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동! 트로피의 주인공
올 상반기, 국내 아트씬의 이목을 집중시킨 주요 미술상 수상 소식을 전한다. 현대미술의 동향과 화두를 보여주는 미술상 7개의 수상자 10인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중섭미술상, 삼성호암상, 석남이경성미술이론가상은 원로 미술인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박동준상과 일우미술상은 탄탄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중견 작가에, 종근당예술지상과 장두건미술상은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신진 작가에 주목했다.
제37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곽남신(1953년생) 작가가 선정됐다. 이중섭미술상은 1988년 이중섭 화백 30주기를 맞아 『조선일보』에서 제정했다. 서용선, 박용숙, 김봉태 등 주로 국내 중견, 원로 작가를 지원해 왔다. 곽남신은 1979년 마른 꽃의 그림자를 표현한 작품으로 데뷔한 이후 실루엣과 그림자를 주요 모티프로 삼아왔다. 일상적인 포즈를 취한 사람이나 사물의 윤곽만을 남겨 그리는 방식으로 삶의 모순, 위선, 비논리성을 암시했다. 심사위원회는 “무겁지 않지만 진지하고, 선언하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지만 메시지와 진정성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선정 이유로 밝혔다. 곽남신은 11월 6일 시상식과 함께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수상 기념전을 연다. 상금은 2천만 원.
원로 컬렉터부터 중견 필자, 라이징 아티스트까지
삼성호암상은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의 업적을 기리고자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1990년 만들었다. 국내외 인재를 대상으로 물리·수학, 화학·생명과학, 공학, 의학, 예술, 사회봉사 등 6개 부문에 수여해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려왔다. 35회 차 예술 부문의 주인공은 구본창(1953년생)이다. 제정 이래 사진작가의 수상은 처음이다. 구본창은 1980년대 한국 사진계에 연출 개념을 도입한 예술사진의 선구자다. 심사위원회는 <백자>, <탈>, <황금> 연작 등 한국적 조형미를 극대화한 작품에 주목했다. 서울시립미술관(2023),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24)에서 잇달아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 이번 수상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구본창에게는 상금 3억 원과 순금 메달이 수여된다.
인천시 주관 석남이경성미술이론가상은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초석을 세운 미술이론가 이경성의 업적을 기리려 2013년 출범했다. 먼저 본상에는 미술평론가 이주헌(1961년생)이 선정됐다. 주로 학술적 성과에 집중했던 역대 수상자와는 다르게 이주헌은 미술사의 문턱을 낮춘 공을 인정받았다. 미술기행을 담은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학고재, 1995), EBS TV 프로그램 <청소년 미술감상> 등의 활동으로 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서 왔다. 그의 이번 수상은 미술평론의 외연이 전문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포섭하는 쪽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음으로 특별상은 재일 한국인 컬렉터 하정웅(1939년생)에게 돌아갔다. 그는 아트컬렉션에 일생을 바친 전설적 인물이다. 50년간 수집한 1만여 점의 컬렉션을 1993년부터 한국의 공공 미술관에 꾸준히 기증해 왔다. 심사위원회는 미술생태계 유지에 힘쓴 하정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2020년 제정한 박동준상은 패션디자이너와 미술작가를 지원해 왔다. 제6회 박동준상에는 파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이슬기(1972년생)가 선정됐다. 그는 공예와 조각, 디자인과 민예가 결합된 혼성 작업을 선보여 왔다. 대표작 <이불 프로젝트: U>는 통영의 조성연 장인과 협업해, 한국 속담을 알록달록한 누비이불로 시각화한 태피스트리 연작이다. 작가는 직조작업으로 전통과 현대를 연결하고, 고급예술과 일상 문화의 경계를 허문다. 고원석 심사위원장은 “절제된 기하학적 형식을 주로 취하는 이슬기의 작품은 다양한 시공의 맥락에서 중층적 배경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본 상의 취지와 잘 부합한다”라고 평했다. 상금은 2천만 원.
2009년 출범한 일우사진상은 지난해 일우미술상으로 개편했다. 렌즈 기반 매체를 활용해 제작한 작품으로 공모를 받고, 신진 혹은 중견 작가 1인을 선정한다. 지원자만 185명에 달했던 15회 차의 상패는 미디어아티스트 안정주(1972년생)가 거머쥐었다. 그는 대중 매체나 일상에서 채집한 이미지와 사운드를 재조합해 비선형 구조의 영상을 만들어왔다. 전후 맥락이 편집된 영상으로 이미지의 사회 문화적 코드를 성찰한다. 안정주는 2027년 일우스페이스에서 수상 기념전을 개최한다. 작품 제작비 3천만 원과 리서치 트립 항공권 3천만 원을 지원받는다.
올해로 14회를 맞이한 종근당예술지상은 최근 2년간 비영리 미술기관에서 전시 경험이 있는 젊은 화가 3인을 지원한다. 선정자는 임희재(1993년생), 조기섭(1981년생), 지알원(1980년대생). 세 사람은 회화가 고정된 이미지라는 기존 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내면의 감정과 외부 환경의 충돌을 그려왔다. 임희재는 박제 동물이나 다큐멘터리 장면을 역동적인 필치로 그려 정지된 이미지의 유동성을 탐구한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조기섭은 은분을 겹겹이 칠하고 갈아내 시점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렌티큘러 효과를 연출한다. 지알원은 도시 주변부의 서사를 그라피티로 형상화해 왔다. 세계 각지에서 잊힌 역사를 리서치하고, 이를 도시 곳곳의 벽에 그려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한다. 상금은 각 3천만 원.
포항시 주관 제21회 장두건미술상의 영예는 젊은 조각가 안효찬(1990년생)이 안았다. 작가는 그로테스크한 조각, 설치로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자본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드러낸다. 대표작 <생산적 미완>은 미니어처로 구현한 건설 현장에 무기력하게 방치된 새끼 돼지 조각을 놓은 작품이다. 무분별한 개발주의가 초래한 생명 경시 풍조와 자연의 황폐화를 저격한다. 이번 수상으로 안효찬은 상금 8백만 원과 포항시립미술관 개인전 기회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