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국내의 주요 미술상 수상자를 한자리에 모았다. 유서 깊은 학술상부터 야심 차게 등장한 신규 미술상까지, 한국 아트씬이 주목한 수상자 7인이 무지갯빛 다채로움을 선사한다.
먼저 우현학술상, 김복진미술상, 백남준예술상은 원로 미술인의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우현학술상은 한국 미술사, 미학, 박물관학 등 미술이론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연구자에게 상을 수여한다. 제37회 수상자 최열(1956년생)은 1993년 한국근대미술사학회를 창립한 주역이다. 2021년 발간한 『추사 김정희 평전』으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서화가 김정희의 탄생 설화부터 유배 시절, 사제 관계 등 개인 생애는 물론, ‘추사체’ 발명과 예술론, 대표작 <세한도> 평론 등 미술사적 담론까지 총망라했다. 1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인명으로서의 한국 미술사’다.
2023년 발족한 김복진미술상은 한국 근대조각의 효시 김복진을 기린다. 근현대조각 발전에 이바지한 동시대미술가를 조명한다. 제2회 수상자는 조각가 정현(1956년생)이다. 심사위원단은 “인본을 중시하는 사상과 태도”를 선정 이유로 밝혔다. 정현은 홍익대와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 조소과를 졸업했다. 침목, 고철, 아스팔트 등 산업 폐기물로 인간 군상을 조각해 왔다. 2024년 제7회 창원조각비엔날레 출품작 <목전주>(2006)는 17m가량의 나무 기둥 여섯 개를 창원복합문화센터 동남운동장에 세워 자연의 장엄한 힘을 보여줬다. 상금은 2천만 원. 오는 5월 청주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제8회 백남준예술상은 1936년생 미국 작가 조안 조나스가 거머쥐었다. 2009년 출범한 이 상은 지난해 대대적으로 개편됐다. 특히 심사위원단 구성이 주목할 만하다. 추천위원과 심사위원으로 나눠 운영되던 구조에 운영위원까지 추가해 심사의 균형감과 긴장도를 높였다. 또 기존 심사 항목이었던 창의성, 실험성, 급진성에 ‘세계 평화 기여도’와 ‘미술사적 업적’을 더했다. 조나스는 1960년대 후반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 ‘포터팩’과 TV 모니터, 거울 등으로 사회의 고정적인 성 역할을 탐구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인간 중심 세계관을 넘어 에코페미니즘을 실천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쳤다. 상금은 5천만 원. 올해 11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수상 기념전을 개최한다.
한편, 천경자 화백의 차녀이자 몽고메리대 미술과 교수인 수미타 김은 천경자 탄생 100주년을 맞아 천경자재단을 창립하고, 예술상을 제정했다. 제1회 천경자예술상은 중견 작가 문지하(1973년생)가 받았다. 그는 고려대 미술과 학사, 이화여대 서양화전공 석사를 졸업한 후 도미해 아이오와주립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현재 플로리다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작가는 전통회화에서 차용한 구도와 문양을 만화적인 아이콘과 섞어 무질서와 긴장이 공존하는 화면을 구성해 왔다. 문지하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예술가는 종종 신비로운 존재로 여겨진다. 천경자는 예술이란 사랑과 보살핌, 끝없는 헌신의 행위임을 보여줬다. 이번 수상으로 그의 유산을 이어갈 수 있어 자랑스럽다.”
다음으로 올해의 작가상, 송은미술대상,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은 실험적이고 개성 넘치는 젊은 작가를 지원한다. 먼저 국립현대미술관이 SBS문화재단과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은 2022년 10주년을 맞아 심사 제도를 개편했다. 후원 작가의 신작뿐만 아니라 구작을 함께 전시하고, 최종 1인 선정에 ‘작가&심사위원 대화’를 반영한다. 올해의 작가상이 관성적인 미술상에 머무르지 않고, 한국 동시대미술의 담론 형성에 기여하도록 쇄신했다. 2024년 후보 작가 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 중 최종 수상자는 설치미술가 양정욱(1982년생). 그는 나무와 실 등 각종 오브제를 조합해 일상 풍경을 키네틱 장치로 재구성해 왔다. <올해의 작가상 2024>전 출품작 <아는 사람의 모르는 밭에서>는 첨단 기술 사회에서 아날로그적 움직임과 평화로운 일상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켜 큰 호응을 얻었다.
송은미술대상은 2001년부터 매년 역량 있는 한국 작가를 후원해 왔다. 작가가 공모에 지원하면 심사를 거쳐 선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지난해에는 지원자만 600명에 달한다. 수상자는 상금 2천만 원과 송은 개인전 개최를 지원받는다. 또 서울시립미술관 레지던시에 1년간 입주 기회가 주어진다. 지난 1월 발표된 최종 수상자는 탁영준(1989년생)이다.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는 퀴어 정체성이 종교 공간에서 수용되는 방식을 추적해 왔다. 대상작 <월요일 날 첫눈에 똑떨어졌네>는 컨템퍼러리댄스 필름이다. 두 명의 10대 소녀가 부모의 사랑 이야기를 무용으로 번안해 교회에서 실연하는 스토리다.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은 신경다양성 작가를 발굴하는 공모전이다. 2022년 국민일보가 한국 1세대 실험미술가 이건용의 후원을 받아 제정했다. ‘아르브뤼(Art Brut)’는 제도권 교육을 받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미술을 말한다. 3회 차 대상 수상자는 제주 출신의 이진원(2000년생)이다. 수상작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이백조 선생님>은 작가를 그림의 세계로 인도한 특수반 교사 이백조의 초상화다. 수상 기념전 <지금,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1. 22~3. 2 KCDF갤러리)가 열렸다. 이진원을 포함해 최우수상 강다연, 우수상 권세진 등 수상자 13명의 작품 45점을 선보였다.