 작품이 현지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9개의 특별전은 K-아트의 스펙트럼을 주제로 꾸려졌다. 뉴미디어 특별전 <Silk Node>는 예술과 한국 기술력의 융합을, 거장이 총출동한 <Masters>와 자개·달항아리를 주제로 삼은 <Eternal Radiance>는 한국 고유의 미감과 그 현대적 계승을 선보였다. 이성호 주인도대사, 산지브 키쇼르 고탐 뉴델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양국 고위 인사가 개막식에 대거 참석하며, 한국 미술의 글로벌 확장을 위한 새로운 교두보이자 아시아 미술교류의 거점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입증했다.
한국 미술의 글로벌 확장
파리에서 열린 아시아나우는 ‘성장(Grow)’이라는 주제 아래 아시아의 지리적 정의를 급진적으로 확장했다. 그간 행사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서아시아(중동)와 남아시아를 프로그램의 핵심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주최 측은 터키, 아랍 에미리트, 바레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기반 갤러리의 참여를 세일즈 포인트로 강조했고. 리야드, 라호르, 콜롬보, 샤르자 등의 잠재력을 강조했다. 약 70개의 글로벌 갤러리가 참여한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모하마드 알파라즈가 제작한 설치작품이 파리 조폐국 입구를 장식했고, 2024베니스비엔날레 사우디 대표 작가 마날 알도와얀이 아트페어 대표 작가로 선정됐다. 올해 신설한 특별전 <The Third Space>는 나니 위자자, 락소 주가랍 등 인도와 파키스탄의 이머징 아티스트를 한데 모았다. 호미 바바의 ‘제3공간’ 개념을 차용해 식민지와 피식민지의 경계가 허물어진 유토피아를 구현했다.
2회째를 맞은 T3포토아시아는 ‘T3 포토 페스티벌 도쿄’에서 출발한 아트페어다. 페스티벌이 일본을 무대로 활동하는 국제적인 사진가를 조명해 왔다면, 아트페어는 범위를 넓혀 ‘아시아 사진’을 포토그래프의 새 조류로 내세운다. 사진 전문 공간 더레퍼런스의 대표 김정은이 작년부터 행사를 이끌었다. 올해엔 19개 갤러리가 참여했고, 대만이 특별 초청국으로 선정됐다. 특히 이번 행사는 ‘정원(Garden)’을 주제 삼아 전시와 페스티벌의 공동 서사를 구축하고 큐레이토리얼 정체성을 강화했다. 특별전 <Masters>는 사진 매체와 산수화 미학을 결합한 중국 거장 랑 징샨을 조명했고, <Discovery New Asia>는 권도연, 스즈키 리사쿠, 로버트 자오 렌후이 등 아시아 풍경을 탐구하는 동시대작가를 소개했다.
아시아의 최고(最古) 아트페어 아트타이베이에는 올해 6개국 127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대만 로컬 갤러리가 절반 이상 자리를 채운 가운데 페로탕, 드사르트, 화이트스톤갤러리 등 글로벌 갤러리와 가나아트, 갤러리우, 갤러리바톤 등 한국 갤러리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이번 특별전은 청년, 타이완 원주민, 한족의 일파인 객가(Hakka) 등을 모티프로 대만의 다문화적 정체성을 조명했다. 8인의 신진 작가를 한데 모은 <Made In Taiwan>, 원주민의 문화적 유산을 선보인 <Indigenous Art Exhibition Area>, 객가 혈통의 아티스트를 모아 정체성과 문화를 드러낸 <Hakka in Words and Images> 등이다. 한편 눈길을 끄는 점은 아트페어와 연계한 타이베이 아트위크의 규모가 대폭 커졌다는 점이다. ‘교차점(Intersect)’을 공동 주제 삼아 100여 개 갤러리, 미술관, 예술기관, 스튜디오를 연결해 타이베이 전역을 미술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